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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나무 향기
Jun 21. 2023
노랑머리(첫째 아들)
아들!넌 김지훈이 아니라고!
영화 (노랑머리)를 아시나요?
아마 아신다면 당신은 나이를 꽤 먹었을 것 같군요.
생계를 위해서 노랑머리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던 이재은 배우가 행복해져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 선생님들도 아이가 빨리 들어서지 않아 맘고생, 몸고생 하는 경우도 많이 봤는데 행복한 결혼에 44세에 아이까지 얻는 축복까지 얻었으니 정말 함께 기뻐해 드리고 싶다.
‘44세 노산맘’ 이재은, 생후 50일 딸 공개…“이제 가족이 생겼구나”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
영화는 안 봐서 사실 내용도 모른다. 1999년 저 시절에 노랑머리라는 자체만으로도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충분히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염색이라고 해봤자 갈색, 좀 더 나가면 붉은 끼가 도는 갈색, 거기서 좀 파격적이면 브릿지를 넣는 수준이 다였던 세월이니 말이다.
교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개방적인 친구가 끈원피스를 입고 서울 거리를 다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아마 1994년일 거다.) 야 너 정말 대단하다 하던 세상이었으니까.
세월이 변해 끈원피스, 레깅스, 찢청, 잠옷 패션, 크롭티, 핫팬츠 온갖 패션이 허용되는 멋진 세상이 되었고 패션이건 헤어건 많은 파격적인 것들이 허용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난 저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 아직도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많은 편이다.
아들이 어느 날 염색을 하고 싶다고 한다.
"엄마 염색하고 싶어."
"그래? 그런데 염색 허용돼?"
"학생 인권조례 때문에 교복도 안 입어도 되고 염색, 파마 다 가능해."
(개인적으로 학생들의 자유를 너무 보장하는 학생인권 조례가 크게 마뜩잖은 선생이다. 담엔 인권조례에 대해서 한 번 썰을 풀어보고 싶다.)
"알았어."
"그런데 엄마. 나 노랑머리 하고 싶은데."
난 속으로 '뭐라고? 안돼 그것만은'을 외치고 있다. 어떡해서든 설득을 해야 된다.
"노랑머리는 좀 그렇지 않나? 날라리 같아 보이고. 안 그래도 키도 큰데, 넌 학교에서 조용한데 노랑머리 하면 너무 눈에 띌 거 같아."
언감생심 씨도 안 먹힌다. 아 설득력 떨어지는 나란 엄마. 말재주는 나이가 먹는다고 느는 게 아니다. 그나마 선생이라도 안 했으면 이 정도 말재주도 없었을 듯.
"악의 꽃 김지훈 머리 멋있던데?"
넌 김지훈이 아니라고 이 녀석아. 꿀렁꿀렁 눈물까지 나려고 한다. 어떡하지. 초조하다. 내 마음은. 아들의 노랑머리는 상상하기도 싫다.
"탈색한 머리 자라면 보기 싫어."
"아니, 난 노란색에 검은 머리 섞인 것도 좋아 보이던데."
미장원을 데리고 갔다.
미용사님이 말씀하신다.
"노랑머리 하면 파마가 안 돼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결국 아들은 노랑머리를 했습니다. 차마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없어서 결제만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사진을 찍어 보내주더군요.
어랏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진 않습니다.
결국 이 꼰대 엄마의 선입견이죠. 하지만 여전히 다른 학부모나 선생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같은 라인의 아는 아줌마들에게 우리 아들 노랑머리했다고 놀라지 말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곤 했습니다.
노랑머리는 한지 3달이 다 되어갑니다. 나름 멋있습니다. 183의 큰 키에 노랑머리를 한 뽀얀 얼굴의 우리 아들. 고슴도치 엄마일 수밖에 없는지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김지훈은 아니지만요.
(세상 그렇게 미운 게 많은 녀석이었는데 그래도 제가 엄마는 맞는가 봅니다.)
뭐든 해보기도 전에 선입견을 가지는 버릇 고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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