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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쌤 Sep 18. 2022

나는 여전히 바바리맨을 기억한다.

불안함을 회피할 수밖에 없던 자아의 기억.


프리랜서인 나는 일주일 중 월요일을 휴무로 정했다.


월요일 오전 10시 여유로운 오전이었다. 가방에 노트북과 책을 넣고 집을 나섰다. 커피숍으로 가기 전, 배가 고파 식당으로 갔다. 이른 시간이라 내가 첫 손님이었다. 탁. 탁. 탁. 주방에서 연신 칼로 도마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곧 바빠질 점심 식사 메뉴에 쓰일 재료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뜨끈한 해물된장찌개를 시켰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4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였다. 한 손에는 시장에서 장을 본 듯한 비닐 봉지 여러 개가 들려있었다. 그녀는 멀리서부터 걸어왔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내 옆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식당이라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앉아야 했다.





나는 식사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옆 테이블 앉은 아이와 엄마 때문이었다. 음식을 먹는 동안 아이는 지루한지 오른쪽 왼쪽으로 몸을 훽훽 돌렸다. 발가락을 꿈틀거리고 신발로 테이블을 툭툭 치기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쉴 새 없이 꿈틀대며 움직였다. 몸뿐 아니라 입도 쉬지 않았다. 식당에 있는 온갖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며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음식 먹느라 대답을 못하면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때리는가 하면 코를 파기도 했다. 에너지가 넘쳐 주체할 줄 모르는 아이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아이의 행동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에 따른 엄마의 태도가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화를 내었다. 


"안돼. 하지 마. 가만히 있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밥 먹는 내내 이 말을 30번은 넘게 들은 듯했다. 어찌나 쉴 새 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지 아이가 아닌 나에게 말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뜨거운 찌개 국물이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앞을 보며 밥을 먹다가도 도대체 뭘 하지 말라는 건지 궁금해서 오히려 쳐다보게 되었다.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싱글 생글 웃다가도 엄마가 버럭 하면 갑자기 주눅이 들어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쳐다보았다. 조그만 어깨가 동그랗게 말려 말똥구리가 굴리는 쇠똥같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3초도 안되어 다시 고개를 들어하고픈 말들을 쏟아냈다. 이런 광경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나는 아이의 반응이 무척 새롭고 신기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혼내는 엄마의 말에 아주 잠깐 위축된 모습을 보이다가도 빠르게 천진난만한 아이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굉장히 신선했다. 마치 오뚝이 같았다. 자신을 혼내는 엄마가 아무리 미워도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엄마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듯, 스스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하는 의지가 단단한 오뚝이 말이다. 반대의 느낌도 동시에 받았다. 왜 안되는지 상황을 차분히 설명해주기는 커녕 밑도 끝도 없이 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뒤로 흘려버리는 듯했다. 어찌 보면 엄마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의지의 오뚝이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엄마를 무시하는 듯했다. 이에 대한 느낌은 주관적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이의 정서적인 불안함이었다. 불안에 대해 오은영 박사님은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안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불안을 잘 다룰 것인지 부모가 도와주어야 한다. 불안은 정서의 일종이며 후천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그러니, 불안을 잘 조절하도록 도와주어 자신의 효능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불안함을 느낀 적이 있다. 초등학생 때였다.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 하교하던 길이었다. 집까지 도착 거리가 약 3분 정도 남았을 때, 누군가 뒤에서 "얘야" 하고 나를 불렀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한 남자가 더운 날씨에 진한 회색의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내가 돌자마자 바바리코트를 열어젖혔다. 그는 알몸이었다. 나는 놀라서 두 눈이 동그래졌고 가슴이 쿵쾅 뛰었다. 그 순간, 나의 뇌가 스포츠카의 엔진처럼 빠르게 부아앙 돌아갔다. 


'왜 옷을 입지 않았나? 저 거무튀튀하고 늙은 몸을 왜 보여주는 걸까? 저 사람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나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소리를 치고 도망가면 나를 우습게 볼 것이다. 못 본 척을 하고 최대한 담담하게 행동하자.' 


나는 빠르게 판단을 했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 내가 가던 길을 걸어갔다. 발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안 않게, 팔은 로봇처럼 어색하게 움직였다. 그때 당시 가장 무섭게 본 영화 '사탄의 인형'이 생각났다. 처키의 눈동자를 본 것처럼 머리카락이 삐죽 섰다. 다행히 남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날, 맞벌이를 했던 엄마는 밤늦게 집에 들어오셨다. 엄마를 붙잡고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어린 나이에 바바리맨이 뭔지 몰라서 남자가 알몸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대낮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며 이상한 소리라고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그 이후로 나는 그 골목을 지날 때마다 100미터 달리기를 했다. 혹여나 바바리맨을 마주칠까 봐 매우 불안했다. 왜냐하면 다시 그 바바리맨을 본다 하더라도 말할 사람이 없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에서 아쉬운 점은 엄마에게서 놀라고 당황스러운 감정을 공감받지 못한 것과 위험한 상황에 대한 대처 행동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그 경험은 회피라는 행동으로 남게 되었다. 문제가 생기거나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내게 보여준 것처럼 모른 체하는 것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연애에서 가장 자주 나타났다. 이성 친구와 내가 맞지 않는 점을 발견할 때, 서로 맞춰 나가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맞지 않으니 더 이상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고 결론짓기 일쑤였고 연애는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 느낀 불안함은 바바리맨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안아주지 못한 부모로부터 형성되었다. 성인이 된 후, 나는 내 감정을 돌봐주는 것보다 도망가는 게 더 익숙해져 버렸다. 도망갈 때가 더 이상 없을 때 나는 깨달았다. 힘든 일이 생기면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불안한 나의 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조절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1. 이제는 바바리맨을 만났을 때처럼 담담한 척 연기하지 않는다. 불안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솔직하게 표현한다. 

"나는 불안하다."


2. 왜 불안한지 원인을 캐묻는다.

"왜 불안하니? 무엇이 너를 불안하게 만드니?"


3. 그 불안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대처법을 찾는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영향을 준 부모 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성인이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물질적인 독립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나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고 싶었던 사랑과 관심을 나에게 아낌없이 준다. 나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힘들다는 사인을 절대 지나치지 않는다. 세상에서 최고로 다정하고 친절한 부모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당에서 만난 아이도 부모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받고 있겠죠? 밥 먹는 내내 보인 아이의 불안한 행동이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 같았어요. 부디 이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부모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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