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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쌤 Oct 23. 2022

최소한 한 사람은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친한 언니와 브런치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집에서 막 나가려던 찰나, 전화가 왔다. 곧 만날 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떡해. 미라야 어떡해. 나 친한 동생이 어제 교통사고로 죽었대.. 지금 장례식장 가는 길이야."


친한 동생이라는 그녀를, 나는 만난 적은 없지만 언니를 통해 알고 있었다. 28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심성이 매우 착해서 열 살 많은 언니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긴다던 동생이었다. 며칠 전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도 sns를 통해 보았다. 활짝 웃는 입가 옆에 폭 들어간 입꼬리 보조개가 참 세련되고 예쁘던 그녀였다. 그녀가 한순간에 교통사고로 떠났다고 한다.


안타까운 비보를 들을 때마다 삶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본다. 나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 어쩌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죽음은 두렵고 어둡게 느껴지기보다는, 더욱 긍정적으로 삶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불평, 불만을 하며 우울하게 지낼지 모르는 오늘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가끔 출근하는 엄마를 보며  '지금이 엄마를 보는 게 마지막일지도 몰라..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한순간에 끝날 수도 있어' 홀로 한 편의 드라마를 써나가며 지나친 상상을 한다. 그리곤 "잘 다녀와 엄마~ 사랑해" 인사와 함께 뜨거운 포옹을 한다. 이따금씩 하는 이러한 과대 상상은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애틋하게 만든다.


외출하려던 그날, 나는 그대로 방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죽으면 이 물건들도 아무 소용이 없겠지? 내 모든 데이터가 담겨있는 노트북, 지금까지 정리하고 만든 강의 자료들과 공부한 흔적들, 추억이 담긴 사진과 일기장, 특별한 날에 입고 가려고 사놓은 옷.. 어머나! 내 명품 가방' 내 눈이 멈춘 건 더스트백에 고이 모셔놓은 명품백들이었다. 풋. 하고 코웃음이 나왔다. 죽음을 상상하는 와중에 명품 백들이 신경 쓰인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명품백들을 바라보며 가방에 담긴 추억들을 회상한다. 수차례 고민 끝에 생애 처음으로 산 디올 백, 승무원 퇴직 기념으로 크게 마음먹고 장만한 샤넬 백, 세금이 적다는 이유로 하와이에 놀러 가서 구입한 프라다 백. 가방을 살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떠한 이유로 샀는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값비싼 명품 백들도 허무해지네. 가장 고가인 샤넬 백은 다섯 번 조차 들지도 못했는데. 혹시라도 자국이 날까 싶어 체인 하나씩 습자지로 감싸 놓고 가방 모양이 구겨질까 에어백을 넣어 정성스럽게 보관했는데.' 참으로 아쉬웠다. 애지중지 아낀 명품 백을 차라리 누군가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고민도 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내 강의를 듣는 20대 회원님이었다. 우연히 내 강의를 처음 들은 이후로 줄곧 나를 쫓아다녔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얼굴은 수심이 가득하고 어깨는 위축되어 있었다. 심지어 만성두통과 호흡장애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나로 인해 명상을 처음 접하고, 자신이 왜 불안하고 아픈지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때 상처받은 기억이 성인이 되는 날까지 주변 눈치를 보며 자존 감 없이 살게 했던 것이다. 내 강의를 들으며 점점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그녀는 지방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할 것 없이 매 오프라인 강의 때마다 일등으로 찾아와 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고마움을 담아 친필 사인을 한 책을 선물했다. 그녀는 내 사인을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을 정도로 나를 따랐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몸매 관리도 철저히 했다. 그 결과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인생 처음으로 남자 친구를 사귀며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나는 강의를 통해서 그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이 있다. 나는 그녀가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했고 온전히 믿어주었다.  


생애 마지막이 온다고 상상하며 아끼는 가방을 본 순간에 왜 그녀가 떠올랐을까?

살다 보면 참 다양한 인연들을 만난다. 그중 생의 마지막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고, 나에게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이라면 왠지 나보다 경험이 많고 존경하는 사람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도움을 준 사람, 그래서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이었다.  


나보다 경험이 부족해서, 나이가 어려서 라는 이유로 죽음을 생각했을 때 그녀가 떠올랐던 것이 어색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완벽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서 나 또한 위로를 받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이다. 내가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로 내가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서로 의지하고 챙기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생각날 사람은 자녀가 될 수도 있고, 가르치는 학생이 될 수도 있다. 혹은, 동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될지도 모른다. 유난히 지친 날, 동네 편의점에 앉아 맥주 한 캔 마시며 울고 있을 때 '괜찮아요?' 하는 말 한마디에 위로를 얻은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


다소 유치한 예시도 말하고 싶다. 나는 사촌 동생에게 그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유치원 때였다. 명절이라 다 같이 시골에 모였었다. 장난을 치다가 엄마에게 크게 꾸중을 들은 나는 이불을 덮고 혼자 삐진 상태로 잠이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일어나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었는데,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밥을 먹는 것이었다. 배가 무척 고팠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나오지 못하고 더운 이불 안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그때, 밥을 다 먹고 방으로 온 동생이 나를 흔들며 "누나 왜 밥 안 먹어? 배 안 고파? 내가 밥 갖다 줄까?" 라며 나를 챙겼다. 나는 동생의 챙김에 서러움이 폭발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장면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인생 전체가 변화되는 큰 영향을 주든 작은 밥 한 끼에 챙김을 받든, 누군가 나를 챙기는 따뜻함의 크기는 실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서로를 응원하고 챙기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혹시라도 지금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좌절하지 말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을 응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최소한 한 사람은 당신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오늘 만난 누군가가 될지 모르니, 오늘도 나는 진심 다해 살아간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한다.




삶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_톨스토이  


매 순간마다 진심 다해서 살려고 노력해요. 그 순간이 후회되지 않게요. 많이 응원해주고 위로해주고 사랑해주며 살겠습니다. 당신 곁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은 저의 글로 응원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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