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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l 06. 2022

학문의 토양

허준이 교수의 필즈메달 수상을 축하하며

예전에 박사과정 유학 시절, 미국에 머무는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의 한국에 대한 기억과 학위를 마치고 귀국할 즈음의 한국의 실상에 꽤 차이가 생기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5년 간의 박사 과정 기간 동안 한국은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변화를 통과하는 중이었고, 귀국한 나는 몇 달 정도는 급격히 바뀐 한국의 모습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사실 이는 미국에 아예 정착한 사람들에게는 더 극명하게 관찰되는 경향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이민 온 분들에게는 한국은 참으로 그리운 고국이지만 동시에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한국은 여전히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일 뿐이라는 인식 역시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즉, 이민 오던 시점의 한국에 대한 인상이 화석화된 셈이다. 한국이 후진국 혹은 중진국이던 시절에 세계 최강국 미국 (물론 미국은 여전히 최강국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은 없다.)으로 이민 와서 고생하며 정착한 분들에게 한국은 정겨운 고향이지만, 결국 자신이 떠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한 원흉이기도 했을 것이다. 많은 이민자들이 아마도 이러한 양립하기 어려운 감정, 혹은 현실적인 괴리 때문에 고국에 대해 양가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문의 세계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내가 학부생 시절, 우리 학부의 교수님들 90%는 대부분 유학파, 그것도 미국 유학파였다. 대부분 70-80년대 학번 선배님이시기도 한 교수님들은 은연중에 미국 교육의 우수성을 설파하시곤 했다. 군정 혹은 민주화 운동 시절, 본인들이 학부 과정에서는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어 미국에서 다시 새로 처음부터 배웠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들은 에피소드였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던 학부생 시절의 나 역시 당시에는 교수님들께서 강의 도중에 학생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며 하시던 말씀을 필터 없이 들으면서도 당연히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사실 당시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노벨상은 거의 매 해 미국에서 수상자가 배출되었고 (물론 이는 지금도 그렇긴 하다), 글로벌 대학 상위 탑 20위 안에는 하버드 스탠퍼드 같은 미국의 명문대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한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부생들이 유학 나가는 학교 역시 대부분 그런 학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학번 위의 선배들이 스탠퍼드에 진학했다느니, 버클리에 갔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졌고, 그러한 학교들에 대한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석사 과정 시절 지도교수님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석사 이후 군문제 해결 후 박사과정 유학을 갈 것이라는 결심을 지도교수님께 어렵게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추천서를 마지못해 써 주시던 석사 지도교수님의 실망하시던 표정, 그리고 안타까워하시는 눈빛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사실 실제로 박사 과정 유학 시절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기도 했다. TA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교수가 의당 해야 할 수업 준비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pset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실라부스대로 수업은 당연히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이 수업 중간에 교수 말을 끊고 질문해도 교수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도 있다, 밤새서 팀을 이뤄 텀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공대생의 특권이자 통과의례다, 노벨상급 석학들이 매주 세미나를 와서 과학 최전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이처 사이언스를 밥 먹듯 쓰는 교수들이 내 박사 논문의 커미티 멤버가 될 수 있다, 같은 그야말로 후진국에서 온 촌놈이 휘황찬란한 선진국의 도시 문물을 맛보듯 박사 과정은 내게 많은 깨달음과 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귀국 후에도 내 인식 한 켠에는 학부 학벌 따위에 대한 자부심은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한 켠에는 이러한 깨달음을 선사해 준 박사 모교에 대한 자부심은 꽤 오래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자부심은 다행히 남을 깔보는 장치가 되지는 않았다. 