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7년 차 초등교사다, 27년의 세월을 같은 직업에 종사한다는 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나름 뿌듯한 일도 많았지만 남에게 말하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운 일도 많았다는 뜻이다.
그 부끄러움이 나만의 부끄러움으로 끝난다면 굳이 글까지 써가며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했던 부끄러운 일들은 학생들 마음에 생채기 하나 남겼을 것이기에 부끄럽지만 써보기로 한다. 대한민국 교사들이 전 국민의 욕받이(?)가 되는데 나도 조금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부끄러움.
지금 현재 우리 반 학생들에겐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고 싶으니까 부끄러움을 불사하고 담담히 이야기해 본다.
1. 나는 완벽주의자다. 아니 완벽주의자였다. 지금은 나이가 들고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면서 정말 많이 유연해졌다.
2. 나는 지각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도 6시면 문을 따고 들어가는 학생이 나였고 8시 30분이 출근 시간인 현재도 8시 이전에 출근을 하는 게 나다.
3. 나는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라면서 문화적 경험도 부족하고 근엄하고 말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영향이 크다. 그래도 남이 하는 농담에 깔깔 웃을 줄 알고 재미있는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잘 웃는다. 단지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못하고 장난칠 줄 모를 뿐이다.
4. 나는 소음을 싫어한다. 우리 집 자체가 너무나도 조용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5.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글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일기는 계속 써왔고 책도 틈틈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1. 완벽주의자 선생님. 얘들아 힘들었지?
1997년 초임교사였을 때는 급식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처럼 현대적인 급식실이 학교에는 없었고 급식은 교실에서 이루어졌다. 그 무거운 국통, 밥통, 반찬통과 급식판을 아이들이 날라야 했고(지금 같으면 인권침해로 걸릴 일이다.) 저학년의 경우는 조리 종사원분들이 배달을 해 주곤 했다.
그리고 배식은 학생들의 1인 1역할 중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당시는 교사들의 출퇴근 시간이 8시 30분에서 5시까지였다. (아. 다섯 시 반이었나. 아마 다섯 시 반이었던 것 같다. 기억도 희미해지는구나. 슬프다.)
지금은 8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딱 8시간이다. 일반 공무원들과 달리 교사들은 급식시간(점심시간)도 학생 지도에 포함되기 때문에 어느 해부터인가 4시 30분 퇴근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나는 부잣집에서 자란 아이가 아닌 관계로 엄마가 주는 밥을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는 버릇이 있었고, 반찬 투정도 전혀 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어떨 땐 엄마가 아무것도 없는 볶은 양파와 김치만 도시락 반찬으로 넣어줘도 맛있게 먹는 그냥 아주 무난한 순둥이 어린이였다. (커서 언니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언니는 그 양파만 볶은 반찬이 너무나 괴로웠다고 한다. 난 맛있게 잘 먹었는데...)
아무튼 그런 영향으로 교실 배식을 할 땐 급식 지도를 정말 처절할 정도로 철저히 했다. 거기다 급식지도는 교사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니까를 늘 되뇌이며.(그놈의 임무. 임무. 이게 아이들한테 생채기를 남길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3학년 우리 반에 BG라는 아이가 있었다. 눈이 똘똘하고 얼굴이 동그라니 귀엽게 생긴 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 급식 지도에 대한 철학은 확고했다. 무조건 다 먹기.
먹성 좋은 애들은 급식을 깔끔하게 다 먹는다. 심지어 2,3번 받기도 한다. 그 아이들의 배는 볼록하니 귀엽다. 덩치도 또래보다 큰 편이다. BG 같은 아이들은 입이 짧다. 팔다리는 가늘고 키도 작은 편이다. 급식 시간 40분을 다 채워도 밥을 끝까지 못 먹는 경우도 있다. BG도 그랬다. 그렇게 되면 다음 수업 시작 때문에 교실은 분주해지기 그지없다.
난 아이들에게 무조건 다 먹기를 강조하고 계속해서 잔반을 검사한다.
언행일치가 되는 교사가 되어야 되지 않은가. 나도 싫어하는 게 있다. 닭다리.
