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의 태양이 뜨겁다. 낮 12시, 쨍한 햇빛 아래 서 있다. 쉬이. 내 볼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앉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가을바람 냄새가 또렷이 내 코에 머무른다. 도시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것처럼 산뜻한 자연 그대로의 향기가 전해진다. 문득 시골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 시골은 수많은 추억이 어려있는 장소다. 할머니와 단 둘이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래서 시골을 떠올리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듯하다. 어렸을 적 할머니 냄새가 싫어서 고개를 돌리던 그 냄새를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쉰내와 쾌쾌한 냄새의 중간 정도쯤 되려나.
다른 사람들에게 할머니라는 존재는 대부분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일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반대이다. 방학 때마다 가끔 놀러 갔을 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한 밥상을 준비해주셨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할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한 후, 나는 완벽히 다른 할머니를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밥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시래기를 넣은 된장국에 김치 하나가 전부였다. 소화가 잘 되지 않으셨던 할머니는 반찬 하나 없이 보리차에 밥을 말아먹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 또한 이제는 대접받는 손님이 아니었기에, 할머니의 초라한 밥상을 똑같이 먹어야 했다. 어느 날은 티브이 광고에서 나오는 햄버거를 보며 혼잣말로 "햄버거 먹고 싶다"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다짜고짜 나를 혼내셨다. "너는 먹고 싶은 게 뭐 이리 많냐. 있는 거나 먹어라" 하며 화를 내셨다.
한 겨울에는 보일러 값을 아끼신다며 차가운 방바닥에서 자야만 했다. 장롱 냄새가 베인 쿰쿰한 겨울 이불을 깔고 옷을 두 겹 이상 입고 잤다. 영하의 날씨에는 전기장판을 틀고 보일러를 한 번 휙 돌린 뒤, 공기가 따뜻해지면 끄고 잤다. 얇은 창호지를 뚫고 세차게 들어오는 겨울바람에 아침마다 이불에서 나오는 게 곤욕이었다. 서울에서 용돈을 충분히 받으며 외동딸로 컸던 나에게는 그 시절이 매우 혹독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기댈 사람이 없다는 것도 서러운데 춥고 배고프게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본인에게는 더욱 혹독했다. 장대만 한 키도 숨길만큼 허리가 앞으로 굽었다. 마치 가을의 마른 들판에 서 있는 갈대처럼 굽은 허리로 매일 새벽에 밭일을 나가셨다. 아들 딸들이 사 준 새 내복이 옷장 안에 가득한데도 정작 그녀는 구멍이 뻥뻥 뚫린 걸레처럼 해진 내복만 입으셨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안부 전화드릴 때마다 전화세 많이 나온다며 5분 넘게 통화를 한 적이 없다. 할머니는 평생을 억척스럽게 살아가셨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리도 아끼고 제 몸은 혹사시키며 사셨을까. 내가 그때의 할머니 나이가 되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차디찬 냉골의 방에서 자도 좋으니, 김치 하나에 밥 먹어도 좋으니 다시 한번 쭈글쭈글한 두 손을 마주 잡고 싶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들은 체 안 하고 새벽마다 밭일하러 나가는 굽은 등을 보고 싶다. 구멍이 나서 걸레처럼 흐물흐물한 내복 좀 그만 입으라며 할머니에게 잔소리하고 싶다.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시골의 옛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기분 좋은 바람 냄새와 할머니의 쉰 냄새가 동일시되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할머니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나의 미안함일까. 할머니 손 잡고 놀이동산 한 번 가지 못했던 아쉬움일까. 돌아가시기 전에 조금 더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일까. 내 마음에 진한 그리움이 남는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뜨겁게 빛나는 태양 때문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한 손을 이마에 대어 손 가리개를 만든다. 딱 손바닥만큼 햇볕이 가려진다. 여전히 어깨는 뜨겁다. 태양의 뜨거운 빛을 아무리 막아도 피할 수 없다. 할머니의 기억도 이 태양처럼 내 안에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가을 하늘의 살랑이는 바람 속에 할머니 냄새가 밀려온다.
가을, 바람, 태양.
자연이 되어 나에게 찾아온 할머니가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