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향기 Jun 24. 2023

선생님 가출할래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선생님

  등교하자마자 IJ이가 아기 같은 목소리로 징징거립니다.

 "선생님, 저 오늘 가출할 거예요. 엄마한테 전화해 주세요."

 가출하면서 전화를 해달라니 2학년 애기다운 발상입니다. 가출을 안 하겠다는 뜻이죠.

 "왜?"

 "엄마가 저 말 안 듣는다고 오늘 머리 때렸어요. 가출할 거예요"

 결연한 표정입니다. 귀엽군요.


  머리 때렸답니다. 아동학대의 범주에 속합니다. 물론 지속적인 신체적 학대는 아닐 가능성이 많으니 아동학대로 신고할 건은 아닙니다만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인 저는 잠시 고민에 휩싸입니다. 3년 전 아동학대 신고 건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서, 솔직히 학생들로부터 엄마가 때렸다느니 맞았다느니 이런 말은 되도록 듣고 싶지 않거든요.

 

  아동학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아래 참조 바랍니다.

아동권리보장원 -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 (ncrc.or.kr)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고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을 모두 포함합니다.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
**적극적인 가해행위뿐만 아니라 소극적 의미의 단순 체벌 및 훈육까지 포함
**아동의 복지나 아동의 잠정적 발달을 위협하는 보다 넓은 범위의 행동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나 방임, 아동의 발달을 저해하는 행위나 환경,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보호에 이르는 매우 포괄적인 경우로 규정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아래 pd수첩 보신 분들 있으신가요? 교사는 일회적인 일들로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리기도 합니다.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 전반부 - PD수첩 2023년 3월 7일 방송 - YouTube

   여러 사례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1년 반짜리 경력의 선생님이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선생님은 학교가 아닌 집에서 자살을 했다고 산재처리도 안된다고 합니다.

   

  요즘엔 자신의 자녀가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보는 걸 못 견디는 부모들이 꽤 있습니다. 제가 발령받은 97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모들은 자녀가 잘못하면 때려달라 따끔히 혼내달라 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부모는 아예 없지요.(물론 학생을 때려서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벌청소를 시켜도 안됩니다. 남겨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어릴 때 흔히 겪었던 공부 시간에 뒤에 서 있기도 안됩니다. 체벌은 당연히 안됩니다. 다 아동학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으로 꼼꼼히 남기고 숨을 고르며 참아나가는 수밖에요. 2년 뒤 3년 뒤 아동학대 건으로 신고를 당하기도 하고 학교에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간간히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쓰는 교무수첩도 절대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저학년 수업을 하다 보면 엄마가 등짝 스매싱 했어요, 아빠가 주먹으로 때렸어요, 받아쓰기 못했다고 발바닥 맞았어요 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습니다. 이럴 때 교사인 저희가 신고할 수 있을까요? 아마 신고했다는 의심으로 또 민원을 받게 될 겁니다. 말이 신고 의무자이지 아무런 보호 대책도 없습니다.


  세월이 바뀌고 인권이 중요시되는 건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매해 인권 교육을 수업 시간에 필수로 해야 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진 않았습니다. 과도기 단계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고 아동학대 판단의 범주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교사는 소극적으로 학생들을 교육할 수밖에 없고, 열정을 잃어가는 교사들이 많이 생겨날 겁니다. 학생들이 욕을 해도 적절히 훈육하기도 힘든 상황도 발생할 겁니다.(저도 그랬습니다. ㅅㅂ을 아무렇지도 않게 교사에게 말하는 학생을 말로 지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이 나쁘면 저도 아동학대 가해 교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퇴직까지 아직 15년 남짓 더 남았습니다. 그 남은 기간 동안 얼마나 아이들과 학부모의 변화에 부응하면서 교육이란 걸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MZ세대들의 자녀들을 가르칠 시기가 오면 어떻게 학교에서 살아남을지 걱정도 됩니다.

  최근 동료교사들끼리 농담 삼아 말했습니다.

  "그나마 남은 기간 학교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안면거상뿐이다."

  자조 섞인 말입니다. 할머니 선생님들을 싫어하는 분위기에서 저학년도 과연 언제까지 가르칠 수 있을지, 설사 안면거상을 한다 해도 얼마나 학부모의 정서와 아이들의 정서 상태를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00 이는 당연히 가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  
전화를 받은 엄마는 아마 난감했을 겁니다.
선생님한테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혼나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 00 이의 엄마는 아이를 잘 다독인 것 같았습니다.
가출하겠다는 당돌한 우리 반  00이 때문에 아동학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승의 날 뭣이 중헌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