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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n 25. 2023

너가 생각하는 '나'란 여자

도망간 그녀  by '너'란 남편

  그녀는 나와 결혼하기 싫다고 했다. 내가 싫어진 것이다. 아니 지친 것이겠지. 첫 만남 이후 400km의 거리를 넘어서 뜨겁게 사랑했지만,(난 당신 뜨겁게 안 사랑했다고요. 아유 정말. 그냥 밀려서 결혼한 거라고요. 답답한 우리 집 떠나고 싶었다고요. 낯간지러워.) 이젠 그 거리에 지쳐버린 모양이다. 또한, 결혼하면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리고 IMF 이후 발생된 나의 가난도 싫다고 했다.(난 IMF 이전에 당신 안 사겼다고요. 잘 살던 당신은 모른다고요. 다 알고 만났다고요.) 그리곤 하와이로 가 버렸다.

  

  난 한국 지도의 호랑이 발톱 자리 회사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하와이로 갈까 ? 아님 전화라도 해야 하나? 정리하던 물건들을 던져버렸다. 그리곤, 001을 눌렀다. 삐…삐…전화기 너머로 특유의 하와이안 발음이 들려왔다. 

  "This is blah blah…. hotel. What can I help you?" 

  난 더듬거리는 영어로, 그녀의 이름을 말하고는 몇 호에 있는지 물었다. 교환원은 내가 누구냐고 대뜸 물었다. '내가 누구라고 해야 할까?' 순간 머뭇거렸지만, 그냥 오빠라고 했다. 교환원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친오빠인줄 알고 방 호수를 가르쳐 주며 방으로 전화를 연결해줬다.

 

  모든 결혼 커플한테는 각각의 아픈 추억이 있다. 

  결혼의 문턱을 넘으면, 아픈 추억이 연애담이 되고, 그런 힘든 경험이 둘 간의 사이를 더 강하게 만든다. 

  하와이에서 그녀가 돌아와서 결혼하는 데도 1년이 더 걸렸었고, 결혼한지 20년이 거의 다 되어가도 아직까지 서로 간의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힘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맞지 않아서 난리를 피우며 싸워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꽁냥꽁냥(아 당신하고 밥 먹을 때 안 꽁냥 꽁냥했다구요. 그냥 먹는 게 맛있었을 뿐. 먹는데 집중하자고요.) 먹으러 다닌다. 


  삶은 옆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이다. 나를 떠날 때는 콩깍지를 더욱 씌어 놓더니, 결혼해서는 콩깍지를 한꺼풀 한꺼풀 계속 벗겨 버린다.(내가 뭐 어쨌다고? 난 예전 그대로라고.) 그 덕에 눈이 맑아졌지만 이젠 나이 들어서 친구처럼 산책도 가고, 푸근하게 가끔 손도 잡고 다닌다.(젊을 땐 내외한다고 손도 안 잡던 남자가 말이야. 늙어서 왜 이러냐고요.)


  그녀는 고향을 떠나기까지 8년이 걸렸다. 내가 일하는 곳으로 결국 이사를 했다. 자기는 절대 멀리 있는 남자와는 절대 절대, never never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친구 가족 모두에게 선언하고 다녔지만, 결국에는 고향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남자를 만났다. 죽음보다 싫었던 장거리 연애도 견뎠고 주말부부 생활을 8년만에 청산하게 된 그녀다.

  

   떨어져 사는 동안 그렇게 일만 했지만 내가 회사에서 성공을 한 것도 아니다. 그녀는 나의 성공을 바랐다. 젊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12시 넘어까지 열심히 일했다. 지금은 워라밸을 맞추며 산다. 

   가족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면서 내가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인데, 난 남의 남자 (회사 말하는 것임?)노릇만 했다. 늦게라도 알아서 다행이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느끼는 모양이다.

  이제 주말엔 삼시 세끼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같이 산책도 한다. 한달에 며칠은 회사형 인간에서 맞춤형 남편 노릇도 하고 있다.

  내가 내 손의 공을 놓지 않고 있을 때 와이프도 양 손 가득 힘들고 많은 것들을 쥐고 있었다. 우리는 손안에 있는 공들을 놓지 못하면서, 서로 간의 손을 잡아 달라고 아우성 했다. 이제 하나 둘 절대 놓지 않고 싶었던 것들은 놓으면서 서로 손을 잡고 산책을 시작한다.

  와이프도 이렇게 모든 걸 손에서 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고 아직 진행형이다. 내가 요 몇 년 방황을 시작할 때 와이프는 계속 내 손을 잡아 주고 있다. 내가 하나 둘 손에 쥔 것을 내릴 때까지 오래 걸려도 옆에 있어줄 걸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고맙다.


  남편이 쓴 글을 보고 파안대소했다. 중간 중간 낯간지러운 표현들은 삭제하고 싶었지만 원작자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여 파란색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괄호 속에 내 생각을 첨언했다. 정말 지워버리고 싶다. 하하.

   아직도 우습다. 우리 남편은 뭔가 그럴 듯한 글을 너무나도 너무나도 너무나도 쓰고 싶은가보다. 

  가끔은 엉뚱한 이런 남편 때문에 웃으며 산다.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여러분들은 이 글이 그리 우습지 않겠지만 지나간 추억들이 생각나서 저는 한참 웃었습니다. 결혼까지 힘든 일도 너무 많았고 헤어지고 싶었는데 못 헤어지고 결혼까지 왔네요. 그리고 아들 둘이나 낳았네요. 남편은 결혼 후 한동안 내내 그랬습니다. 아들 둘 낳았는데 당신이 뭐 어쩔 수 있을 건데라고요. 무척 얄미웠지요.

  어찌됐든 그런 힘든 날들도 이젠 다 웃을 수 있는 날로 대체되니 세월이 약이란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진부한 표현 씁니다.


  살아보니 정말 어른들 말, 옛날 말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는 그걸 온몸으로 느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이듦의 또다른 행복이네요.(아직 아들 생각하면 웃을 수 없긴 하지만요. 우리 아들은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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