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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해 May 04. 2022

아들을 위한 출산휴가가 코로나 격리로 바뀌다니..


아들아.

아빠는 너를 맞이하기 위해 2주 동안 밤잠을 설쳤어. 네가 조리원에서 나올 생각을 하니 생각보다 준비할 것들이 많더라. 엄마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아빠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할 거야. 네가 세상에 나오면서 알게 된 한 가지가 있어. 아빠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해주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아빠가 너를 위해 해주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런 현실적인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욕심을 덜어내는 법을 조금씩 익혔어. 너 덕분에 욕심을 덜어내는 방법도 알게 되었네.


그리고 아빠는 너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선물해준 것들을 하나하나 뜯기 시작했지. 그러면서 느꼈단다. 네가 세상에 나올 것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하루하루 너를 돌보기 위한 최적화된 집을 만들었어.





아들아.

그리고 드디어 너를 만났지.

넌 그새 많이 컸더라. 금세 몸무게가 늘어난 널 보며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네가 우리 집에 오면서 아빠도 긴장이 많이 됐나 봐. 슬슬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라고. 그렇게 다음날 아침 이렇게는 안될 것 같아 집 앞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으려고 했어. 수액을 맞기 위해서는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했지. 의도치 않았던 코로나19 검사에 이어 아빠는 그동안 걸리지 않고 잘 버텼던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단다.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더라. 그 순간에도 너의 건강이 걱정되더라고. 그 사이 우리 아기가 코로나에 노출되지는 않았을지. 그 순간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알겠더라. 나보다 너를 걱정하는 날 보며, 엄마가 생각났어. 아가야 너의 존재로 인해, 엄마를 기억할 수 있어 행복했어.


아빠는 급히 집이 아닌 머물 곳을 알아봤어. 너의 건강을 위해. 너와의 완전한 격리를 위해 머물 수 있는 곳을 30곳 넘게 전화를 해봤지만, 그 어느 곳도 코로나 확진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더라. 그때는 집에 화장실이 한 개 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 그렇게 아빠는 지인의 도움으로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얻어 급하게 너와의 이별을 강행했어.





아들아.

코로나는 생각보다 많이 아프더라. 목에 면도칼이 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 아픔을 우리 아기가 겪을 생각을 하니 집에서 빨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아기가 아플 생각을 하니, 분명히 내가 아픈 게 더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 안보는 일주일 동안 네가 더 무럭무럭 자랄 것을 생각하며 웃고 있는 날 발견했단다. 아빠는 네가 성인이 돼서도 이렇게 너를 보지 못하는 일주일을 아쉬워하는 아빠가 되어야지 다짐했단다.



아빠는 독방에 머물면서 박노해 시인의 '우리가 만나'라는 시를 보았단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 아기가 생각나면서 아빠는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 아빠가 어릴 때 할머니는 아빠의 불안한 감정을 채워주는 존재였단다. 그렇게 실수투성이인 아빠를 할머니는 많이 채워주셨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오히려 할머니께서 실수를 많이 하시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빠는 할머니의 실수를 채워주었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빠와 할머니는 이별을 했단다.

할머니는 아빠가 외로워하지 않도록,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 아가를 세상에 보내주신 것만 같아. 그리고 할머니와 아빠가 했던 것처럼, 아빠는 우리 아가와 함께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고 채워주며 이 지상에서 한 생을 동행하기를 바라.


아들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우리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설렌단다.

아들아! 아빠가 고향에 내려가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단다. 그리고 사랑한단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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