감사하게도 귀국한 이후 한국이 급격한 발전을 이뤄낸 것 그 이상으로 한국의 학계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팽창 일로에 있었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젊은 박사님들은 출신 학교에 상관없이 매년 실적은 물론 실력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여전히 각 연구중심대학에는 유학파, 특히 미국 유학파 교수님들이 많으셨지만, 예전 내가 학부생 시절 때처럼 거의 90%가 넘을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절반 이하의 비율로 낮아져 있었다. 오히려 국내 연구중심대학에서 우수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학위를 받으시고 자리 잡은 분들이 학교와 연구소에서 점점 비중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분들은 영어는 물론이고 학계의 트렌드, 그리고 난제 해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명문이라 불리는 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나는 가끔 그런 분들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했다. 압도적인 논문 실적이나 저널 수준도 물론이려니와, 오히려 더 폭넓은 행보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학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 속에 내가 배워 온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실망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도 한국의 학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논문 표절이나 부정, 교수의 갑질이나 비정규 박사급 인력들의 처우 문제가 잊을만하면 불거져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수준은 계속 향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초반 학번에 해당할 1세대 국내 박사들의 학계 안착 이후, 그들이 길러낸 2세대 제자들 (주로 30대)이 다시 대를 이어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으며, 그 밑에는 3세대 제자들이 또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유학파 교수보다는 국내에서 트레이닝받은 학자들의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예전만큼 이제는 박사과정 유학을 많이 나가지도 않을뿐더러,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 학계로의 패스처럼 인식되는 경우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적어도 이공계 분야에서는 실력과 실적이 학벌과 기관을 앞서는 문화가 생겼고, 이는 젊은 학자들에게는 국내에서 학위를 해도 충분히 학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게 있어서도 박사를 할 정도의 학생이라면 길러 봐도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 준 기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나는 대학원생들에게 박사 진학은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하지만, 그들이 학문의 여정을 나와 펼치고 싶다면 이제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수준까지는 한국의 학계가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아마 90년대 혹은 00년대 정도에 유학 나간 학자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학계는 후진국, 혹은 잘 봐줘야 중진국 수준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학부생들의 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에 한숨을 짓고, 대학원생들이 써 오는 논문을 보며 뒷목을 잡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와는 별개로 한국의 학문 토양은 더 다양해지고 강해졌고, 그 결과는 더 많은 국내파 박사들이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학 나가서 돌아온 시점에서 화석화된 한국 학계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런 분들은 제자를 이 척박한 토양에서 키워내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인 혹은 한국계 인물이 각종 분야에서 세계적인 찬사를 받거나 스포츠에서 우승하거나 예술 분야에서 톱클래스에 등극하거나 학문의 정점에 서있다는 뉴스가 들려오면 양가의 감정에 시달리는 것 같은 분들이 꽤 많이 보인다. 한편으로는 국뽕 들이킨 듯 자랑스러운 기분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냐, 혹은 한국인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냐, 한국 학계의 성과가 아닌 미국의 성과인데 왜 호들갑이냐고 냉소를 짓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러한 반응을 이해한다. 그러한 양가의 감정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 한 가지는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우여곡절 끝에 한국이라는 좁은 바운더리 안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충분히 세계적으로도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를 수 있을 정도까지는 만들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춘 토양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공장식 아이돌 육성소라고 부르는 환경에서도 BTS가 나왔고, 고교 중퇴를 했지만 어쨌든 초중고-학부-석사를 거쳐 미국에서 박사를 한 한국계 미국인이 필즈메달을 수상하게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입시용이든 뭐든 어쨌든 피아노 교육을 받은 이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학-석-박을 한 젊은 학자가 모교보다 훨씬 더 높은 세계 랭킹의 연구중심대학 교수로 임용되기도 한다. 