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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l 06. 2022

단독 등반

외롭고 어렵지만 그래도 갈만한 가치가 있는 학문의 여정

캐나다 등반가 마크 앙드레 르클렉 (Marc-André Leclerc)


"Solo climbing on a high level is an expression of art. The art of surviving in the most crazy situations. Maybe half of the leading solo climbers of all times died in the mountains and this is... This is tragic and it's difficult to defend. But this is the philosophy. For going in an adventure, you need difficulties, you need danger. If death was not a possibility, coming out would be nothing. It would be kindergarten, but not an adventure and not an art." -Reinhold Messner- 


"최고 난도의 단독 등반은 어찌 보면 기예의 경연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기어이 목숨을 건져 나오는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아마도 역사를 통틀어 정상급 등반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반은 산에서 삶을 마감했을 겁니다. 이건... 정말 비극적인 것이고 뭐라 실드 치기 어려운 일이겠죠. 그렇지만 이 최고 난도의 단독 등반이라는 것은 철학의 영역입니다. 진짜 모험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난이도가 있어야 합니다. 위험을 자초해야 한다는 거죠. 죽음까지도 각오할 정도의 그런 위험, 그런 모험이 아니라면 사실 등반가 입장에서는 애들 장난 수준일 것이므로 얻는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런 등반은 모험도 아닐뿐더러 기예도 아니고 예술은 더더욱 아니겠죠." -라인홀트 메스너-


위의 이야기는 2020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 중,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산악가 라인홀트 메스너가 한 인터뷰에서 발췌된 것이다. 다큐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마크-앙드레 르클렉 (Marc-André Leclerc)이라는 20대 중반의 젊은 캐나다 산악인의 스물여섯 해 짧은 삶을 담담히 기술해 나간 기록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언급에서도 볼 수 있듯, 단독 등반, 특히나 최고 난도, 최악의 명성을 자랑하는 전 세계의 절벽과 빙벽을 찾아 거의 아무런 장비도 없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자신과 싸워가며 생사의 고비를 넘는 이 단독 등반은 미친 짓에 가깝다. 마크-앙드레는 그 미친 짓을 하는 등반가들 중에서도 더욱 미친 등반을 시도한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이 미친 짓을 일부러 전 세계를 찾아다니며 이어간다. 절벽의 오버행 따위는 그냥 실내 암벽등반 연습장에서 손발을 걸치듯 쉽게 넘고, 깎아지른 겨울 설산의 빙벽은 발걸음마다 부서져 나가 보는 사람의 오금은 저절로 저려올 정도지만, 정작 마크-앙드레의 표정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목숨을 내던지다시피 할 정도로 마크-앙드레 같은 단독 등반가들은 모험을 계속 찾아나가는 것일까? 라인홀트 메스너의 이야기대로, 적절한 난이도의 등반은 그들의 철학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애들 장난 같은 느낌이라서 그런 것일까? 혹자는 이들이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쾌감을 얻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다른 이는 이들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와 욕구를 추정하는 이론이야 어떻든, 이들이 등반 중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해 보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좁은 암벽 틈에 손가락을 끊임없이 밀어 넣고 튀어나온 작은 돌 위에 자신의 몸무게 전부를 아슬아슬하게 얹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수백 미터 높이의 수직 절벽 위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비스듬한 비박을 시도하며,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속에서도 얇은 텐트 하나에 의지하여 눈폭풍이 몰아치는 밤을 보내면서 질긴 목숨을 이어간다. 


영화의 주인공 마크-앙드레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인터뷰한 수많은 단독 등반가들의 특징은 가만 보면 구도자의 뭔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무엇인가는 딱히 규정할 수 없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철학으로 예술로 혹은 기예로, 각각의 보는 방향에서 기술될 수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진짜 자신과 만나는 과정 그 자체라 생각한다. 단독 등반가들은 아무도 없는 외딴 절벽, 위험한 상황, 생과 사의 좁은 담벼락 위에서 그것을 만나는 것이고, 동굴 탐사자들은 어두운 땅속, 좁은 틈바구니, 희박한 공기 속에서 그것을 만나는 것일 것이다.


