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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해 Nov 12. 2019

나도 누군가의 '개새끼'다.

직장 내에서 좋은 사람이란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회사라는 같은 공간에 있는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사랑, 인정받는 전지전능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장생활을 4년이나 한 이후에 깨닫게 되었다.


신입사원으로 처음 회사에 들어가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막내들이 하는 일을 나에게 하나 두 개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어떤 누구의 신입시절이 그러하듯 대부분이 하기 싫어하는 (잡)일을 도맡아서 했다.

처음에는 "잘한다~ 잘한다~"라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주변을 정돈하고, 치우고,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으면 '누군가는 해야 되지 않겠어?'라는 마음으로 (잡)일을 했다.


'주인의식'

"회사에 제일 먼저 와서 불키고, 제일 나중에 나가면서 불 끄고 나가야 한다"라고 배웠기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이런 일은 일상이 되어갔고 주변 사람들 또한 나를 일개 청소부로 생각하는 듯했다.


지나친 피해의식일 수 있겠지만 내가 그런 감정을 한 번씩 느낄 때마다 나는 한 명씩 나의 '개새끼' 리스트를 만들어 나갔다. 당신이 상상한 그대로 한 조직 내에서 상승곡선을 그리듯 나만의 '개새끼'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내 마음속의 대표적 '개새끼'들은 5가지 종류로 나의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1. 강약약강 人: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스타일. 이런 스타일의 경우에는 약자인 나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거나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킬 때 특히 눈웃음을 많이 친다. 그리고 착한 선배 코스프레를 할 때는 카톡으로 ^^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며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특히 본인보다 상급자에게 쓰는 말투와 하급자에게 쓰는 말투가 매우 다르다. 하지만 본인은 그 말투의 뉘앙스를 알지 못하며 본인이 괜찮은 선배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2. 비쩍 마른 하이에나 人: 겉은 번지르르하고 깔끔해 보이지만 상사임에도 자기 소속 팀원들의 일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상사에게는 팀원들이 한 일도 자기가 한 일 마냥 과장해서 보고하며 매번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자신에게 제일 먼저 가져오라'고 주문한다. 그래서 6개월만 같이 근무를 해보면 병신이 아니고서는 그 라인을 타는 사람은 없다. 본인도 그것을 알아서일까 매번 '신입'만을 하이에나처럼 노리며 그 신입을 본인의 비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3. 말꼬리가 긴 뱀 人: "이거 해줄래?", "이거 좀 다시 해야겠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이거에 대해서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상관없는데 윗분들이 보시기에는 기분 나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식의 대화를 이어나가며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마침표를 들을 수 없다. 기본 2시간 토킹 어바웃. 개미지옥급이다. 주로 극도의 꼰대일 경우가 대다수이며, 상관에게는 극도로 충성을 다한다. 본인이 상관에게 하는 것처럼 하급자가 본인에게 충성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최고 절정은 본인이 젠틀하며 합리적인 인간이라 착각한다는 것이다.


4. 말투가 싸가지 없는 자유로운 영혼 人: 꼭 학교에 다니면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건 직급과 상관없이 태생이 그런 사람이다. 말해줘도 모른다. 뭔가 대화를 하는데 비꼬임을 당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관련 자료를 요청할 일이 생기면 전화 대신 메신저나 메일을 사용하게 한다. 이런 경우에는 완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마이웨이를 선택한 사람일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그럴 경우는 나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기에 상관없다. 하지만 이런 영혼들의 경우 중 최악은 본인보다 직급이 낮은 경우와 직급이 높은 경우를 대할 때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이다. 직급이 낮은 사람과 단둘이 있을 때와 대다수가 같이 있는 상황일 때 다른 제스처를 취한다. 다만, 더 놀라운 것은 본인이 그렇게 카멜레온처럼 변한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5. 본인 강아지 다루듯 후배를 키우는 人: 같은 팀에 있는 후배를 진짜 본인 새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도 가족과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귀찮을 텐데도 후배가 하는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확인하고 체크해준다. 위기의 순간에 실드를 쳐주며, 끝까지 본인이 책임을 지고 같이 해결해주려고 노력한다. 그 조직 내에서 함께 공생할 방법을 항상 찾는 사람이다. 가끔 가족들끼리도 짜증 날 때가 있듯이, 너무 과한 간섭으로 후배 기분을 상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뭐 상관없다. 그거쯤이야 그 이외의 좋은 것들이 너무 많기에 무시할 정도다. 회사 일 뿐만 아니라 배울게 많은 인생의 형 or 누나이다.


누구나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개새끼 한 마리씩은 마음에 품고 산다.

그리고 퇴사할 때만을 생각하며 개새끼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상하며 소설을 쓴다. 대부분 그 소설은 발간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허공만을 떠돌다 구름처럼 사라진다.


나도 100년, 1000년 신입이진 않는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도 후배가 생겼다.


후배들에게, 아니 선배들에게 나는 어떤 개새끼로 분류될까?

그저 같이 있는 게 죽을 만큼 싫을 정도는 아닌 개새끼로 분류된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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