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전통적으로 어린이 국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글을 쓰려고 어린이 국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벌써 19회째에 접어들었다.
가끔은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어린이 국회 측에서 지역별로 할당 비중이 있는지 공문이 가는 학교가 따로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왜냐하면 그 이전 학교들에서는 어린이 국회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참여했던 *회 어린이 국회에서는 우리 고향 팀이 무려 3팀이나 수상을 했다.
그해 1등을 한 팀의 학생과 교사에게 프랑스 국회 탐방의 기회가 주어졌었다.
우선 계발활동 시간에 어린이 국회 팀을 만들었다.(지금은 창의적 체험활동 영역 안에 동아리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아마 내 세대 언저리 분들은 다 계발활동이란 용어가 익숙할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 활동, 법률안 발의의 필요성, 법률안의 형식 등을 설명하고 법률안 만들기에 들어갔다.
내가 뭘 알겠는가? 6학년 수업 시간에 삼권분립에 대해서 가르치고 사법, 입법, 행정부가 하는 일들을 가르치지만 뭐 그다지 깊은 내용도 아니고 문과 출신이고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 정치경제 시간을 썩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말이다.
정말 너무 막막했다. 하지만 어떡하나. 주어진 일 해야지. 방법이 없다.
그런데 살아보면 항상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맞다는 걸 실감할 때가 많다. 어쨌든 시작은 했고 뭔가는 만들어서 내야 되고 학생들을 독려했다. 하다 보니 뭔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다행히 학생들은 어른보다 뇌가 말랑말랑해서, 뭔가 하나 톡 던져주면 마치 옹고집전의 항아리처럼 2,3을 선생님들에게 선물해 주곤 한다.아이들은 진짜 기쁨이고 보석이다.
마음에 드는 법률안이 하나 채택되었다. 그걸 가지고 이제 수정 작업을 해야 했다.
이제 고생의 시간이다. 형식에 맞추어 쓰는 게 우선이었다. 이전 학생들의 법률안을 찾아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진짜 국회의원들의 법률안을 찾아보았다. 어떤 형식으로 해야 될지 체계를 잡아나가고 큰 내용을 건드리지 않고 수정 작업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남편도 3,4번 함께 살펴보면서 수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발칙한 남편에서 남편을 너무 헐뜯은 것 같아 미안하다. 사실 우리 남편은 바쁜 와중에도 내가 하는 일에 간간히 도움을 주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최종 법률안이 완성되었고 SY이도 엄청난 연습을 했다.
교감선생님도 말씀하셨고 나도 법률안에 맞게 소품을 준비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학교 일이란 게 이것만 매달릴 수도 없고 그 해는 부장을 하느라 회의 참여다 뭐다 바쁘고 우리 큰아들도 겨우 3돌밖에 안된 상황이니 시간이 많을 턱이 없었다. 소품 준비 생각만 있지 밀리고 밀리다 국회 가기 전날 난 그냥 퇴근을 해버렸다.
'낼 새벽에 깨서 만들어야지..'
담날 새벽.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자. 잠이나 더 자자. 소품 있다고 달라지겠어?'
합리화 시작이다.
SY이는 법률안에 맞는 그림이 들어간 의상을 입으려고 했는데, 우리 근엄하신 교장선생님께서 복장이 그게 뭐냐고 호통을 치셔서 입지 못했다. 법률안 내용도 읽어보시도 않고 말이다.
이때 교장님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지 못한 나도 어지간히 바보다.
그저 어른들 말에 깨갱하던 30대의 나여. 슬프도다.
처음 와보는 국회. 발표하는 SY이는 얼마나 긴장이 될까? 하지만 너무나도 씩씩하게 발표를 잘했다. 내가 봐도 진짜 국회의원 같은 멋진 모습이다. 내 뒤에서 지켜보시던 다른 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난 저 000에 관한 저 법률안이 마음에 드네. 나머지는 별로인 거 같아."
아, 기쁘다. 그렇다고 무슨 기대를 한 건 아니다. 그저 좋다는 말이 기쁠 뿐.
2. 2프로 부족한 기억력
"여보, 나 2프로 부족해서 항상 아쉬웠던 결과들이 많았잖아. 그거 글로 쓰고 싶은데 기억이 잘 안나."
"에구. 당신 기억력도 2프로 부족하네."
그렇구나. 그렇게 수많은 실수를 반복하고 항상 뒷심 부족으로 성과가 아쉬웠던 것들이 많았는데 기억이 안 나네. 기억력마저 2프로 부족하구나. 그래도 2프로 부족한 덕분에 좋은 점도 있다. 대화를 해 보지 않고 보면 차가워 보이는 내 인상 때문에 사람들은 오해를 하는데, 직접 대해 보면 여리고 따뜻한 인간미가 있는 인간이라고 말하곤 한다.
제가 데리고 나갔던 SY이는 2등을 했습니다. 프랑스 국회 탐방의 기회는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물론 소품을 만들었다고 1등을 한다는 보장은 없었겠지만 심사에 당일 참석한 어린이 국회의원들의 투표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확률은 높아졌겠죠.
그리고 우리 팀에게도 70만 원 도서상품권이 부상으로 주어졌습니다.
무슨 기대를 하고 갔던 건 아니었습니다만 학교로 돌아갔을 때 교감선생님도, 남편도 아쉬워했습니다. 소품을 왜 준비하지 않았냐고요. 우리 교장님은 그제야 법률안을 제대로 봤고, 수상 결과와 70만원 상품권을 보고 그렇게 큰 대회(?)인 줄 몰랐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십니다.
아. 저는 왜 이리 2프로 부족할까요? 천성은 변하기 힘든가 봅니다. 항상 뒷심이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2프로 부족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결승선 앞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못 올려서 2등으로 밀린다면 너무 아쉽고 후회될 테니까요.
1차로 통과된 우수법률안입니다. 저 중 한 팀이 우리 학교 팀입니다. 수상 순서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