사실 학문의 길로 계속 나아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독 등반, 동굴 탐사와 비슷하다. 남들이 연구하지 않은 문제, 남들이 발견하지 못 한 현상, 남들이 증명하지 못한 가설, 남들이 만들어내지 못한 시스템, 남들이 조합하지 못한 서로 다른 요소 등은 수많은 학자들의 인생을, 그야말로 목숨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가설을 증명하려 평생을 바치다가 미쳐버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박사 과정 10년을 투자하여 유기 전합성 (total synthesis)에 도전했다가 마지막 조각 하나를 못 찾아 전합성에 실패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너무도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다가 그 끝을 보지 못 하고 눈을 감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마도 그들은 각자의 '단독 등반'을 하며 진짜 학자로서의 자신을 만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등반의 성공이라는 결과가 따르면 더 좋았겠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이미 그들은 학문의 진짜 맛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한창 산에 많이 다닐 때 설악산을 1박 2일 코스로 장거리 종주한 적이 있다. 한계령 휴게소를 들머리로 해서 새벽 3시에 시작한 산행은 첫날 한계령-소청-중청-대청-다시 중청-봉정암 하산 후 다시 다음 날 수렴동 대피소-마등령-공룡능선-양폭대피소-대공원을 날머리로 하는 장거리 코스였다. 예상하다시피 가장 어려운 코스는 공룡능선이었는데 8월 한 여름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어느 시점에서인가 그 공룡 능선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한 시간 정도의 순간이 생겼다. 마실 물은 반 병 밖에 안 남았고, 전날 33 km를 걸었던,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는 벌써 14 km 정도나 걸었던 다리에는 쥐가 날 기미가 보였다. 1275봉 근처 작은 그늘에 자리를 잡고 한숨 돌린 후 바위틈바구니로 언뜻언뜻 보이는 속초시와 동해의 푸른 바다를 멍하게 한참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에는 청량함과 평화가 찾아왔고 설악산 공룡능선의 기암괴석, 그리고 동해의 푸른 바다 빛은 강렬한 이미지로 그대로 마음에 석판화처럼 들어왔다. 새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 신기한 고요함 속에 혼자 있다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육체의 피곤함마저도 사라지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30여분 정도 아무도 없는 그 공룡능선에서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그 편린을 새삼스레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어느 산행에서도 느껴보지 못 한 감정이었다.


겨우 설악산 공룡능선 정도를 두고 마크-앙드레가 시도한 단독 등반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느꼈던 그 작은 그렇지만 강렬한 느낌과 자유의 느낌은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모든 연구가 다 그렇겠지만 학자로서 연구는 점점 어려워지고, 이른바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구는 점점 더 많은 증거와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에너지와 더 강한 헌신과 더 탄탄하면서도 치밀한 논리,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다각도의 고찰을 요구한다. 등반 난이도는 매번 높아지고 탐험해야 할 동굴의 깊이는 매번 깊어진다. 정상을 정복할 수 있을지, 동굴 호수의 밑바닥에 닿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풀리지 않는 연구의 문제 속에, 설명되지 않는 실험 데이터를 마주하며, 수렴하지 않는 시뮬레이션 결과들에서 답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면 정작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이야기한 것처럼 난이도, 그리고 위험을 자초하여 등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단독 등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연구자, 학자들의 숙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등반가들이나 학자들이나 결국 단독으로 문제와 마주치는 과정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뒤쫓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난히 지난 몇 년 간 씨름했던 결과들이 차례로 출판되는 시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좋은 연구 결과를 연이어 계속 출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사실 몇 년간의 고난도 등반을 계속한 결과물이 리뷰어들과의 처절한 싸움 끝에 너저분한 연구 현장이 박제된 채 세상에 나오는 것일 뿐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단독은 아니고 여러 동료들과 같이 등반을 했지만, 결국 내가 천착한 부분에서는 단독 등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등반의 성공을, 때로는 한 없이 수백 미터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경험도 겪었지만 결국 어쨌든 몇 가지 성과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 학문이라는 것은 참 묘해서 이렇게 등반을 마치고 나면 지쳐있을 것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또 다음 난제를 다시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생겨난다. 그 산에서 떨어져 회복이 오래 걸리는 부상을 입을 수 있을 확률을 감수하고서라도 또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때로는 거액의 연구비를 투입하여 한 번 부딪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마크-앙드레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을 뒤로하고 끊임없이 최고 난이도의 단독 등반을 이어가다 결국 어느 날 그가 그토록 자신을 찾고 싶어 했던 알래스카의 험준한 산속에서 스스로와의 만남을 완성한다. 수많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절대 그 시신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그 산속에서 스스로의 탐험을 완성하며 세상을 등진다. 학문의 희열을 완성하기 위해 마크-앙드레처럼 단독 등반, 그리고 끝내 고립을 자초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마크-앙드레 같은 수준의 고도의 집중과 천착이 없다면 학자로서의 업적은 excellency에 접근하기 쉽지 않을 것임은 물론, 결국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몇 년 전의 공룡능선에서의 체험이 결국 내 학문 여정에서의 자유와 나 스스로를 발견하는 체험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여전히 유명함과는 거리가 먼, 그저 볼품없는 학자로서의 인생이지만 다행히 같이 할 친구들과 동료, 그리고 이제는 제자들이 생기고 있으므로 등반을 지속할 힘이 남아 있는 한 계속 오르고 싶다. 안 가본 산, 남들이 가보지 못 한 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산을 계속 오르고 싶다. 모든 산에서 등반을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학자로서의 나를 재발견할 수 있기를, 그 희열의 지극히 작은 물방울이라도 입에 적셔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정도 희열이라면 학문의 여정을 마칠 때 큰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이 길을 거쳐 간 수많은 학문의 마크-앙드레들을 추모한다. 


RIP Marc-André Leclerc (October 10, 1992 – March 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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