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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쌤 Aug 14. 2022

소심 자아의 악플 대처법

혼자 상처받고 혼자 치유해요.

새 책이 출간되면 출판사에서 SNS 서평 이벤트를 진행한다. 무료로 책을 받고 본인의 SNS에 후기를 올리는 것이다. 책을 홍보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내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첫 책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일일이 서평을 찾아다니며 감사의 댓글을 달았다. 그중 하나가 강렬하게 기억이 남는다. 여느 서평과 비슷하게 책의 내용의 몇 부분과 자신의 느낌을 담은 글이었다.


"책 재미있게 봤어요.

2030의 여성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라고 소개해주었다. 


꽤 팔로워가 많은 분이라 40개 넘는 댓글이 있었다. 댓글들을 하나씩 천천히 읽었다.


"이 책 보고 싶네요." 

"마음 홈트라니.. 제목만으로도 위로가 되네요."

"마음이 자주 힘든데 내용이 딱 저에게 도움 될 것 같아요."

등등.. 좋은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런데, 그가 남긴 대댓글은 이러했다.


A: 내용이 정말 좋네요! 마음 홈트를 실천해야겠어요 

- "그래요? 저와는 코드가 안 맞아요. 안 그래도 나눔 하려고 했는데 배송해드릴게요."


B: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죠. ㅇㅇ님도 몸과 마음 다 건강하세요!

- "작가가 외국계 스튜어디스로 이런저런 경험이 많긴 한데 자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스튜어디스 이야기를 자꾸 거론하고 회상하는 게 거슬리네요. 해병대 아저씨가 해병대 시절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C: 마음의 홈트라니 너무 좋은데요! 마음에는 무심할 때가 많거든요.

- "저는 이미 운동, 명상, 독서를 하고 있어서 책의 저자에게 별로 배울 게 없네요."


D: 필라테스와 명상의 만남이라니 멋집니다!

- "필라테스와 명상의 만남은.. 책과 카페의 만남 뭐 이런 건가? 멋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차별화 전략으로 밖에는."


댓글들 반응과 반대로 그가 남긴 대댓글은 내 책을 비평하고 있었다. 심지어 묻지도 않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내 책을 보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더욱 소름이 끼치는 건.. 이 모든 댓글에 활짝 웃는 스마일 이모티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이 댓글을 찾아봤는데, 여전히 뒷목이 당긴다. 나는 아직 비평을 감당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걸까?


인간관계에서 열 명 중 세 명은 나를 좋아하고 네 명은 내게 무관심하고 나머지 세 명은 나를 싫어한다고 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흔히 겪었고 무심해질 만도 하다. 하지만 눈앞에서 직격타를 맞아보니 악플에 상처받는 연예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그 피드에 댓글을 달았다. 좋은 서평 남겨주셔서 감사하다고 남겼다. 그는 역시나 스마일 이모티콘과 함께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니. 그 댓글을 보는 순간, 팔에 털이 삐죽 서며 소름이 끼쳤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생각과 경험이 오롯이 드러나기 때문에 반대되는 의견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만 한다. 오히려 대중이 원하는 걸 알기 위해서는 비평이 도움 될 때도 있다. 내 책이 그가 원하는 내용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승무원 시절의 이야기가 거슬린다는 표현은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그렇다. 내 책에는 승무원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비행기 사고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6년 동안 승무원으로 일했을 시기가 가장 힘들고 어두웠었기에 글감이 많이 나왔다. 


'내 책이 그렇게 별로인가..' 



== 안 되겠다. 위기 상황이다. 소심 자아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


나는 온라인 서점을 포함해 다양한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내 책에 대한 평점을 확인하고 일일이 리뷰를 읽었다. 이럴수록 정확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점 만점에 10점. 와 다행이다.'

'이거 뭐야 내가 놓친 서평이네. 좋은 내용으로 써주셨어. 감동이야'


다행히 평은 좋았다. 소심한 자아는 점점 어깨를 펴기 시작했다. 나를 안심시키는 또 다른 것은, 나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여성 독자들의 완벽히 다른 반응이었다. 158센티의 작은 키에도 승무원이 된 비결을 자세히 알려달라며 개인 메시지가 왔다. 어떻게 승무원이 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고 했고, 외국계 항공사 승무원 생활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지겨운 내용이 다른 누군가에겐 더 알고 싶은 관심사였다. 


'승무원 면접과 생활에 관심이 있구나.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데, 더 쓸 걸.'


나는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마구 흔들렸다. 긍정적인 후기엔 행복 자아가 날뛰고, 악플엔 소심 자아가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악플이 두려운 것은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 악플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었다. 


'악플 좀 받으면 어때? 배짱이 이거밖에 안돼?' 

흔들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두 손을 허리에 대고 가슴을 내밀며 씩씩댔다. 순두부처럼 여린 소심 자아가 더 위축된다. 희한하다. 잊고 싶은 건 아무리 흘려버리고 지워버리려고 해도 더 또렷이 나를 찾아와 괴롭힌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나도 타인에게 비슷한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내 의견이라고 포장한 채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라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에피소드들 뿐이다. 


초등학생 때 쉬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크고 리액션이 컸다. 나와 친한 친구가 같은 반 남자애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나! 서진주가 이동현을 좋아한대??"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다. 하필 장난기 많은 남자아이가 그 말을 들었다. 교실 앞문에서 모든 아이들이 듣도록 크게 떠들어댔고 삽시간에 소문이 학년 전체에 퍼져 버렸다. 그날, 나로 인해 진주는 하루 종일 울었다. 순간적으로 나온 리액션에 진주의 짝사랑이 놀림거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진주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아마, 악플은 쓴 그도 나처럼 전혀 의도를 갖지 않았다거나 습관처럼 비평의 리액션이 올라온 것은 아닐까.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서평을 남겨달래서 남긴 것이고, 본인의 SNS에서 팔로워들과 소통할 것뿐이다. 다만, 그는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나에게 전혀 미안함 혹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금 억울하긴 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생처럼 그 앞에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울 수도 없는 일이다.  


혼자 상처받았으니 이에 대한 감당도 스스로 해야 한다. 이럴 땐, 양희은의 에세이 [그러라 그래]라는 책의 제목처럼 쿨하게 잊고 싶다. 소심 자아가 나타나 아무 생각이 안 날 때, 나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했다. 그리고 '상처를 받아 본 만큼, 상처 주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다. 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게 미칠지 모르니, 한 번 더 배려하고 조심해야겠다. 비밀 이야기를 들을 땐 특히나 주위를 둘러보고 말이다. 그나저나 목소리가 큰 건 여전한데.. 지금은 목소리가 필요한 강사의 길을 걷고 있어 장점이 되어버렸다. 다행이다. 오늘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 긍정 한 스푼.





늘 이렇게 혼자 상처받고 혼자 치유해요. 

저도 누군가에겐 미운 사람이겠죠? 상처를 받아봤으니,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할게요. 그리고 상처받지 않는 방법도 꾸준히 수련할게요. 남에게도 나에게도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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