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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위해 그림을 그려준다면...

by 초록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다.


가끔 우연한 만남이 우리를 찾아온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처음 보는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신기하고도 우연한 만남이 지난주 토요일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 부부는 병원을 들렀다 2인전을 하고 있는 갤러리로 향했다. 갤러리에 도착해 그림을 보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았다. 그러다 갤러리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서 작가님과 한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작가님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부끄러웠지만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작품을 매개로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중간중간 대화 내용을 알아듣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몰랐던 단어와 문장을 듣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얼마 시간이 지났을까. 2인전을 진행하고 계신 다른 작가님도 오셨다.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두 명의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작가님의 생각을 듣는 것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조금 있다 2인전을 보러 오신 또 다른 한 분도 전시를 보러 오셨었는데, 작가님과 평소 잘 알고 계셨는지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앉으셨다. 그렇게 우리는 때론 몇 명씩, 때론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그려주시는 모습.PNG 뫼화(@mh.art.love) 작가님이 그려주신 작품



마지막으로 테이블에 앉으셨던 분은 공책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어느새 그분은 우리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계셨다.


"저의 모습을 그려 주시려고 저를 쳐다봐주시는 그 시선이 좋아요."


아기 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싶어 나만 쳐다보던 부모님의 시선 이후, 우리는 언제 그런 시선을 느껴보았을까?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주변의 시선을 나만 의식하며 홀로 압박받고 있지는 않았나? 평가의 시선이 아닌 나라는 존재를 그림으로 그려내기 위한 작가님의 시선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편견 없는 타인의 시선이 필요했던 것이 분명했다.




버스 안, 지하철 안 사람들의 모습이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작가님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생겨 집에 돌아와 인스타 속 작가님의 작품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작가님은 버스 안, 지하철 안,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모습을 공책에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셨다. 버스 안, 지하철 안 사람들의 모습이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모습이 내 모습인 것만 같아 한동안 멍하니 작가님의 그림을 쳐다보았다. 작가님도 출퇴근 시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셨지만, 결국엔 본인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니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캡처33.PNG @mh.art.love (뫼화의 인물탐구생활)



오늘은 회사에 있을 때부터 집에 오기 전까지 너무나 무기력했다. 집 탁자 위에 있는 '무기력하거나 하고 싶은 게 없거나'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꼭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만두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회사를 놓기엔 회사가 주는 게 너무나도 크기에... 지난 주말, 갤러리에서 들었던 '낭떠러지에서 용기 있게 떨어져야 한다."는 작가님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사실... 낭떠러지에서 용기 있게 서 있는 것도 쉬운 건 아니다.'



캡처.PNG @mh.art.love (뫼화의 인물탐구생활)



누군가 나를 위해 그려준 그림에서 에너지를 얻었듯,

나는 오늘도 집에 돌아와 키보드에 손을 올려 글을 쓴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하루 종일 잔소리에 시달리다 녹초가 되어버려도 집에 와서 글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어떠한 잡생각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 해줄 때의 그 카타르시스를 잠깐이라도 내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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