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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l 06. 2022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

그 이면에 있는 누군가의 땀

아침 출근길인 인천-군포 간 영동고속도로 구간에는 인천이나 시흥 쪽에서 출발한 화물차들이 굉장히 많다. 아마 도로 점유율로 따지면 절반 이상은 화물차, 특히 대형 화물차일 것이라 추정될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도로 폭이 좁고 노면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영동고속도에서 운전하는 것이 매일 곤욕인데, 가끔씩 난폭 운전하는 화물차들을 만나면 신경이 더욱 곤두서곤 한다. 그래서 무사히(?) 영동 고속도를 엑싯하는 순간에는 저절로 긴장이 풀려 숨을 고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규정 속도와 차선을 잘 준수하지만 간혹 성미 급한 화물차들로 인해 위협을 느낀 후로부터는 대형 화물차를 모는 기사들에 대해 느끼는 솔직한 내 감정은 다소 부정적으로 편향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 여름에 접어든 7월 첫 월요일인 오늘 출근길도 이러한 마음에는 별다른 변동이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영동 고속도에 올라타 가속을 하다가 슬슬 길이 막히기 시작하는 반월터널 근처에 왔을 때였다. 속도가 줄어든 고속도로 내 차선 옆에는 커다란 대형마트 화물차 두 대가 나란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화물차 형태는 두 차 모두 공교롭게도 냉동탑차로 보였다. 즉, 신선식품을 가득 채운 채 수도권 남부 도시 어딘가의 마트로 향하는 차들 이리라. 나는 이 차들이 또 언제 차선을 바꿀지, 언제 뒤에 붙을지 조마조마하며 슬슬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좀 덥다는 생각이 들어 계기판을 보니 외기는 벌써 31도를 넘고 있었다. 에어컨 온도를 1도 낮추며 한숨을 돌리면서 옆 차선을 문득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 옆의 화물차 운전기사는 작은 손선풍기로 얼굴의 땀을 연신 식히며 핸들을 굳게 붙잡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의 화물차가 내 옆으로 다가오자 이 화물차 기사는 손선풍기마저도 없는지 창문을 열며 조금이라도 시원한 바람을 느끼려 하는 것 같았다.


문을 굳게 닫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에어컨 온도를 낮추며 운전하던 나는 문득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이 대형 화물차 기사들이 에어컨도 제대로 못 틀면서 운전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신선한 식품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자신들이 모는 탑차 뒤편에서는 시원하다 못해 얼어버릴 지경의 냉기가 유지되지만, 정작 그 장거리를 운행해야 하는 기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치솟고 있는 기름값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손선풍기와 자연 바람으로 버티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마트에 가서 신선 식품 사기, 냉동식품 사기'라는 소비 행위는 이러한 운전기사들의 땀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냉동탑차와 냉매 기술의 발달이 일등공신 아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 큰 탑차를 장시간 고생하며 운전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아니었다면 (나중에는 자율주행차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훨씬 더 멀리까지 가서 고생하며 신선 식품을 혹시나 오는 길에 상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 왔어야 했을 것이다. 


집 주변에 있는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오백 원짜리 하드바 몇 개를 집어 오는 그 순간에도 이 하드 바가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을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트에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집어 바구니에 넣었다가 계산대 옆 진열대에 아무렇게나 놓아두고 가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당연하게 그냥 일상생활이라 생각하는 도시에서의 소비 라이프는 결국 이렇게 새벽부터 더위와 싸워가며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운송 노동자들의 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한 때 글로벌 상식에 근접하고 있던 자유무역주의 그리고 글로벌 밸류체인은 조금씩 그 기저가 흔들려, 어느새인가부터는 당연한 것이 아닌 개념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늘 그 자리에서 물건을 생산하고 운송한다는 개념은 언제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흔들릴 수 있고, 늘 당연히 있어야 하는 전기나 에너지, 그리고 나아가 식량이나 자원도 어느 날 갑자기 상식과는 멀어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시절이 되어가고 있다. 한 때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의 기저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때다. 시간에 맞춰야 하는 화물차 기사들의 난폭운전에만 분노를 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연신 땀을 닦아 내며 무거운 핸들을 부여잡으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그 방식이 기저에 있었음을, 제3세계 어디에선가는 여전히 자유무역이라는, GVC라는 기치 하에 불공정 무역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기저에 있는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그 기저부터 흔들릴 개념은 언젠가 결국 신기루가 될 것이다.


군포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며 냉동탑차에서 고이 냉동되고 있을 아이스크림을 생각했다. 그리고 손선풍기로 땀을 식히며 뜨겁게 달궈진 영동고속도로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을 화물차 운전기사들을 생각했다. 깨달음을 얻은 듯, 나는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길에 잠깐 골목을 막고 있던 택배차를 만난 후에도, 그 차가 무사히 후진할 수 있도록 기꺼이 후진을 했다. 뒤 범퍼가 살짝 도로 턱에 긁혔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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