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향기 Jun 29. 2023

선생님한테 선물 줄래?

예쁜 말을 하면 예쁜 말이 돌아옵니다.

 유월의 막바지입니다. 유월도 월만큼 바쁜 학교생활을 보냅니다. 현충일과 6.25 전쟁이 있으니 호국 보훈 교육을 해야 됩니다. 고학년은 통일 글짓기 그림 그리기 대회도 하고 있겠네요. 수업 공개도 있습니다. 환경의 날(6월 5일)이 있어서 환경교육도 해야 됩니다. 생존수영 교육도 8시간이나 잡혀 있습니다. 거기다 4세대 지능형 나이스 시스템은 버벅거리고 있습니다. 지능형이 아니라 저능형으로 바뀐 건지, 가뜩이나 바쁘고 여유 없는데 학년말 성적 처리도 늦어집니다. 결과는 안 좋았지만 대회 준비로도 바빴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바쁘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가는 시기입니다.  

 

 아이들은 방학을 기다립니다. 날도 더우니 나가 놀기도 힘겨운 하루하루입니다. 하지만 땡볕이 있어도 나가 놀고 오늘 같이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나가 놀고 싶은 게 아이들이네요. 어릴 때부터 큰 에너지가 없었던 저는 넘치는 에너지가 부럽지만 두렵습니다. 아이들의 에너지가 조금 떨어져야 편해지는 건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해지니 말이 많아집니다. 제가 혼자 떠들고 일제식 수업을 하는 게 속 편합니다. 설명과 시범이 있고 아이들 스스로 만들기나 글쓰기 같은 활동 과제를 수행할 때는 슬금슬금 말소리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궤간 순시를 하지 않으면 잠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바쁜 6,7월이면 과제를 시켜 놓고 급한 일 처리도 하고 싶지만 그것도 수월하지가 않습니다. 아이들 눈엔 선생님이 내 옆에만 없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면 투명인간으로 느껴지는 존재인가 봅니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재잘거림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에너지를 주지만 30명의 소음은 두통을 유발합니다. 미간도 찡그려집니다.


 "얘들아, 돈 안 드는 선물 선생님한테 줄 수 있는데 좀 줄래?"

 또 선물  이야기로 아이들을 꼬드깁니다.

 "뭐요?"

 "너희들이 이번 시간 만들기 할 때 꼼꼼하게 색칠하고 짝꿍과 말하지 않는 게 선생님한테는 아주 큰 선물인대. 돈도 안 들어, 머리도 안 아파, 힘도 안 드는 아주 큰 선물이야. 줄 수 있어?"

  "네, 줄게요."

  아이들은 이럴 땐 기쁨이자 해맑음입니다.

  "정말? 아이고 이뻐라. 역시 우리 반 친구들은 마음도 예뻐."

  교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집니다. 아이들도 선물을 주는 게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는 거라는 걸 아는 나이죠. 그렇다고 한 번에 해결이 날 리가 없죠. 애들은 살아 있고 떠드는 게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얘들아, 선생님 섭섭해. 누가 선물을 거두어 가니?"

  다시 조용해집니다.

  "선물 줘서 너무너무 고맙다. 이렇게 기쁠 수가. 나도 선물로 마이쮸 줄게"

  마이쮸는 교사들에게 사랑입니다.

  ㅇㅈ이가 말합니다.

  "맨날 선물 줄 테니까, 선생님도 맨날 마이쮸 주면 안 돼요?"

  갑자기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큰소리로 말합니다.

  "그건 안 되지. 야 그건 너무해."

  약간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톤도 바꾸어 대응해 줍니다.

  "그러게. 하루 5시간 수업할 때마다 너희들이 나한테 이렇게 선물 주면 정말 기쁘긴 한데, 내가 매 시간 마이쮸를 줘야 된다면 한 달 동안 23일 정도 학교 나오니까, 마이쮸 사 주고 나면 선생님 월급 다 쓰고 없겠는데?"

  아이들은 맑습니다.

  "맞아요."

  "그건 안돼지."

  교사는 때로 연기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령이 없던 시절엔 소리나 지르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감정이라는 건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표현되는 것인데도요. 제가 배워온 방식이 그랬으니까라는 건 변명일 뿐입니다.

  예쁜 말을 하면 예쁜 말이 되돌아온다는 게 너무나 뻔한 이치인데 실천한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젠 연기도 제법 합니다. 물론 고학년에게 똑같은 방법이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저학년을 하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어설픈 연기도 몰입해서 받아들이는 아이들. 저학년 아이들의 해맑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갑자기 또 아들이 생각나네요. 제 아이가 어릴 땐 다 큰 고학년 같아만 보였나 봅니다. 나이에 맞게 예뻐해주지 못했습니다.)


  학교시스템이 젊은 선생님은 고학년, 나이 든 선생님은 저학년으로 갈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좀 바뀌어야 될 거 같습니다. 나이가 많든 젊든 학년을 고루 해봐야 연령에 따른 서로의 고충도 알고, 학년에 고르게 연령이 분포되어야 후배는 선배로부터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를 전달받고, 후배는 바삭바삭한 머리에서 나오는 따끈한 교수 자료를 전달할 수 있을 텐데요.

  여러 가지 여건상 학교 상황이 달라지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나이 든 선생님을 달가워할 리 없는 고학년 학부모와 아이들. 업무를 주기도 힘든 나이 든 선생님. 저학년 아이들을 잘 다루면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기에는 사랑과 지혜와 품이 나이 든 선생님보다는 부족한 어린 선생님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제가 바라는 대로 학년이 구성되기에는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만 나이 6월 28일 시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