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곰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몇 해 전, 같이 일하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료 A는 여우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화려한 언변으로 하나를 알아도 열을 아는 것처럼 포장했다. 자신이 모르는 분야 또한 재치로 술술 잘 넘길 수 있는 말재주를 타고났다. 게다가 애교라는 주 무기까지 장착했다. 협소한 공간에 주차하기 위해 60대 경비원에게도 윙크를 하며 어깨를 좌우로 흔들어 주차 자리를 얻고야 만다. 경비원에게 그럴 정도니, 성공하기 위해 잘 보여야 하는 상사에게는 어땠을까? 상사는 사회생활은 그녀처럼 해야 한다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였다.
어느 날, 동료 B가 나에게 그녀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가로챈 사건과 성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한다는 말을 했다. 특히 동료와 후배는 막대하면서 선배와 상사에게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는 일화를 상세하게 설명하며 억울해했다.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고, 피해를 봤는지 고통스러우니 나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도 심적 피해를 본 것 같았다. 그녀가 시간을 안 지켜 마감에 임박한 일을 내가 대신해 준 적이 있었다. 내가 티를 내면 그녀가 크게 혼날 상황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덮어주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내가 동료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본인이 돌리며 생색낸 적도 있었다. 준비한 건 나였는데, 주목은 그녀가 받았었다. 묘하게 기분 나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그녀의 단점만 보였다. 웃음도 가식적으로 보였고, 나에게 무언가를 베풀 때에는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다. '뭐야? 나한테 뭐 시키려고 술수 쓰는 거 아니야?' 하며 눈을 흘기게 되었다. 그녀의 모든 행동에 뾰족하게 반응을 했다.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신입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전문적인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 분야라 어디에서부터 알려줘야 이해가 쉬울까 생각하며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눈웃음을 치며 신입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거? 뭘 미리 걱정해. 직접 해보면 알게 될 거야~" 말하며 눈웃음을 찡긋했다.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놀라웠다. 왜냐하면 신입이 질문한 내용이 며칠 전 그녀가 모른다며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내가 피해를 봤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상황들이 이어졌다.
한 번은 그녀가 남자 친구와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런데 회사 사람들에게는 본인이 연구원으로 초청되어 해외로 비즈니스 출장을 간다고 말했다. 허 참.. 기가 막혔다. 양심에 찔리는 거짓말을 왜 하는 것일까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곧 그녀는 보여주었다. 가식적인 거짓말들이 모여 사람들은 그녀를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원하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쟁취해내는 과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권모술수의 대가였다.
여기에서 황당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나에게 그녀를 조심하라고 험담을 늘어놓던 B가 다시 그녀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 것이다. 그녀가 큰 회사로 옮긴 직후, 이를 부러워하던 B가 먼저 연락해 관계를 이어간 것이다. SNS에 올라온 그들의 사진에 치가 떨렸다. 앞뒤가 철저히 다르게 행동하는 두 여자의 모습을 보며 내가 돌연변이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삶은 이들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여우 앞에서 나는 미련한 곰탱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들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일 뿐이다. 어쩌면 너무 정직해서 가끔 손해 보는 내가 배워야 할 점일지도 모른다. 거짓말도 능력인 것을 증명하는 A와 험담을 했지만 본인의 필요에 의해 다시 관계를 이어 가는 B는 다만 나와 맞지 않을 뿐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인간관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 퍼즐이 있다.
서로 다른 모양의 퍼즐이지만 어떤 부분은 딱 맞기도 하다. 우리의 관계 또한 비슷하다. 완전히 맞지 않아도 일부만으로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관계를 시작할 때 그 사람과 나의 공통점을 통해 빠르게 친해졌다. 공감대가 퍼즐의 맞는 부분이라면, 이제 그 반대는 확실히 할 수 있다. 어떠한 기준으로 사람을 걸러야 하는지 나만의 기준이 세워졌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만 피해도 인간관계에서 마음이 크게 흔들릴 일은 줄어들 것이다. 이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조심성이라는 퍼즐 모양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이해하려고 하면 괴로워질 때가 있더라고요. 온라인 세상에서 팔로우와 언팔로우가 클릭 하나에 쉽게 연결되고 끊어지듯, 오프라인 관계도 버튼 하나로 껐다 켜기가 쉬워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