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대학교 기숙사 생활, 군대 집합 생활을 거치며 나는 나만의 공간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평소 소심한 성격인 탓에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나였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에는 의도적으로 한 학기 모두 발표를 해야만 하는 수업을 골라 나를 시험해보기도 했었다. 그런 나에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고, 회사를 출퇴근하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18년 된 중고차 한 대를 내 명의로 데리고 왔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에는 너무 많은 것을 조심하느라 온전히 그 공간을 누릴 수 없었다. 봐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운전석에 앉고 나면 준비해야 할 것 천지였다.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는 여러 가지 모양의 거울을 보며 나를 정신적으로 위협하는 많은 종류의 차로부터 나의 차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마치 오선지의 음계처럼 차선 변경을 하는 것이 두려워 매번 솔만 치며 직진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하나 두 개씩 그 공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회사를 수도권으로 옮겼다. 수도권의 출퇴근은 전쟁과도 같았다. 출퇴근 3시간 동안의 운전시간은 잦은 브레이크로 인해 나의 발목을 앗아갔지만,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나의 자신감을 향상시켜주었다.
그렇게 출근길 대환장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아침은 고요하게 뉴스 브리핑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눈꺼풀이 내려올 때쯤, 평소 나의 노동요 플레이리스트를 ON 한다. 밤새 OFF 되었던 나의 텐션을 양껏 높이기 위한 나만의 비법이랄까. 뭐 사실 비법이라기보다는 아침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뭐 죽고 싶지 않아 살기 위한 발악에 가깝다.
그렇게 아침 짧았던 나의 라이브 콘서트가 끝났다. 오전에 너무 격렬한 라이브는 오히려 7시 이후 목 끝에서 차오르는 피 맛을 경험할 수 있기에 40%의 에너지만 허용한다.
퇴근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짐을 싸고 인사한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소리를 허공에 4발 정도 장전 후 발사한다. 그러고는 누구보다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잡고 내 차로 향한다. 그리고 BPM 200 이상의 노래들을 장전한다.
오전에 쓰고 남았던 60%의 에너지에 추가로 남아있던 20%의 에너지를 더 끌어와 나의 흥을 점점 올린다. OPIC IH를 받기 위해 외국인인 것처럼 나를 빙의한 후, 나는 노래에 몸을 맡긴다. 외부에서 나를 쳐다보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긴다.
이 시간이야말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아닐까. 이 때야 말로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나의 목소리를 아무런 간섭 없이 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이 시간이 쌓이고 쌓여 나의 자신감을, 더 나아가 나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