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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뭣이 중헌디

정말 고마운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면 그만인 거지

by 나무 향기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을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봤습니다.

정의
- 교권 존중과 스승 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여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지정된 날.

내용
- 1963년 충남지역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은사의 날’을 정하고 사은행사를 개최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1964년 청소년 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J.R.C.)는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지정하였으며,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변경하여 각급학교 및 교직단체가 주관이 되어 행사를 실시하여 왔다.
- 그 뒤 1973년 정부의 서정쇄신방침에 따라 사은행사를 규제하게 되어 ‘스승의 날’이 폐지되었으나, 1982년 스승을 공경하는 풍토조성을 위하여 다시 부활되었다. 이 날은 기념식에서 교육공로자에게 정부에서 포상하며 수상자에게는 국내외 산업시찰의 기회가 주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승의 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충남적십자사, 제21회 전국 RCY 백일장 및 그림 그리기 온라인 공모전 개최 - 충청뉴스 (ccnnews.co.kr)

위 기사에도 스승의 날 유래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올해로 60회를 맞는 ‘스승의 날’은 충남 강경여고 JRC 단원들이 현직의 선생님과 병중에 계시거나 퇴직하신 선생님을 위문하는 활동에서 유래하여, 1964년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을 작성·발표하고 매년 5월 15일에 기념하고 있다.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 - 문서로 명문화하기에 참 적절하고 아름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발령받은 1997년 이후 저는 스승의 날만 되면 힘이 쭉 빠졌습니다. 교원의 사기 진작이라니요. 사기 저하의 날이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스승의 날만 되면 각종 기사가 일주일 전부터 넘쳐납니다. 그 기사를 읽고 듣는 게 스트레스입니다.

모 초등학교 선생이 받은 립스틱이 수십 개가 장롱 속에서 발견되었다느니, 스승의 날 선물 고민으로 엄마들은 머리가 아프다느니, 어느 학교 선생이 봉투를 받았다느니 아무튼 자극적인 기사들로 전국의 선생들을 매도하는 날이 스승의 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실 문제도 있긴 했습니다. 어린이날이 처음의 의미와 달리 선물 받는 날로 변질된 느낌이 드는 것처럼 스승의 날도 어느 순간부터 선물 주는 날로 바뀌어버린 건 사실이니까요.


첫 번째 학교에서는 선물을 돌려줬습니다. 그다음 날 학생의 말은 정말 힘 빠지게 하더라고요.

"선생님, 엄마가 선물 가져가니까 자기가 쓰면 된다고 엄청 좋아하셨어요."

선물은 정말 정성을 담아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의미 없는 선물은 저도 싫습니다. 왜 감사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가에 대해 24살 저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이 씁쓸했어요.


두 번째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출근했다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선물을 보고 놀랬더랬죠. 한 명도 안 빼고 다 선물을 들고 왔더라고요.(학군이 좀 괜찮은 동네였습니다.)

인간은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그냥 비슷하게 행동하고 사는 게 최고잖아요.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네요. 너도 나도 그냥 받는 분위기. 선물의 대다수는 바디워시, 손수건, 아가씨라서 머리핀 정도였습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기 전 학교는(이전 글 읽으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제 고향의 강남 8 학군 학교) 스승의 날 어디서 나온 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감사하시는 분이 학부모인양 위장해서 학교밖에 서 계시다가 뭔가 선물꾸러미 같은 걸 들고 가는 걸 보면 따라 들어와서 현장에서 비리를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그날 과일 상자를 건네준 학부모가 공교롭게도 과일 상자 아래 돈봉투를 깔아놓아 학교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스승의 날 단체로 조퇴를 하다가 학교로 다 불려 와서 꽃 한 송이조차 남기지 말고 다 치우라는 관리자의 명령을 받기도 했었죠. (김영란법 논의 이전의 일입니다.)


김영란법’은 2015년 3월 27일 제정·공포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안자의 이름을 따 부르는 말로 이 법의 공식적인 약칭은 '청탁금지법'이다. 이 법은 2016년 9월 28일 시행되었다.

김영란법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아이들에게조차 초콜릿 하나도 받을 수 없고, 보호자들로부터 커피 한 잔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게 서로서로 너무 편안한 게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정이라는 미명하에 뭔가 오고 가게 되면 사람의 판단이 흐려지거나 객관화되기 힘든 게 이치니까요.


스승이라는 말조차 요즘 시대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 스승의 날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취지로 제정된 날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렸으니까요.

스승이 뭔가 사전을 찾아봤더니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네요. 단순한 지식 전달이든, 한 인간의 인격 형성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든, 요리를 가르치는 것이든 가르친다는 건 범주가 엄청 넓네요.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 전달 이상을 넘어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넓어지도록 다독여야 되고, 사회적 관계를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되고, 생활 습관이 정착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되지요. 특히 초등교사는요. 지식의 전달보다 지식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야 되고요.(물론 초등학생은 밑바탕이 될 배경지식이 없어서 지식의 전달도 많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감히 스승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냥 선생님이란 호칭이 더 편하고 정이 갑니다.

스승의 날이란 족쇄로 선생님들에게 너무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자기 자리에서 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스승의 날 없애야 됩니다.)


아이들은 어찌 되었든 자기 담임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하고 따릅니다. 1년을 같이 보내면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투도 닮고 글씨도 닮고 잔소리하는 방법도 닮아가지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되는 이유입니다.

저를 소중하다고 해주는 우리 반 아이들.

소중하게 대하고 잘 가르쳐야겠습니다.

내일도 만나게 될 우리 아이들의 성장에 미약하나마 큰 도움이 된다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덕 하나는 쌓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글 마무리합니다.

<예전에 쓴 글에 덧붙이기를 했습니다. 두서가 없어서 아직 뭔가 더 손을 대야 될 거 같은데 발행해 봅니다. 비염기가 심해져서 코를 푼다고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그래서 일찍 조퇴하고 왔는데 집에서 이러고 있습니다. 저의 미천하고 빈약한 글 읽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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