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유형
"오다 노부나가는 새가 울지 않으면 한칼에 베어버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 "
위는 일본 대하소설 '대망(大望)'에 나오는 세 주인공의 리더십을 평가한 문구이다. '대망'의 문구와 같이 리더십의 3가지 외에 다른 유형도 있겠으나, 나는 이 '대망'의 유형에 격하게 공감한다.
내 공감의 근거는 컨설팅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양한 리더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는 프로젝트별로 팀을 꾸리기 때문에 컨설턴트는 프로젝트별로 다른 리더와 일을 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고객 기업의 리더를 경험한다. 일반 기업에 비유한다면, 프로젝트는 새로운 부서로의 인사 발령이다. 컨설턴트가 1년에 대략 2~3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이는 일반 기업에서 1년에 부서를 2~3번 옮기는 것과 같다.
'대망'의 세 가지 리더십은 리더와 프로젝트 보고서 또는 제안서 리뷰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리더는 개인별로 보고서와 제안서에 대한 관점, 논리 그리고 주장을 바탕으로 팀원과 리뷰한다.
이때, 보고서나 제안서가 리더 개인의 기준에 맞지 않았을 때, "이거 누가 만들었어? 내용이 왜 이래?"라고 말하는 리더는 새가 울지 않으면 한칼에 베어버리는 리더(오다 노부나가)이다. 이런 리더는 긴 한숨과 함께 미간을 찌푸리고 '내가 예전에 지시한 방향을 왜 따르지 않느냐'는 등의 잔소리를 한동안 쏟아 붓는다. 컨설턴트는 몇 마디로 반격하지만, 얼마 못 버티고 뭐가 열심히 필기하는 척하거나 눈길을 책상 아래로 내린다. 반항하기보다는 리더의 호통이 멈추고, 괴로운 순간이 빨리 과거가 되기를 바란다. 리더는 회의 일정을 다시 잡고, 회의실을 떠난다. 리더가 떠난 회의실에는 컨설턴트들의 민망한 감정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컨설턴트는 리더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 리더를 피하고 싶은 감정으로 다음 회의 때까지 맘이 편하지 않다. 참고로 이러한 오다 노부다가 유형은 보고서의 처음 몇 페이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절대로 보고서를 끝까지 보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리더와 리뷰할 때는 오타, 말이 안 되는 문장을 꼼꼼히 살펴서 보고서 처음을 준비해야 한다. 보고서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 때문에 일이 틀어지고 주말에 고생하는 수가 있다.
다음은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유형이다. 일단 이 리더 유형은 보고서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이 앞의 유형과 차이가 있다. 단, 이 리더의 기준에 보고서가 미치지 못하고, 리더에게 비즈니스 약속이 없다면 밤새워 리뷰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리더는 보고서의 한 페이지 한 단락에 대한 내용과 논리를 묻고, 그 허점을 지적한다. 결국, 리더는 화이트보드에 앞에 서서 펜을 들고, 보고서에 대한 자신의 스토리와 논리를 컨설턴트에게 그려준다. 서너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컨설턴트는 리더의 그림대로 보고서가 다시 작성할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컨설턴트는 자신이 이 리더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리더의 능력에 감탄한다.
마지막은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는 유형이다. 컨설턴트는 이 유형의 리더와 리뷰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이 유형의 리더는 보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후 편안한 분위기에서 의견을 주고받는다. '틀렸다, 잘못되었다'는 말 보다는 '흐름이 조금 어색하지 않아?', '고객은 어떻게 생각할 까?', '저거는 누구에게 확인이 필요할 것 같은데'는 표현을 사용한다. 자신의 기준에 보고서가 한참 부족하면, 그때 한마디 한다. '고생했는데, 조금 더 해보자, 내가 뭘 도와주면 되지?'. 리뷰가 끝날 무렵, 컨설턴트가 보완할 사항과 리더가 지원할 사항을 정리하고 다음 일정을 잡는다. 이 유형의 리더는 자신의 논리와 결론을 쉽게 이야기하지 않고, 컨설턴트가 준비한 논리와 결론에 대해서 보완할 방법을 함께 찾는다. 컨설턴트는 자신이 자료를 더 찾고, 검토하지 못한 것에 리더에게 미안하고, 함께 보완할 방법을 찾은 리더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오다 노부나가(벤다)를 만나면서 타인의 몇 마디에 쉽게 맘 상하지 않는 감정적 강인함을 길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울게 한다)에게 배우면서 보고서의 기본기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기다린다)와 일하면서 충성심과 자신감이 생겼다.
대망(大望)'은 전쟁 이야기다. 전쟁에서 어떤 유형의 리더가 옳고 그르다는 중요하지 않을 듯하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그 상황에 필요한 리더 유형이 있을 뿐이다. 전쟁을 준비할 때는 '울게 한다', 칼과 도끼가 날아다니는 전쟁터에는 '벤다' 그리고 평화가 왔을 때는 '기다린다'가 아닐까.
나도 어떤 유형의 리더가 옳은지 판단하기 보다는 나와 함께했던 리더를 통해서 배운 것을 중요시한다.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기다린다' 유형은 보통의 사람이 취하기 쉽지 않은 마인드와 자세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