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
2004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제가 몸담은 컨설팅 회사가 대기업의 업무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고객사 프로젝트 담당 이사님이 그 프로젝트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업무 영역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제 회사의 프로젝트 PM은 그 새로운 업무 영역의 담당자로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저는 이 영역의 개선 방향과 계획 수립을 위해서 그 프로젝트에 10일 정도 참여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인원은 고객사 임직원과 컨설턴트를 포함하여 총 30여 명이었습니다. 그 인원 중 제가 담당한 영역에 관심이 있는 고객사의 이사님과 몇 명의 차부장님 그리고 제 회사의 프로젝트 PM 등 6명 남짓이었습니다.
저는 프로젝트 참여 후 8일 정도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2일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했습니다. 지금도 프레젠테이션은 어렵지만, 당시는 더욱 부담되었기에 20장 정도의 파워포인트 형식의 보고서를 외웠습니다.
제가 담당한 영역에 관심이 있는 고객과 프로젝트 PM 등 6명을 모시고 저는 제가 준비한 보고서를 차근히 발표했습니다. 고객사 이사님은 저의 보고서와 발표에 만족하시고 저에게 좋은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저는 성취감과 만족감에 조금 우쭐했습니다.
다음날 프로젝트 PM이 저에게 이틀 뒤에 전체 프로젝트 인력과 고객사 상무를 모시고 다시 발표를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이전에 발표했던 것을 떠올리며 다시 준비했고 발표가 잘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틀 뒤, 저는 20여 명의 관중 앞에서 이틀 전에 성공했던 발표와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목소리, 속도 및 제스처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한 지 10분이 되지 않아서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당황했지만 일단 외우고 연습한 것이 있는지라 제가 준비한 내용을 모두 전달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마쳤습니다. 저는 싸늘한 적막이 흐르는 회의실을 나왔고 그 프로젝트에서는 다시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는 당황스러워서 제 실패의 이유를 되짚어보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나서 그때를 다시 돌아보면 제 실패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프리젝테이션의 관중은 제 보고서를 큰 맥락에서 이해하는 분들이었고, 두 번째 관중은 보고서의 내용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었습니다. 보고서를 이해하는 수준이 다른 관중에게 저는 동일한 내용과 수준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니 두 차례의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관중이 상반된 반응을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10년 전 두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생각하면 머리가 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