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향기 Oct 26. 2024

180도 달라지는 아이들

공개 수업

학부모 공개수업이 끝났다. 내가 초임이던 90년대도 아니건만, 수업 전 날 청소상태를 점검하러 다니는 관리자에, 지도안에 입 대시는 관리자에, 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가 공개수업이 된 것 같은 상황이 썩 마뜩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손님을 초대하는 자리니만큼 신경 쓸 만큼은 써야 되는 건 맞기에 하라는 대로 할 것 하고 수업 준비를 마쳤다. 

당일 오전부터 헛구역질과 어지럼증에 이거 어떻게 손님을 맞아야 되나 근심이 앞섰지만, 교실 옆 뒤를 빼곡히 메운 부모들 때문에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반엔 사사건건 내 말을 물고 늘어지는 꼬맹이가 있다. 유튜브에 많이 노출된 아이는 비속어도 꽤나 많이 쓴다. 수업 시간마다 심심하면 내뱉는 비속어와 각종 짤에서 나올 법한 말들은 수업을 중단시키고 신경을 긁는다. 인권이 중요시되는 요즘 상황에 벌 세우지도 못하고 남겨서 반성문을 쓰이지도 못하는 형편이니, 매 시간 난무하는 수업과는 하등 관련도 없는 말들과 꼬리 잡고 늘어지는 말들에 내가 과연 10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의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2024년이다.

조용히 해 줄 것을 요구하면 지금 선생님이 떠들잖아요 하는 아이다.


그 아이의 수업날 태도? 앞문에 부모님 두 분이 딱 버티고 서 있고 아이는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숨만 쉬었다. 자기 발표 차례에 조금 장난기 있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질 떨어지는 유머로 아이들을 웃기려는 수작일 뿐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아이다.

달라지는 아이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없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한 거고 그렇게 산만하던 몇 몇 아이들이 그 시간에 초긴장을 하고 티끌 하나 나무랄데 없이 반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안쓰럽기도 하다. 교사와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40분 동안 온 에너지를 다 쏟을 테니까. 얼마나 엄마 아빠한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겠는가. 

다만 그 아이들의 부모가 걱정이 된다.

부모들이 단단히 오해를 하게 되니까. 착각을 하게 되니까. 걱정을 놓게 되니까.

그 부모는 그 아이의 한 시간 모습으로 우리 아이가 참 잘하는구나 나아지고 있구나 느낄 테니까.


성사건을 일으켰던 아이도 얌전하다. 공부가 죽도록 싫은 게 눈에 보이는 아이다. 내 2학년 시절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게 없어서 학교에서 하는 수업이 신기하기도 했던 것 같다. 요즘 애들이 어디 그런가. 스마트폰에는 각종 재미거리가 넘쳐난다. 공부가 죽도록 싫어 보이는 이 아이는 늘 뒤를 돌아보고, 발표할 것을 연습시키면 안 하고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안 했는데요 해서 결국 반 아이들 모두 다 발표시키고 난 후 마지막으로 다시 발표를 하는 아이다. 심심하면 수업 시간에 노래도 부른다. 우리 세대가 어릴 때 그랬다면 아마 일제 잔재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교육제도에 단련된 선생님들은 뺨을 한 대 때렸을지도 모를 일이다.(실제 떠들던 우리 남편이 1학년 때 이런 일을 당했다.)


이 아이도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래간만에 자기 분량을 외워서 발표를 잘한다. 원체 목소리는 씩씩한 아이니까.


이틀 뒤 상담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 부모가 걱정하는 내용은 이러했다. 공개 수업을 보니 아이가 괜찮더라. 저 정도면 뭐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교실 공간에서 아이 표정이 너무 어둡다. 하교 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보면 아이는 대답을 안 한다. 표정도 어둡다. 선생님이 긍정적 피드백을 줬으면 좋겠다.


쓴 웃음만 나온다. 허탈하다.

아이의 표정이 집에서는 얼마나 밝은지 묻고 싶다. 갓 30을 벗은 엄마는 아이에게 얼마나 긍정적 피드백을 주는지 묻고 싶다. 

상담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아이가 집에 가서 할 말이 뭐가 있겠어요? 공부는 하기 싫고 집중도 안되고 재미도 없는데. 공부 시간에 한 건 별로 없으니 기억에도 안 남고, 놀 때는 마음에 좀 안 들면 친구들 괴롭히기나 하니 저한테 혼나고. 혼난 걸 말하겠어요? 재미없고 기억도 안 나는 공부 이야길 하겠어요. 아이 엄마는 대체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요? 마치 제가 아이를 어둡게 만든다는 생각이 한가득인 엄마와 제가 무슨 상담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피드백 주지요. 칭찬할 일은 해요. 그 사소한 칭찬 하나가 대체 무슨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느끼는 걸까요? 그리고 저는 그 아이만 데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오늘도 아이는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아이의 다리를 잡고 넘어뜨렸어요. 부모가 왔을 때 짝이 없는 게 신경 쓰일까 봐 이틀 전에 남자아이를 옆에 앉혔어요. 그랬더니 떠드는 정도와 산만함이 너무 심해져서 결국 그 아이는 돌려보내고 또 혼자 앉혔어요. 두 달 남았으니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두 달 시간 보내고 내년 담임에게 넘기는 수밖에요."

다행히 베테랑인 상담 선생님은 나랑 통화하기 전에 이미 공개날의 아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전달은 하셨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학부모와 교사라고 한다. 이렇게 대치되는 상황이 교직에 대한 애정을 자꾸 멀어지게 한다.

나는 문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문제 부모라서 그런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많다. 그래서 최대한 부모한테 도움이 되게 사실을 전달하고 같이 협력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많다.

하지만 그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은영도 아니고, 말투도 억센 경상도 사람이다 보니 내 의도가 호도될 때도 많고 내 진심과 달리 공격을 받을 때도 종종 있다. 

이젠 웬만해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안 하려고 하고 아이 부모가 왔을 때 좋은 말만 하려고 한다.

과연 교육이 잘 돼 가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좋은 말만 해야 되는 세상. 

아무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단련 없는 칭찬과 교정 없는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자식도 잘 못 키운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