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형이야, 형이라고 불러
한 달 전부터 만 나이 교육을 하라고 업무 담당자님이 쪽지를 보내셨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내일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만 나이가 시행되기 하루 전이니(6월 28일 시행) 꼭 교육해야 됩니다.
만 나이가 시행되면 저는 1년 몇 개월쯤 나이가 적어집니다. 어색하네요.
만 나이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사용을 독려해야 됩니다.
자료를 쭉 훑어봅니다.
1.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법령, 계약서, 문서 등에 나오는 나이는 '만'자가 없어도 나이를 의미합니다.
2. 나이는 '만'자가 없어도 모두 만 나이를 의미합니다.
3. 약을 먹을 때 헷갈리지 않아도 됩니다.(아직 생일 안 지났으니 1알만 먹으면 되겠다.)
4. 만 나이를 사용하면 같은 반에서도 생일에 따라 나이가 다를 수 있지만 친구끼리 호칭을 다르게 쓸 필요는 없습니다.
5.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빼는 방법으로 나이를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청소년 보호법 등 일부 법령에서는 '연 나이'방식으로 나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6. 국민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 연 나이를 사용하고 그 외에는 국민 의견을 수렴하여 만 나이 기준으로 바꾸어 나갈 계획입니다.
며칠 전 학생들 사이에서 싸움이 있었습니다. 우리 반 HJ가 왕 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 나이로 바뀌면 자기가 생일이 빠르니 오빠,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는 데 저는 몰랐습니다.
HJ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될 병이 있는 학생입니다. 혼내기도 미안한 아이입니다. 체구는 자그마한데 너무 날쌔서 달리기를 엄청 잘합니다. 2학년 중에 그렇게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는 처음 봤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는데. 이럴 때 보면 아이들은 슬픔입니다. HJ의 허물을 마구마구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HJ가 힘이 엄청 세요. 팔씨름하면 아이들이 다 져요. 그래서 무서워서 형이라고 불러요."
"형이라고 안 부르면 안 논다고 해요."
"자기가 형이라고 이것저것 명령해요."
아이들 말은 다 믿을 수 없어 재차 확인을 합니다. 똑같은 말이 반복됩니다.
"자기가 왕이라고 해요."
"자기가 무슨 왕이야. 선생님이 왕이지."
이 말은 더 황당합니다. 선생님이 왕이라니요.
"얘들아, 무슨 소리야. 왕이 어디 있니? 요즘에."
"얘들아, 우리나라 누가 다스리지? 그래 대통령. 대통령 아저씨 선거로 우리가 뽑아준 사람이야. 왕이 아니란다. 왕은 옛날에 사라지고 없어.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은데 왕이라고 하면 누군가한테 명령하고 힘이 센 사람 같지? 그런 존재는 없단다. 요즘에."
누군가가 말합니다.
"그래. 선생님은 선생님이지. 무슨 왕이야."
똘똘합니다.
"그래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너희들은 학생이고 그런 거야. 누가 누구에게 왕이 될 순 없는 거야."
아이들은 말을 자꾸 바꾸어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 아이에게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재차 확인합니다.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 HJ가 ~~~~~."
상황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사과를 하시고 지도하겠다고 하십니다.
오후에 전화가 다시 옵니다.
"선생님, 그냥 문자를 보내면 오해가 생길 거 같아 전화드렸어요. 우리 HJ이가 잘못한 것 인정했고 손바닥을 세 대 맞았어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HJ이도 억울한 게 있었다고 해요. 자기는 친구들이 뭔가 피해를 줘도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친구들은 자기 잘못만 들추어낸다고요."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렸고, HJ도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제가 학교에선 엄마니까요.
만 나이 교육을 앞두고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미리 겪었습니다. 담당선생님 부탁이 왔을 때 만 나이 교육을 좀 더 일찍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