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라쌤 Aug 14. 2022

주눅이 든 나의 마음에 다림질을 해주세요

두 번째 책을 쓰기로 결심한 뒤, 5일이 지났다. 약간은 설레고 흥분된 나의 마음은 생계에 밀려 하루도 채 지속되지 않았다. 


일할 때만큼은 나는 철저한 계획형이다. MBTI의 극 J 성향.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이 올라온다. 계획 안에서 통제되는 내가 좋다. 


두 번째 책 역시 나는 스스로 마감 날짜를 정해두었다.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했고, 일주일에 세 번 글쓰기로 목표를 세웠다. 같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 1~2회 글쓰기를 목표로 했다. 전업이 따로 있는지라 최소의 습관을 들이는 게 목적이었다. 나는 무슨 배짱으로 주 3회를 약속했는가.. 약간 후회스럽지만 마음 잡았을 때 해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그 압박감이 나를 이끌어주는 힘이라는 것도 경험했었다. 내가 만든 틀 안에서 움직인 날이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자신감이 얼마나 솟아나는지 모른다. 반대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패배감과 좌절감이 동시에 든다.


나와 약속한 일주일이 끝나가고 있다. 마치 출판사에서 요청된 글의 마감날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뭐라도 써 보자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오늘은 뭔가 될 것 같은 비장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무리 글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막막함에 다른 사람들의 글을 둘러봤다. 다. 많은 글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작가가 있었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의 경험이 담긴 글이었다.


글을 읽는 건 참으로 재미있다. 내가 겪지 못했던 경험들 속에서 생각이 깊이가 달라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특히 다른 작가들의 표현력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이 한 문장이 내 눈앞에 파노라마를 펼친 듯 작가가 말하는 상황을 자세히 보여줄 수 있을까. 작가의 감정이 세세하게 느껴져.'


나라면 여러 문장으로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려고 하려고 했을 텐데. 이 분은 한 문장에 간결하게 표현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과 내가 쓰지 못하는 표현력과 어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순간 나는 위축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쓰는 걸까. 왜 이리 어려운 걸까. 글솜씨는 타고나야 하나..'

부러움과 동시에 주눅이 들었다. 


며칠 전,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하나 더 있었다. 몇 개월 전에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내 책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 영상이 업로드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쓴 책을 통해 사람들이 궁금할만한 것들을 질문하고 답하는 편한 인터뷰였다. 영상 속의 나는 글을 쓸 때처럼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느라 바빴다. 흥분한 채 말하느라, 속도가 빠르고 발음이 뭉개졌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길을 잃기도 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20분 정도 되는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정지해버렸다. 차라리 이 영상을 아무도 안 봐줬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다음 날, 내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새 가입 인사 글이 올라왔다. 맙소사.. 인터뷰 영상을 보고 내 카페를 찾아오신 것이다. 보통 영상 아래 내 SNS 주소 링크를 연결해놓는데, 그곳엔 일부러 해놓지 않았다. 내 정보가 하나도 없었음에도 직접 알아보고 찾아와 주시다니 감사함과 동시에 민망함이 꿈틀거렸다. 


'억지로 꾸미려 하는 것보다, 솔직한 마음이 통한 걸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참 기묘하다. 어떤 사람의 글을 통해 난 주눅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마치 한껏 구겨져서 볼품없는 블라우스에 빳빳하게 힘이 잡힌 다림질을 해준 것 같았다.


분명한 건 두 경우 모두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같은 결이기에 수많은 글들 중 그 사람의 글을 클릭했고, 영화를 보듯 빠져들었다. 

같은 결이기에 수많은 영상들 중 내 영상이 선택되었고, 그 사람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문득 사람과의 관계에서 깨닫는 것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도움 되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나에게 아픔을 주며 성장하는 시간을 주는 사람도 있다. 어떠한 경로로 인연이 되었든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힘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글 또한 그렇겠지. 분명 나와 같은 결의 사람들이 내 글을 봐주리라 믿는다. 글을 통해 인간관계에 관한 내 감정을 성찰하기로 다짐한다. 글을 통해 내 마음도 옷처럼 빳빳하게 다림질해야겠다.





주눅이 들면 어때..?

맘껏 움츠러들어도 돼~ 이 기회에 다림질을 잘 배워보자. 다림질 장인이 되는 거야!









이전 07화 가을 하늘의 쉰 냄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