첫 학교의 우리 영양사 선생님은 유독 닭다리 반찬을 자주 식단에 넣으셨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닭다리가 나왔다. 아마 그 시절은 지금처럼 식문화가 많이 발달되지 않았던 때라 식단 구성에 한계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15cm 정도 크기의 닭다리를 뜯어먹는 건 나에게 곤욕이었다. 닭다리의 그 닭살도 싫었고 무엇보다도 먹다 보면 그 큰 닭다리에 덜 익은 핏자국이 보일 땐 정말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에다가 언행일치를 부르짖는 나는 꾸역꾸역 맛있는 척 다 먹어대곤 했다. 그랬던 나니 아이들 급식지도에 얼마나 철저하고 완벽했겠는가?
흘러내릴 듯한 큰 눈을 가진 BG. 밥 먹을 때마다 늘 힘들어했다. 매서운 눈으로 급식판을 관찰하고 먹어, 다 먹어, 영양을 고루 섭취하려면 다 먹어야 돼를 외쳐대는 선생님.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어느 날 BG 엄마한테 전화를 받게 되었다.
"선생님. BG가 음식을 가방에 넣어서 오고 있어요."
쓰다 보니 너무 부끄럽다. 98년의 나도 물론 너무 부끄러웠다. 아이가 오죽 먹는 게 힘들었으면 내 시선을 피해 먹기 싫은 음식을 가방에 넣어갔을까?
98년의 나니까 극단적인 민원을 피할 수 있었지 2023년의 내가 지금 그러고 있다면 이건 작게는 학교 홈페이지, 교장실 전화, 교육청게시판, 국민신문고, 국가권인위원회까지 온갖 관련 게시판에 도배될 사건이다.
그 당시 어머니들은 선생님들을 정도껏 존경하고 웬만한 일로는 민원도 잘 제기하지 않으셨으니 그냥 전화 한 통으로 속상함을 푸시고 마셨다.
그 뒤로 BG에게 지나친 다 먹기를 강조하지 않긴 했다. 그 상황에서 흘러내릴듯한 큰 눈에 눈물을 쏟지 않았던 BG도 대단하단 생각도 든다. 98년이니까 가능했던 아이들 모습이다.
인간은 개별화된 객체이므로 개개의 특성에 맞게 교육해야 한다는 걸 교대 4년 시절 귀에 닿도록 들어놓고도 그 이론은 교수학습 지도에만 적용했지 급식 시간은 예외로 생각한 어리석은 존재 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융통성 없는 24살 철없는 아가씨 선생님인지. 철없다고 그냥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시절 BG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마 급식 먹기 싫어서 학교 오기 싫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의 나는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학교를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교사가 할 일을 팽개치고 아이들 입맛에만 맞게 지도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게 어떤 건지 대충은 몸에 익혀졌다. 일단 따뜻하게 개개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관심을 가져줘야 된다. 아이들 특성에 맞게.
그때의 나와 지금의 BG에게 말하고 싶다.
"BG야. 철없는 선생님이 너무 미안해. 네가 벌써 35세가 되었겠구나. 겨우 2년 차 선생님한테 그토록 차가운 시선을 받고 먹기 싫은 것도 억지로 먹어야 했던 너. 얼마나 괴로웠을까. 선생님의 생각 없음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네가 선생님 욕을 해도 미워해도 나는 할 말이 없구나."
"0 선생. 아이들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먹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지만 본인이 견딜 수 없는 양과 견딜 수 없는 음식을 그렇게 억지로 먹도록 강요했어야만 했니?학생 하나를 개별로 존중한다는 건 그 아이의 특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거야. 24살 너. 나름 그걸 아이들에 대한 책임 열정이라고 생각했다는 거 알아. 그 나이가 뭐 큰 세상 이치를 깨우칠 나이었겠나만은, 그럼에도 넌 그때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아이들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는 게 다 옳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말이야. 네가 정말 어른이었다면 조금만 더 생각이 깊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어른 말이야."
우리 아이들 아침밥을 먹이고 1시간 가까이 끙끙대며 썼습니다. 별 거 아닌 글인데도 말입니다.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BG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요? 어리석은 존재인 나에 대해서 한 편에 다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길어지네요.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글 쓰면서 또 한 번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