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을 생각하면?
딸기와 설탕가루, 초콜릿이 예쁘게 치장된 프랜차이즈 케이크에 날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케이크는 걷어내고 먹기라도 할 수 있지...아이들은...
아이들이 모두 같을 수가 없으니 개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바쁜 엄마 밑에서 자라다 보면 결핍이 생겨서 문제가 생기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부모들도 상황이 다 다르니 자식을 사랑해도 방법을 몰라 잘못 키울 수도 있다. 나도 그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임은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개성 존중이라는 것이 소수를 위해서 다수가 희생되는 상황이 되어서도 안된다. 배려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학급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하는 아이의 경우에 아이의 문제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부모의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우리 반은 소수의 아이 때문에 다수가 희생되는 반이었고, 아이의 문제를 수용하지 않는 부모 때문에 아이의 개선 여지는 찾아보기 힘든 반이었다.
2023년 기준 합계 출산율이 0.72인 존폐 위기 국가에 어찌 되었건 하나하나가 소중한 아이들임은 분명하다.
귀하게 다루어야 될 존재들이다. 하지만 3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면면을 모두 수용하고 폭넓게 이해하기에는 나는 아직 수양이 덜 된 인간이다.
썰을 풀고 싶지만 개인의 이야기라 민감하니 그냥 내 가슴에 고이고이 접어두어야 할 것이다.
내 콜레스테롤 수치와 체중을 가득 증가시켰던 아이들이지만 언론에 떠드는 악성민원 정도 급의 사고는 없이 진급시켰다는 것에 안도하며 맞이한 2025년 새 학기.
2024년은 가정과 학교 모두, 더 이상 힘들 순 없다 수준의 한해였으니 이보다 더 나쁠 일이 있을까 싶지만, 경우의 수는 나에게 행운을 줄 수도, 불행을 줄 수도 있으니, 그저 별생각 없이 맞이해야 하는 새 학기였다.
글도 줄줄이 길어지는 걸 보니 작년이 벅찰 만큼 힘들긴 했나 보다.
인생총량의 법칙 때문인지, 선생님들 사이에 전해지는 해거리를 하는 것인지 4월이 이틀 지난 현재까지 아이들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내 업무용 휴대폰도 문자나 전화가 잦지 않고 잠잠해서 신기할 수준이다.
(동학년 선생님께서는 그런 말 하면 안 돼. 분명 힘들게 될 거야. 퉤 퉤 퉤 하라고 하시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반에도 생활지도가 필요한 아이는 존재한다. 주로 말하기 좋아해서 수업하는 선생님 말 자르는 건 당연하고, 2학년 밖에 안되었으니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건간에 자기 말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일단 던지고 보는 아이들, 친구들 웃기는 게 사명인 줄 알고 시답잖은 장난의 말을 던지는 아이들.
올해는 이 아이들에게 휘말리지 말자. 근엄한 선생님이 되자. 적당한 거리를 둬서 학급이 안정되게 만들자가 목표라 비교적 불필요한 말들은 아주 많이 자제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가만히 안 있어야 아이기도 하고.
수업하는데 불쑥
"선생님 치킨 좋아하세요?"
휘말리지 말아야 했는데, 대답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응. 좋아하지."
이런 말에 대답하는 거 보면 나도 수업이 지겨웠는지도 모를 일
"선생님 그럼 우리 좋아하겠네요?"
잠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역시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끼어든다.
"선생님, 우리 닭띠예요."
요녀석 보게, 나름 재치 있는 걸?
여기서 끝나고 수업이 진행되어야 되는데 틈을 찾은 아이들은 하나 둘 치고 들어온다.
"선생님, 무슨 띠예요?"
휘말리지 말아야 했는데, 대답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근엄한 선생인 척이 지겨웠나 보다.
"무슨 띠인지 맞춰봐."
"호랑이 띠요."
아 이때부터 두더지 튀어나오듯 여기 저기서 끼어드는 아이들. 수업은 살짝 망했다.
그동안 애들이 내가 무서웠나 보다. 기가 막히게도 잘 맞추는 아이들이다.
순간 나는 너무 뜨끔하고 속도 살짝 상한다. 이왕이면 토끼띠, 양띠, 개띠 같이 유순한 동물들이 언급되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래도 뭐 이 정도면 괜찮다. 나의 당초 목표가 어쭙잖게 친해지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둬서 안정되고 평온한 학급을 만들자였으니까.
그래, 얘들아. 치킨도 좋고 닭띠 니들도 좋다. 올 한 해 잘 지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