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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자

도시 여자는 맞아요. 그런데 도시여자처럼 못 자랐어요.

by 나무 향기

2022년 근무하던 학교에서 우리 학년 부장님이 어느 날 뜬금없이 말씀하신다.

"샘들이 선생님 보고 도시여자래요."

1학기를 넘기면서 머리도 길어지고 다이슨을 사면서 머리를 예쁘게 말고 다니고 옷도 신경 써 입고하다 보니 아마 젊고 세련되어 보였나 보다.


도시여자. 고향에선 어느 누구한테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모두 도시에 살고 있으니까.

여기 오니 교장선생님도 어떤 선생님보고 서울여자 같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분은 시골 출신이라는 아이러니.

대체 서울여자는 어떤 여자이고 도시 여자는 어떤 여자인 걸까

서울여자로 불렸던 선생님
- 얼굴이 뽀얗다
- 말투가 예쁘다.

도시 여자로 불린 나
- 키가 크다.
- 얼굴은 하얀 편이다.
- 옷을 그럭저럭 세련되게 입는 편이고 키가 크다 보니 돋보이기도 한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써 보긴 했는데 딱히 도시 여자, 서울 여자 구분 지을 근거도 아닌 듯하다.

뭐가 도시여자고 뭐가 서울여자인 걸까?


내가 살던 광역시는 그 지역 교대를 졸업한 선생님들이 90퍼센트 이상이다.

지금 여긴 온갖 교대 출신들이 다 모여 있다. 우리 학년만 봐도 전주교대, 진주교대, 공주교대, 대구교대, 부산교대 등 전국 교대 출신 선생님들 집합소다.

그래서 날 도시 여자라고 하나?


도시여자라는 말 기분 좋다. 아가씨 때도 차도녀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었다

지식백과 검색

차도녀 (차都女)[명사] ‘차가운 도시 여자’를 줄여 이르는 말로, 도도하고 쌀쌀맞은 분위기의 세련된 젊은 여자.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니 도시 여자 맞다. 살짝 도도하고 세련돼 보이기도 한다.


자 그럼 제가 도시 여자 맞을까요?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니 도시 여자는 맞아요.

그런데 저는 도시 여자 하면 뭔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체험이 많은 사람, 시골에서 못 누릴 걸 누린 사람, 책도 많이 읽고 경험의 폭이 넓은 사람 등으로 해석이 되네요.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서는 저는 도시여자처럼 못 자랐어요. 집도 잘 살지 못해서 문화적 혜택도 많이 못 누렸어요. 예전 글에 썼던 것처럼 마로니 인형도 한 번 못 가지고 놀았어요. 여름이면 바캉스로 바다나 수영장을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어요. 시골에 살았으면 계곡이나 냇가에서라도 놀았겠죠? 책을 많이 읽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그냥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지식에 의존해 공부하고 자랐어요. 5학년이 돼서야 저희 집에 전집이란 게 생겼죠. 아마 그것도 우리 막내 남동생 때문에 사신 걸 겁니다.

제 외양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긴 해요. 많은 걸 누리고 자란 사람처럼 보여요. 그런데 내면은 경험의 결핍이 많네요.

그래서 아들들은 그런 결핍 없이 살게 해주고 싶었는데, 대도시에 살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아들들은 엄마가 바라는 대로 따라주질 않네요. ^^


< 문화적 결핍은 사람을 주눅들게 만듭니다. 커가면서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경험치가 적어서 이야기할 것도 없고, 뭔가 겪는 것들이 다 새로운 것들이어서 힘들었습니다. 자존감이 높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극복되더라고요. 결론은 내가 남과 다르더라도 그것 자체가 내 모습이란 걸 인정하면 주눅들 필요도 어깨를 떨어뜨릴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각설하고 이제 진짜 도시여자처럼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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