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잘 들어서 흠이 될 일은 없지만 열심히 말을 많이 해서 흠 잡힐 일은 널리고 널렸다.
"그 선생 잘라요. 짜르라고요. 당장 와서 사과하라고 해."
"어디 그런 게 선생이야! 안 짜르면 가만 안 있을 거예요."
급하게 불려 간 저. 눈물을 머금고 사과합니다. 눈이 부리부리한 그 어머니 표정이 너무 무섭습니다.
"내가 너 짜르고 말 거야. 니가 선생이냐?"
교장실 밖을 나오면서 설움과 부끄러움이 폭발해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1교시 수업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영어 선생님이 대신 들어가셨죠.
그 엄마의 아이가 영어선생님께 묻습니다.
"우리 선생님 왜 안 들어와요? 아침에 출근했는데."
영어 선생님은 맘 속으로 말씀하십니다.
'어휴 너 때문이라고. 너."
교직생활 7년 째였습니다. 학생들 다루는 것도 학부모 대하는 것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생각하던 때였지요. 6학년을 가르쳤습니다.
그 해 우리 반 학생들은 나무날 데가 없었습니다. 특히 남학생들이 모범적이고 저를 무척 따랐으며 인물도 훤칠한 학생들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우리 반 여학생들 중에는 남학생들과 사귀고 싶어 안달 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1학기 학급회장이 여학생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을 중심으로 4명이 무리 지어 친했더랬죠.
그중 한 여학생은 전학을 왔습니다. 여학생의 관심사는 외모였습니다.
"선생님, 저는 연예인 될 거예요. 커서 돈 벌어서 쌍꺼풀도 하고 코도 높이고 할 거예요."
그리고 우리 반의 연예인 같은 남학생에게 온갖 방법으로 관심을 표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우리 반 꼴찌였습니다. 공부 시간에도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하고, 싫다는 남학생한테 자꾸 관심을 표하니 남학생도 스트레스고 그때마다 중재시키는 저도 스트레스가 만만찮았습니다.
학교에는 학년마다 연구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학습 자료를 모아두고 교과전담 시간에 그곳에서 다음 시간 수업 준비를 하고 오후에 모여서 회의도 합니다.
아무래도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들의 주된 주제는 학급 학생들이지요.
저는 우리 반 MJ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MJ이가 00 이한테 관심이 너무 많아서 00 이가 힘들어하더라고요. 공부 시간에도 자꾸 떠들고 이번에
꼴찌 했어요. 학급 평균도 MJ가 다 깎아먹었어요."
(1년에 4번씩 시험을 치르던 때였습니다. 아무래도 학급 평균이 내 선생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이던 때지요.)
그 해 학교에서 다른 학교의 행사를 관람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관심사에 따라서 여러 학급 학생들을 모아서 한 선생님이 인솔해서 방문하고 관람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유난히 말하기 좋아하는 00 선생님이 우리 반 MJ 이를 비롯한 학생들을 인솔하게 되었습니다. 하필 MJ가 맨 앞에 서 있었고 00 선생님은 MJ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MJ, 너 이번에 꼴찌 했다며?"
아마 웃으며 말했을 겁니다. 그 선생님 성향상.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습니다. 반 학생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결혼하시면 피아노 제가 쳐드릴게요 하던 그 00 남학생에게도요.
그런데 학급 회장 어머니가 아셨나 봅니다. MJ와 그 무리들이 결혼식에 온 유일한 학생들입니다. 제 결혼 DVD엔 그 학생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습니다. 눈물을 쏟게 만든 그 MJ...
제가 엄청난 말실수를 한 겁니다. 그 학생의 치부를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댄 거죠. 저 사건 이후로 학생들 이야기를 동료교사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게 되더라도 이름은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학부모가 된 지금은 더하지요.선생님들이 제 아이의 치부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십거리로 떠든다는 걸 상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 때의 저 너무 부끄러운 선생입니다.
사람은 말을 신중하게 하고 살아야 됩니다.
열심히 잘 들어서 흠이 될 일은 없지만 열심히 말을 많이 해서 흠 잡힐 일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마무리를 하려니 혹시 제 글이 흠 잡힐 일은 되지 않을까 갑자기 걱정되네요.
거기다 발행하고 다시 읽어보니 JS는 저와 저에게 들은 말을 함부로 쏟아버린 그 선생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래서 사람은 사색과 성찰이 필요한가 봅니다.
아침에 쓰레기 같은 글 쓰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는 어느 분 글을 읽었습니다. 브런치는 제 마음의 치유공간이 되었습니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요. 쓰레기 같은 글일지라도 사람의 진심이 담긴 글에 그런 말을 하면 안 될 거 같네요. 그 분도 언젠가 깨닫기를. 본인의 말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상처가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