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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그리고 그를 반겨준 식물들

그는 정원사가 되었습니다.

by 초록해

도망치듯

내려온 고향


제가 아주 좋아하는 동생이 있습니다. 그는 솔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을 소중하게 대할 줄 압니다. 그런 그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 부르는 사람도 많았죠. 그렇게 그는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사소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길이 닿고, 그가 키보드에 손을 가져다 대면 사소한 것들도 가치 있게 변했죠.


그렇게 코로나로 추웠던 겨울, 그는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놓았습니다. 그의 전화를 받고 저도 과거의 내가 떠올랐습니다. 사회초년생 시절, 저도 그와 똑같이 강남에서 일을 했습니다. 1년쯤 지났을까요.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그 속에서 저는 미소를 잃었죠. 그도 갈수록 표정을 잃어가는 그의 모습이 무서웠다고 했어요. 저도 그 감정을 똑같이 느꼈던 터라,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그는 그 겨울, 퇴사와 함께 서울 생활을 도망치듯 정리하고 내려왔습니다.




어떻게 사는 삶이

후회 없는 삶일까?


"요즘 뭐하고 지내?"

"엄마 밥 먹으면서 쉬고 있어요~!"

"맞아! 그런 시간이 너무 필요해!"


요즘 뭐하냐는 안부 인사에 엄마가 해준 밥을 실컷 먹고 있다고 말했죠. 그리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사는 삶이 후회 없는 삶일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의 리듬을 나에게 가져올 수 있을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질문을 하고 또 했어요.


그러다 그는 꽃꽂이를 만나게 되었죠. 그리고 가드닝을 만나게 되었죠. 여러 종류의 흙을 만지며 어린아이와 같이 촉감놀이를 하다 보니 상했던 그의 마음이 풀어졌고, 새순이 나는 식물을 보며 오늘의 희망을 떠올려 보기도 했어요. 어떤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듯 아꼈던 식물을 떠나보내야 했고, 어떤 날에는 사랑을 줘도 변하지 않는 식물에게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식물을 돌보며, 식물들에게서 그는 그의 모습을 봤어요. 그리고 느꼈어요.


"내가 많이 까탈스러웠구나."





계절과 함께하는

그는 정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본인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지요. 본인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그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했죠.


그렇게 그는 본인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바람을 뺨으로 느껴가며 일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그는 정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는 말했어요. "우리 모두의 삶의 여정도 있는 모습 그대로, 걸어가는 것 자체로 아름답다."

본인이 원하는 일을 두렵지만, 거침없이 발을 내딛는 그의 모습 속에서 뭔지 모를 생명력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당당하게 세상에 나와 본인을 '정원사'라고 표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보는 사람까지 행복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하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그가 대신해주고 있어서는 아닐까요?


광주를 가게 되면, 그의 정원은 꼭 한번 봐야겠어요.

그 정원은 계절과 함께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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