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쫓기기보다는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자
막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런 거였다.
“이제 눈 낮춰야지”
“소개팅 들어올 때 얼른 가야 돼”
“너도 곧 퇴물이야”
결혼을 둘러싼 수많은 말들이 하나같이 조급함을 유발했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사랑’이 아닌 ‘거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연애와 결혼이라는 시장에서 여자의 ‘나이’는 여전히 유통기한처럼 취급되었고, 나 역시 그런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그래서 한때는 나를 아껴주는 무난한 조건의 사람과 결혼하려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었다. ‘더 늦기 전에’라는 불안이 나를 지배했고,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공포가 선택을 밀어붙였다.
서른 후반이 되자, 전 직장 동기들 22명 중에서 미혼은 나 하나뿐이었다. 지인들 중에는 이미 돌싱은 물론, 두 번째 결혼까지 한 사람들도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몰랐다. 뚜렷한 가치관 없이 타인의 말에 휘둘렸고, 그 결과 나에게 맞지 않는 관계를 끝내 끊어내지 못한 채, 감정에 휩쓸려 이끌려 가기도 했다. 하지만 발리에서의 시간은 그런 나를 멈추게 했다.
"대체 나와 맞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피자나 햄버거 같은 양식보다는 김치찌개와 잡채를 좋아하는 한식파, 쇼핑보다 자연과 교감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취향은 분명했다. 하지만 인생의 방향이나 내가 어떤 사람과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연애에서도 그랬다.
‘마른 사람만 아니면 돼’에서
‘무조건 자상한 사람’으로,
그러다 ‘능력 있으면 좋겠네’로.
항상 조건은 변했지만 ‘정서적으로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는 본질적인 기준은 늘 놓치고 있었다. 그래서 연애도 길게 가지 못했다.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상대의 단점이 보이는 순간, 마음을 닫아버렸다. 외로움에 이끌려 헌신적으로 다가갔지만, 결국 스스로를 소진시켰다. 게다가 안정적인 상대를 만나면, 되레 내가 그 사람을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이성을 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한 번은 이별하면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우물 안에서 안정적으로 지내는 걸 좋아하는데, 미라는 이미 우물 밖 세상을 다 경험한 사람이야. 나는 바깥세상을 알고 싶지 않아.”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그는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었다. 처음엔 어이없는 이유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가치관의 차이는, 언젠가는 관계의 균열이 된다. 성향이 다를 순 있어도, 그 다름을 얼마나 품을 수 있는가? 그 여부가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 경험이 많이 쌓인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한지, 어떤 사람 앞에서 나다운지 알게 되었다. 누구든 나이를 먹는다. 늙어가는 건 멈출 수 없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노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성숙이고, 분별력이고, 자기 이해다.
마흔이 되고 ‘나와 맞는 사람’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까?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 전에 나와의 관계부터 잘 흘러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내 안의 욕망, 상처, 습관, 성향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인지, 다툴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면 기쁜지 같은 정서적 습관들을 하나씩 기록하거나, 사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나다웠던 관계, 가장 힘들었던 관계를 떠올리며 ‘왜 그랬을까’를 천천히 질문했다. 이런 작은 자기 성찰이 쌓이니,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평온한 관계가 되는지” 감이 생겼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삶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핵심 가치의 예로 안정, 자유, 성장, 헌신, 가족, 성공, 도전 등이 있다. 내 삶에서 죽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 3~5가지를 뽑아본다. 이 질문에 답해나가다 보면,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와 맞는 사람 또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더 이상 키, 직업, 나이 같은 외형적인 조건이 아닌, 정서적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맞는 사람을 알아보려면 “천천히” 봐야 한다. 첫 만남에서의 설렘이나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보다, “갈등 상황에서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진짜 궁합이다. 서로 다른 의견이 나왔을 때, 감정이 상했을 때, 상대가 지쳤을 때, 그 반응 속에 그 사람의 진짜 성향과 관계의 온도가 담겨 있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 사람과 다퉜을 때, 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가?”
“이 사람이 힘들어질 때, 나는 기꺼이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이 관계 안에서 나는 더욱 나다워지는가? 그리고 그런 나를 그가 사랑해 주는가?"
이런 질문에 “응, 당연하지”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과, 이제는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
조급하지 않게, 하지만 내 마음을 분명히 하면서.
계산된 조건이 아닌, 서로의 결을 바라보면서.
겉모습이 아닌,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한 사람과.
그런 마음이 선명해지던 어느 날, 나는 마침내 그 사람을 만났다.
조급함 내려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에게 맞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