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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영락없는 직장인이구나"라고 느낄 때

by 초록해

아침 5시 5분. 알람이 울린다.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자마자 깜짝 놀라 몸을 일자에서 L 자로 만들어 잠깐 묵념에 빠진다.

1분 정도 흘렀을까. 자연스럽게 나는 화장실로 몸을 옮긴다. 그렇게 나는 쭈그려 앉아 머리를 감기 시작한다.


'쭈그려 앉아 머리 감으면 허리 작살난다는데...'

매일 이렇게 쭈그려 앉아 머리를 감지만, 매번 이런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주어진 15분이라는 시간에 강박을 느끼며, 내 허리 걱정은 잠시 제쳐두고 머리에 물을 묻혀 세제로 세척한다. 빨래하듯.



반사적으로 알람에 일어나는

ㄴ ㅐ 몸 뚱아리.


그렇게 나는 회사로 향한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삶이란 아침부터 고되다.

5시 30분에 집에 나와서, 아무도 없는 지하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건다. 분명 아무도 없다.

그렇게 10분 정도 운전을 하고 나면 도로 옆 내 차들은 친구들이 생긴다.


"아직 해도 안 떴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침 6시 되기 전부터 움직이는 걸까."

나만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며 자극받기는 커녕 한숨이 먼저 나온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하다 보면 아침 업무를 하기 전부터 피로감이 몰려온다.

아침 커피 한잔은 거의 생명수와 같다. 한잔을 때리고, 다시 아메리카노 한잔을 리필한다.

한잔의 아메리카노로 피로감을 풀기엔 역부족이다. 역시 1+1


아침 내 심정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기는

ㄴ ㅐ 몸 뚱아리.


어어어 어~~ 하다 보면 점심시간.

어어어 어~~ 하다 보면 퇴근시간.


'책임감'이라는 수식어의 노예가 된 나는 퇴근을 하며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긴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집에 가서 하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해야 하기에, 책임감이 있는 직원이 되기 위해 노트북을 꼼꼼하게 챙긴다.


세상에 많은 회사들은 '보안'에 혈안이 되어있다.

사실 크게 내 노트북에는 숨겨야 할 자료가 많지 않음에도, 그놈의 '보안' 때문에 일이 이중 삼중이다.

보안이 중요함을 알지만, 자동적으로 귀찮음을 토로하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렇게 나는 '책임감'이라는 노트북을 챙긴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노트북

월급날은 귀신같이 기억하는

ㄴ ㅐ 몸 뚱아리.


25일. 내 통장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하루.

하루 중 내 통장에 가장 큰돈이 들어오고, 자잘하게 분할되어 나가는 이체의 흔적들.

한 달 중 그래도 잠시 한숨 쉬며 숨 고르는 날. 다가올 또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

노동력의 대가로 받는 대가. 정당하지만 때론 씁쓸한 그 날. 월급날이다.


내 몸뚱이가 들어오는 월급에 무뎌지게 될 때쯤 나는 직장인이 다 됐구나 느낀다.

"나는 내가 받는 월급 값은 하고 있는 것일까?"

아... 이딴 생각은 집어치우자.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출처: 양경수 작가님의 이미지

따뜻한 온수에 하루 스트레스를 씻어내리는

ㄴ ㅐ 몸 뚱아리.


저녁 샤워는 나에게 주는 선물과 같다. 하루 중 기분 더러웠던 일, 고민했던 일, 짜증 났던 일 등 모든 잡스러운 생각을 따뜻한 온수에 씻어 하수처리장으로 흘려보내버린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그 찌꺼기들이 남아 내 몸에서는 악취로 가득 찬다.


그렇게 하루 중 내 몸에 달라붙어 있던 악취들은 따뜻한 물과 연기로 없어진다. 그렇게 나는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니, 다시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출처: SNL 극한직업 중

그렇게 나는 '나도 영락없는 직장인이구나"라고 느끼며, 베개에 머리를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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