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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Oct 12. 2015

늘 같은 답으로 해결할 수 없지요.

조금 더 깊이 파야...

우리 꼬맹이는 '정리정돈'과 거리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꾸러기답게 윗옷은 방의 문턱에, 가방은 방바닥에, 바지는 침대 위에 휙 던집니다. 상상되듯이 제가 꼬맹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발꿈치를 들고 뭔가를 밟지 않도록 두리번거립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꼬맹이에게 방 정리를 시킵니다. 꼬맹이는 '왜 정리해야 하냐고' 구시렁 거리면서 물건을 주섬주섬 옮깁니다. 잠시 조금 발 디딜 틈이 생깁니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어제의 방이 됩니다. 


 엄마는 꼬맹이가 정리하는 습관이 없다며 나무랍니다. 꼬맹이는 변하지 않습니다. 꼬맹이는 방을 정리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이 말끔하지 않아도 옷 입고 가방 꾸리고 노는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방 정리의 필요성을 떠나서, 어질러진 방이 싫습니다. 매번 꼬맹이에게 '정리해라!' 외칩니다. 물론, 저도 비슷합니다. 다만, 목소리 톤이 다소 낮을 뿐입니다. 


 위를 컨설팅 관점에서 분석하면 현황은 '정리되지 않은 방'이고, 이슈는 '어질러진 방에 대한 부모의 불편한 감정'입니다. 단, '정리되지 않은 방'에서 꼬맹이가 책을 못 찾아서 숙제를 못하고, 장난감을 못 찾아서 놀지 못하면 이슈가 됩니다. 그러나 꼬맹이는 불편 없이 사니 물건을 못 찾는 것은 이슈 아닙니다.


위의 이슈 '부모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상을 변화시켜야 하고, 현상을 변화시키려면 현상의 근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치료를 예로 들면 '몸에 열이 나는 것'은 현상, '열 때문에 몸이 아픈 것'은 이슈 그리고 '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지요. 이때, 근본 원인을 잘못 정의하면 현상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열을 일으키는 것이 바이러스가 아니라 위장 장애로 파악하면 몸의 열을 낮출 수가 없지요. 


다시 돌아가서, 저와 아내는 '어질러진 방'의 근본 원인을 '꼬맹이의 정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꼬맹이에게 지속적으로 '정리해라, 정리해라'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몇 년 동안 저의 잔소리 없이는 정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에 따르면 꼬맹이에게 정리의 필요성과 동기를 부여해서 자발적으로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저희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저희는 근본 원인을 '꼬맹이가 정리하지 않는 것'에서 '꼬맹이 방에 사용 빈도가 떨어지는 물건이 많다'로 재정리 후 꼬맹이와 상의해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벼룩시장에서 모두 팔기로 했지요. 물론 판매한 물건 값은 꼬맹이가 다시 다른 장난감을 사기로 하고요.  꼬맹이 물건의 1/3을 팔기로 하고 다른 장소로 옮겼습니다. 그 이후로 꼬맹이 방은 이전보다 한결 정리된 상태입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문제가 있다면 다음 주 벼룩시장에서 우리 가족이 그 물건을 잘 팔아야지요. 


대기업에서도 위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특정 이슈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그 이슈를 해결하는 방법을 늘 논의합니만 그 답은 몇 년째 동일하지요. 그 답을 이행하기로 강하게 결의하지만 내년 이맘때쯤 다시 그 이슈를 논의합니다.  


기업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일하는 방식'을 변경하는 데, 기업은 복잡한 체계로 얽혀있기 때문에 특정 부서의 변화가 전체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검토하지 못하고 일하는 방식을 변경합니다.  결국 변경이 부작용을 일으키면, 담당부서 책임자가 모여서 앞으로는 담당부서별로 변경 영향도를 검토하고 승인 위원회를 개최하여 변화를 승인하는 절차서를 만듭니다.  불행히도  그다음 해에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면 절차서를 지키기로 협의합니다. 2년 후 다시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외부 컨설팅 회사에게 Global Best Practice를 요청합니다. 컨설팅 회사는 Best Practice를 정리, 수정해서 보고 드리면, 그 기업은 '우리 것과 똑같네'라고 말씀합니다.


위의 예는 추상적이지만 실제 기업에서 발생합니다.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 동일한 해결책을 결의하고 다시 그 문제에 봉착하는... 기업에서 문제가 반복되다면 더 깊이 심사숙고해서 이전과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담당자들의 단호한 결의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요. 문제를 더 깊이 파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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