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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해 Apr 17. 2022

출산 유도분만, 엄마와 아기의 첫 협업

이제 아가가 정말 세상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유도분만 날짜 당일 오전 6시 20분까지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병원으로 가기 전 준비를 하면서 오전 6시에 시작하는 고뉴브의 뉴스 브리핑에 사연을 보냈는데, 사연에 당첨됐다. ㅎㅎㅎㅎ 그렇게 고디님과 밍키님의 응원을 받으며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 6시 20분 : 입원실, 분만실 수속, 혈압, 피검사, 내진


남편은 분만실 입구 밖에서 기다리고 아내 먼저 이 모든 일을 한 시간 정도 준비한다. 내가 마음으로 지지해줄 수는 있지만 정말 오늘은 엄마의 역할이 중요한 날이구나를 순간 느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지를 해줘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7시 30분: 관장 시작


"이제 남편분들은 들어오세요~!"


준비가 다 끝난 모양이다. 이제 들어가 보니 아내는 분만할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있는 상태였다. 분만 가운을 입은 아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관장을 준비했다. 처음 해보는 관장에 아내도 적지 않게 긴장을 했다. 수액과 촉진제를 달고 있어서 걸음걸이가 힘든 아내를 위해 지금부터 아내의 발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 8시 : 수액 및 촉진제 투여 시작


배에는 아가의 심장박동수를 나타내는 기계를 계속 끼고 있고, 그 상태로 수액과 촉진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던 아내가 조금 있으니 조금씩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지 않게 웃음을 줘야겠다는 나의 한 시간 전 계획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궁이 하나도 열리지 않은 상태로 왔기 때문에 처음 느끼는 진통이라 그런지 더 힘들어했다.


- 9시: 촉진제 단계 올림, 이후 과장님 내진


촉진제 단계를 올리고 나서 좀 더 큰 진통이 아내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심해지자 아내는 과장님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진을 시작했다. 남편은 내진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난 화장실로 향했다.


"아가가 그래도 많이 내려왔네요~!"


아가가 많이 내려오면 올수록, 아내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유튜브 맘똑티비에서 배운 마사지를 실제로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마사지 강의를 받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10시~11시: 양수 터짐, 이후 내진 후 자궁문 2cm 열림


내진을 해서 그런지 양수가 생각보다 빨리 터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수가 터지고 내진 후에 선생님께서는 자궁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원래 유도분만 전에 자궁문이 열리고 오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보니, 자궁문 2cm 열린 것에 선생님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아내의 진통은 점점 세졌고, 아내는 나에게 마자지 요청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내의 심리적인 안심을 시켜주는 것과, 어제 배운 마사지를 해주는 것, 그리고 가제 손수건을 축축하게 해서 그녀의 입을 계속 닦아 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 3가지를 나의 오늘 루틴처럼 하기로 결심했다.


- 12시: 분만실 이동


요즘 출산하는 가정이 많다 보니 분만실도 거의 만실이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조금 더 편한 방으로 옮겨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짐을 싸고 다시 분만실을 옮겼다. 


"이곳이 우리 아가가 세상에 나올 공간이구나!"


침대 쿠션이 좀 더 편한 곳이라 아내의 등과 허리가 지금보다는 덜 무리가 가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 있다 항생제 알러지 테스트 후에 항생제를 맞았다. 분만실로 옮겼지만 진통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 심해질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3가지 루틴이었다.



- 1시~ 3시: 진통 극심, 위기 발생 (자궁문 5cm 열림)


진통이 더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내에게 왔던 진통은 진통도 아니었나 보다. 진짜 극심한 고통에 빠지게 되니 아내가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몸에 진이 빠지던지... 그러던 중 갑자기 아가의 심장박동수가 100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갑자기 그 층에 계신 간호사 선생님들이 다 들어오시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더 긴장을 하게 되었고, 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사지를 해줘도 돌아오지 않은 근육들로 인해 간호사분들은 아내가 숨을 쉴 수 있게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셨다.


"산모님 아가가 많이 힘들어해요! 몸에 힘 빼시고 숨 쉬셔야 해요!"


한 시간 정도 이 방에 모여있는 모두가 긴장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 아기의 심박수가 100 이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숨이 멎는 것만 같았지만, 나까지 긴장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아내에게 말을 걸면서 긴장을 풀고 숨을 쉴 수 있도록 했다. 갑자기 자궁문이 열리면서 아내와 아가가 모두 놀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다.


- 오후 4시: 무통주사 투여


사실 오전부터 아내는 선생님들에게 무통주사는 언제쯤 맞을 수 있냐고 계속 물어봤다. 나는 조금 아프면 그냥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무통주사도 맞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통으로 너무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단비 같은 선생님의 말씀!


"이제 무통주사 놔드릴게요! 많이 괜찮아지실 거예요!"


고통 후에 맞는 무통주사란 아내에게 가뭄 뒤에 오는 단비 같았다. 그녀는 그렇게 무통주사 후, 안정을 되찾았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잠깐잠깐 졸기도 했다. 


- 오후 5시: 내진 후 자궁 9cm 열림

- 오후 6시: 내진 후 자궁 10cm 열림


생각보다 아가가 많이 내려왔다. 자궁 수축 간격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후반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시간에 와서 유도분만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이틀까지 걸릴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진행이 빠르게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후 6시 10분: 힘주기 연습 시작


아내는 자궁 쪽에 묵직한 느낌과 강도가 더 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통주사를 맞아 고통은 덜했지만, 엉덩이에 과일이 걸려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뭔가 불편한 느낌. 그런데 그 느낌이 처음에는 참외였는데, 갑자기 멜론이 되기 시작했고, 그러다 수박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불편하고 찝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모님, 아무런 고통 없이 아기를 낳을 수는 없어요. 이제 힘주는 연습하셔야 해요!"


그렇게 두 시간 정도 힘주기 연습을 시작했다. 난간을 잡고 힘주는 연습을 하는데 출산 후에 난간만 봐도 트라우마가 생길 거 같다고 했다. 그만큼 힘줘서 아기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오후 8시 : 아기 나올 준비!


갑자기 분위기가 병실이 수술실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핀 조명과 많은 트롤리(?) 들이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가위들이 세팅되기 시작했다. 나도 수술복으로 환복 했다. 세팅이 되고 나서 나도 아내 옆으로 가서 아내와 힘주기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어제저녁 맘똑티비에서 봤던 함께 힘주는 것을 실제로 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어깨에 내 팔을 끼우고 같이 힘을 주기 시작했다. 줄다리기하는 느낌으로 힘을 주기 시작하니 갑자기 아가 머리가 뽁 하고 나왔다. 그리고 간호사님이 몸통과 다리가 잘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우리도 다시 한번 줄다리기하듯이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아가가 세상에 나왔다.


- 오후 8시 24분: 아가 세상에 나와 5초간 세상에 함성


아가가 태어나고 나니 선생님들께서 아가가 나온 시간과 아기의 몸무게를 알려주셨다. 나는 탯줄을 자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탯줄이 한번에 잘리지 않았다. 이 줄로 아가가 엄마를 통해 영양분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뭉클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며 나 또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엄마는 위대하다"는 말이 여기서부터 시작하는구나라고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함께 아내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 2명의 가정에서 3명의 가정이 시작된다는 것이 벅차올랐다. 


"자 이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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