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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쌤 Oct 17. 2022

나이키가 꺾어버린 아집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나밖에 없다

안 강 최.

한국에서 가장 고집이 센 성씨의 순위이다.


"산 김 씨 3명이 죽은 최 씨 1명을 못 이기고, 최 씨 셋이 모여도 강 씨 1명을 못 당하고, 강 씨 셋이 모여도 안 씨 앉은자리를 못 넘본다."


갈수록 세 배씩 강해지는 고집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말도 있다.


우리 아빠는 안 씨, 엄마는 강 씨이다. 고집이 센 성씨 1위와 2위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그야말로 고집의 끝판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 길바닥에 드러눕는 것은 기본이요, 울며 생떼 쓰는 데는 나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하고픈 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남들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고집을 부렸다. 


좋아하는 잠옷은 구멍이 나도 절대 버리지 않고 십 년이 넘게 입는가 하면, 발이 아파도 딱 맞는 신발만 고집하기도 했다. 나는 작은 키에 비해 손과 발이 큰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손과 발이 여성스럽게 보여 부러웠던 나는 항상 신발을 딱 맞게 신는 버릇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발이 작아 보이고 싶은 욕심이었다. 


몇 년 전, 등산화를 사러 갔을 때 점원이 한 치수 크게 신으라고 권한 적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큰 발인데, 왕발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정사이즈로 샀다. 아니나 다를까 산에 오를 때마다 발이 아팠다. 무릎 또한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산에 다녀올 때마다 옆으로 튀어나온 발 뼈가 빨갛게 부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발 소재가 너무 딱딱한가, 등산이 내게 안 맞나, 내 무릎이 원래 약한가.' 괜한 핑계를 대며 등산을 멀리했다.


어느 날,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3년 전 자동차를 산 후, 걷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스마트폰에 표시되는 걸음 수가 매일 1000걸음도 채 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유산소 운동을 계획했다. 주 3회씩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몇 해 전 아울렛에서 사놓은 나이키 워킹화를 신고 걸었다. 그런데 등산할 때와 비슷하게 발이 퉁퉁 부어 몹시 아팠다. 운동화 앞 코에 딱 붙은 발가락도 그렇지만 발볼이 유난히 아팠다. 아무래도 발 모양에 변형이 온 것 같았다. 이번 참에 새 러닝화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이키 매장에 가서 달리기에 좋을 만한 러닝화를 골랐다.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에어 줌이 들어간 운동화를 신어보았다. 운동화 앞부분을 누르며 엄지발가락이 어디까지 오는지 점원이 사이즈를 확인해주었다. 그는 나에게 한 치수 크게 신을 것을 권유했다. 영 내키지 않았지만 발이 아프면 운동을 못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왕발처럼 보이는 큰 사이즈로 구매했다.


새 러닝화를 신은 후부터 발은 굉장히 편했다. 발바닥으로 땅을 디딜 때마다 폭신한 구름을 밟는 것처럼 가벼웠다. 웬걸 심지어 2만보를 걸어도 무릎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이렇게 몸이 가벼울 수가. 일주일 내내 만보 걷기를 하고 산을 날다람쥐처럼 뛰어다니기도 했다. 나는 큰 것을 깨달았다. 여태 나를 불편하게 한 건 내 발이 아니었다. 내 아집 탓이었다.


분명 나는 인체 해부학 중 발을 공부할 때에 기능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 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필라테스 회원님들에게도 항상 발의 위치를 잡거나 발 감각부터 살린 뒤, 운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나인데 어찌 나 스스로에게 이런 고집을 부렸을까. 바로 오래 형성된 습관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습관일수록 고치기 힘든 것처럼 아집 또한 그렇다. 나는 아집도 습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발이 아픈데도 무관심하게 살았다.

→ 운동화 사이즈가 아닌 다른 것을 탓한다.

→ 내가 맞다는 생각(아집)은 내 환경을 바꾸지 못한다.

결론: 아집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런데, 만약 이 아집이 나뿐 아니라 남에게로 향한다면 어떨까?

이런 일은 꽤나 자주 발생한다. 신혼부부를 예로 들면 쉽게 이해가 간다. 수십 년 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 살다가 같이 살게 되면서 다양한 습관을 마주하게 된다. 밥 먹은 후 설거지를 바로 하느냐 쌓아두고 한 번에 하느냐,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느냐 입구부터 짜느냐, 소변을 볼 때 변기 커버를 올리느냐 내리느냐 등등 서로 다른 습관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상대방의 사소한 습관들을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고, 큰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남편은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고 모아서 한 번에 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내는 설거지를 쌓아두는 게 싫다. 그런 아내는 남편이 게으르게 보인다. 

→ 아내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다.  

→ 다툼으로 이어진다. 

→ 집 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

결론: 나의 아집이 상대방뿐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한다.


나의 생각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맞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와 반대된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생각으로 비춰진다. 틀리다는 생각은 결국 다툼을 만든다. 다툼은 평화를 깨는 것이며 결국엔 내 생각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깨달은 건, 나를 힘들 게 하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쯤은 습관에서 벗어나 가볍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운동화를 딱 맞게 신는 것이 예쁘다고 생각했던 생각을 내려놓고, 한 치수 크게 신어보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수 켤레의 운동화를 신을 테니, 그중 단 한 번만 바꿔본다면 나처럼 신세계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설거지 또한 한 번쯤은 내가 살던 방식과는 다르게 살아보는 것이다. 경험 후에 불편하다면 상대방과 규칙을 정해 맞춰가면 되니깐. 


누구에게나 습관이 있고 삶의 규칙이 있다. 중요한 건 나의 습관일 뿐이지 옳다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상황에 맞춰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함을 가져보자.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그 무엇보다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해질 것이다. 




저는 앞으로 신발은 반드시 매장 점원이 추천해주는 대로 구매하려고요.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늘 밖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내가 어떻게 해야 편해질까?' 저의 내면으로 돌리니 삶이 편안해지네요. 아집의 벽을 허무는 순간, 몸도 마음도 내려놓음이라는 평온함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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