예전의 관점에서라면 이것은 확률적 에러 정도로 볼 예외 사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겠지만, 어떤 케이스들이 꾸준히 반복되면 그것은 이제 통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통계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현상을 시스템의 관점에서 온전히 바라 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이 후졌다고 욕하고 입시 교육이 학생을 망친다고 한탄하며 경쟁력 떨어진 한국의 대학 학부 교육이 학자를 길러내지 못한다고 경고를 날리지만, 그 '척박하다'라고 보고 싶은 환경에서도 이제는 에러로만 볼 수는 없는 케이스가 나오고 있고, 이것은 한국의 시스템이 우연으로는 볼 수 없는 단계로 까지 도달해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공교육 시스템의 맹점이 있고, 입시 교육으로 많은 수험생들이 공부의 흥미를 잃으며, 경쟁력 떨어진 학부 교육 과정은 수많은 전공 포기자를 만든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국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어찌 보면 전 세계적인, 혹은 발전이 거의 정체 단계에 이른 1 세계 성숙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문제에만 함몰되어 냉소주의로 빠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문제를 인식하지 않고 희망회로만 돌리면서 국뽕에 빠지는 것은 실로 문제겠지만, 문제를 인식하되 현실을 마주하고 어떻게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발전과 진보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믿음을 가진 doer 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허준이 교수의 업적과 수상을 축하드린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을뿐더러, 그가 하는 연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나는 비록 수학자도 아니고 수학을 잘하지도 못 하지만, 그래도 수학자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신비의 장벽을 넘으려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업적에서 파생되어 나온 도구들을 감사해하며 내 연구에 적극 활용한다. 수학자들은 정작 그러한 물리적 혹은 공학적 응용 연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그들의 연구를 인용하고, 더 적극 활용하고, 현실의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자 크레디트일 것이라 생각한다. 허준이 교수의 업적은 그가 한국인 혹은 한국계 혹은 한국의 제도권 교육 수혜자라는 이유만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수학적 진보를 만들어 내었기에 의당 받아야 하는 찬사일 뿐이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왔든, 그가 이룩한 업적이 어떤 방향으로든 세상을 바꾸는 연구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 그 하나만으로 그의 수상은 온전히 축하할 수 있는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그가 겪었던 수학에 대한 좌절과 그에 대한 극복, 물리로 시작하여 수학으로 방향을 틀면서 만난 수많은 선생과 동료, 선후배들, 입시학원 강사부터 시작하여 필즈상 수상자인 일본인 교수까지, 한국에서 그가 만났던 모든 시스템과 인연이 그의 업적 밑바탕에 오롯이 놓여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마저도 국뽕이라 폄하할 필요는 없다. 박사 과정에서 한 일로 수상을 한 것이기에 그의 업적은 직접적으로는 미국의 시스템으로부터 창출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지점까지 허 교수를 밀고 끌어주었던 한국의 셰르파들까지 애써 폄하할 필요가 없다. 그 수준까지 한국이 어쨌든 이르렀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면 될 뿐이다.  


모쪼록 허준이 교수의 케이스가 원히트 원더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정착하고 이들에 대한 체육 훈련과 교과 공부가 밸런스를 이뤄 그로부터 손흥민 같은 훌륭한 축구 선수가 계속 배출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의 제도권 교육, 특히 이공계 교육의 체계가 한국이라는 바운더리를 벗어나서도 경쟁할 수 있는 학자를 더 많이 배출할 수 있을 정도까지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검정고시 출신이든, 특목고 출신이든, 지방대 출신이든, ist 출신이든, 이들이 주어진 소정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학문적 흥미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으면서도 계속 꿈을 이어갈 수 있는 정도의 지원은 할 수 있는 그런 체력을 갖춘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도전을 격려하고 실패자에게 기회를 다시 주며 주니어들에게 발언권을 줄 수 있고 허상이 아닌 실력을 숭상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이미 허준이 교수라는 훌륭한 사표로 인해 수많은 수학의 꿈나무들에게는 커다란 롤모델이 생겼는데, 그 강력한 동기가 그저 수그러들지 않게 잘 가꿔줄 수 있는 시스템이 완비되어 나가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냉소에 빠져 한국의 후진성만 논하며 자포자기하기에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고생하신 분들의 피와 땀은 너무나 소중하다. 이 작은 나라에서 또 어떻게 인류의 난제를 정면에서 마주할 사람들이 나올지 모르는데, 그 사람들의 싹이 적어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는 토양이 온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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