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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해 Dec 18. 2020

완벽해야 된다는 강박

빈틈이 없어야 한다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어릴 때 부터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무조건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컸던 터라, 내가 생각했던 흐름과 무언가 흐트러 졌을 때 나는 가끔 통제력을 잃는다. 조금은 둔하고 무딘 성향의 사람을 보며, 그들을 부러워했다. 


영화 인턴에서 젊은 커리어우먼 CEO인 줄스가 시니어 인턴인 벤과 처음 시간을 보내면서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불편했는지 했던 말이 있다.

"Too observant" 


나도 시니어 인턴인 벤과 같이 너무 관찰력이 많은 사람이다. 

관찰력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상대방이 취하는 제스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된다. 

뭐... 한마디로 그냥 예민하다는 것.


어떤 것이 나를 이렇게 예민하게 만들었을까.

어릴적 부모님의 생활 습관일까?

10대 때부터 항상 혼자 결정을 해야해서 일까?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해서 일까?

아직까지 어른이 됐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회피할 수 없는 선 안에 갇혀져 있기 때문일까?

어딘가 발산할 수 없는 상태여서 그런가?




설마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 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20대 후반에 너무 흔하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나를 감쌌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애썼다. 어짜피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삶에 행복한 것이 90, 힘든 것이 10 이라는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사람은 행복한 것보다 힘든 것에 더 좌지우지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는 벤이 부러웠다. 동료가 집을 구하다가 집을 구하지 못해, 자기 집에서 1-2주 정도 지내도 된다고 허용하고 나서 동료가 집에와서 자신의 영역을 파괴하려 들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응 그건 무리한 부탁이야"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면서도 자신의 영역은 무례하지 않게 정확하게 지키는 것. 그런 마음속과 언행의 일치는 나이가 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회사에서 나는 얼굴은 웃고 있는데, 마음속에서는 불덩이 같이 분노로 가득찼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나의 이런 생각을 다 알고 있겠지?




집 안에 있다보면 리모델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삐져나온 페인트 자국, 벗겨진 페인트 자국, 가구를 옮기다 찍긴 걸레받이, 마감이 울퉁불퉁한 벽지 등 내가 중요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냥 넘겼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새롭게 보인다는게 아니라 이게 이 공간에서 원래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내가 나의 중요도 섹터에 넣어두지 않았다는 것.


줄스가 유한한 시간 속에서 80%를 회사에, 20%를 가정에 쏟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이 방도 원래 내 인생에서 한 3%밖에 차지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환경은 중요하다. 그 3%가 30%가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단시간에.

그렇게 삶을 사는 환경이 중요함을 다시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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