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을 받아서인지, 우리는 글을 쓰는 것 자체에 두려움이 많다.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할까 봐,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비판할까 봐,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할까 봐, 우리는 첫 단어를 쉽게 쓰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내 이야기를 편하게 글로 적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 소심한 성격이던 나는 내 이야기를 글로 적다 보면 쌓여온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서 일기를 쓰는 나 자신이 가식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인데도, 누군가가 봤을 경우를 가정해서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포장해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이야기를 문장으로 쓰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느꼈던 감정에 대해 단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열등감, 쪽팔림, 외로움, 학관 앞 벤치, 10분간 휴식, 바람소리, 카디건, 사람들의 목소리, 굴러가는 축구공, 춤추는 사람, 뻥튀기, 기타, 아이스크림, 밀린 과제, 과제 기한, 친구에게 전화, 샤워, 내일 발표, 내려오는 눈꺼풀'
단어를 나열하다 보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문장으로 쓰지 않으니, 내가 한 문장을 쓰고 금방 생각났던 문장이 머리 저편에 휘리릭 날아가는 일도 줄어들었다. 누군가 내 일기를 보더라도 세부적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이 단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글들은 나만 알 뿐이었다.
학창 시절 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정해진 답을 찾아는 것만 같아 불편했다. 분명히 한 단어를 통해서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시선은 다를 수 있는데, 우리는 한 가지 답을 찾기 위해 운동장에 서있는 경주마처럼 느껴졌다. 나는 빈틈 많은 글이 좋다. 때론 맞춤법이 틀려도, 때론 터무니없는 근거로 한 가지 주장하는 글들도 소중하다. 오히려 그런 글들을 보면 없던 내 주관이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는 너무나 좋은 글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오히려 이상한 글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빈틈이 많은 글은 나를 더 채워지게 만든다. 그리고 때론 반대의견을 표현하게 만드는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 그런 글들이 많아져야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하는 말에 '네!'라고 답하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