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진실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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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어느 시점, 무명의 기후 과학자와 그의 조수는 그간 '자연적'인 현상으로만 치부되던 19세기 초반 이후의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 기조가 인간의 활동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는 특히나 인간이 산업 활동으로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것이 기온 상승의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대담한 가설을 세운다. 그는 데이터를 모으고 전 세계 각지에서 측정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사이의 관계를 추적한다. 그는 자신의 결과를 전 세계 동료들에게 보내고 확답을 얻는다. 그것이 말이 되는 것 같다는 평가였다. 그는 곧장 이를 정부 최고위층과 선이 닿는 과학보좌관에게 알린다. 보좌관 역시 그 데이터가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대통령과 긴급 미팅을 잡는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차기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문제로 골머리가 썩을 지경이다. 더구나 그의 가장 큰 정치적 후원체는 거대한 다국적 석유화학재벌이다. 석유사 회장은 무명의 기후과학자의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산업 경쟁력을 잃게 될 것임을 경고하며, 이 나라가 어떻게 산업을 일으켰는지 잊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기후과학자는 미디어에도 나가고 유튜브에도 나가지만, 석유사가 그간 심어 둔 장학생들은 기후과학자를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몰아세우고 강력한 프로파간다를 통해 그의 이론을 음모론으로 격하시킨다. 한 편, 다른 나라들의 과학자들 중, 일부가 그 기후과학자의 이론을 발전시켜 조금 더 신빙성 있는 증거를 확보하고, 그 나라 정부들이 연합하여 신재생에너지 위주의 산업 경제로 변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한다. 그러나 이미 산업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석유 산업체들은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들어가는 보조금에 대해 보이콧하며 해당 국가에서 철수를 경고한 나머지, 신재생에너지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무위로 그치고 만다. 유정을 파괴하려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시도 역시 무력을 등에 업은 다국적 에너지 회사들에 의해 수포로 돌아간다. 대통령은 지구의 평균 온도가 올라가고 있으나 충분히 제어 가능하고 이는 인간의 산업 활동과는 아무 상관없으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캠트레일을 뿌리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 캠트레일은 물론 거대한 다국적 석유화학회사가 비밀리에 개발했고, 무료로 뿌린다는 선전도 잊지 않는다. 물론 캠트레일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기후 위기 속도만 가속했을 뿐이었다. 기후과학자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오고, 그와 함께 일하던 대학원생은 학업을 포기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여름, 누적된 기후 변화의 스트레스는 지구 대기 순환을 카오스로 갑자기 변하게 만들어, 북반구에는 영하 50도의 추위가, 남반구에는 영상 50도의 더위와 가뭄이 찾아온다. 그리고 사계절은 그 이후 없어지고 남북극 빙하와 빙산은 티핑포인트를 넘어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하여 전 세계 해안 도시의 70%가 물에 잠기고 30억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라는 시나리오의 영화로 개작할 수 있는 최신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 (Don't Look Up)'을 감상했다. 과장된 플롯과 다소 허술한 구성의 B급 영화로도 볼 수 있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이미 인류는 영화에서 다루는 주요 이벤트인 몇 개월 후 지구 멸망급 혜성 충돌 임박과 맞먹는 이벤트가 짧게는 몇십 년 안에 벌어질 것임이 거의 확실한 경로에 놓여 있다. 몇 개월 대신 몇십 년일 뿐이고, 그나마도 몇 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는 코로나 같은 팬데믹 '따위'일지 모르겠으나, 사실 더 숙명에 가까운 일은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 기후 사이클 대변동과 해수면 상승이다. 애써 그 이벤트가 설마 자신의 살아생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혹은 그런 이벤트는 애초부터 음모론에 가까운 것이라, 혹은 그런 이벤트는 과장된 위험으로 포장된 것이라 애써 '돈룩업' 한다고 해도, 그 이벤트가 벌어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지나친 비관론은 경계해야겠지만 사실 RE100이니 그린수소니 뭐니 외쳐도 여전히 지구 상에서 부의 창출에 관여하는 산업 활동의 절대다수는 여전히 석유와 석탄, 그리고 가스에 의존한다. 석탄 화력 발전 대신 가스 발전을 한다고 해서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물론 줄긴 한다),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은 당장 몇 년 안에 신뢰성 있는 수준으로 당도하기 어렵다. 여전히 적어도 수십 년 간은 아마도 인류는 플라스틱 없이는 살 수 없는 문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세를 낮출 수 있을지언정, 농도 자체를 감소시키는 기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나를 포함한 우리는 기후위기를 '돈룩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상주의자처럼 다들 이야기는 한다. 지구의 기후위기는 심각하다든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아야 한다든지, 신재생에너지 연구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지구 상의 핵무기를 모두 동원하여, 아니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구를 향해 폭발적인 속도로 돌진해 오는 혜성을 어떻게든 파괴시켜야 하는 것처럼,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화석연료 기반 문명과의 안녕을 고해야 하는 이 시점에, 여전히 이 한 겨울의 한파를 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산화 반응은 대규모로 매일 매시간 매초 일어나고 있어야 한다.
영화 '돈룩업'의 결말은 처참하다. 지구는 결국 돌진해 오는 혜성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어 지구 상 인류는 (아마도) 절멸했고, 극소수의 이기적 인간들만이 동면에 빠진 채 제2의 지구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난다. 수 만년이 지난 후, 극소수의 인간들 중 절반 정도가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제2의 지구에 (무사히) 착륙한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호전적인 토착종들에게 잡아먹히기 시작한다.
미봉책으로 눈앞의 위기를 간신히 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 문명의 진행을 완전히 틀지 않는 한, 결말은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 참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저 B급 영화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여운이 뒷골을 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