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있어 과학의 의미
이번에 새로 미 항공우주국 (NASA) 고다드우주센터 (Goddard Space Flight Center) 국장으로 취임한 Makensie Lystrup 박사는 행성과학자이자 공직 취임 전에는 민간 우주회사인 Ball Aerospace & Tech의 부사장이기도 했다. 그녀 역시 미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취임할 때 의례적으로 하던 선서를 했는데, 특이하게도 성경책이 아닌 다른 책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다. 그 책은 다름아닌 칼 세이건의 Pale Blue Dot.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라고 해도 반드시 성경책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렇다면 성경책이 아닌 다른 수많은 책 중에도 그녀가 칼 세이건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칼 세이건의 최대 역작이자 아마도 가장 유명한 교양 과학서 중의 하나일 것인 Cosmos가 아닌, Pale Blue Dot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1977년, 나사는 행성 탐사선 보이저 1호를 발사하였는데, 그 탐사선 현재는 태양계를 거의 벗어날 정도로 지난 45년 넘게 엄청난 거리를 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중요한 측정 데이터와 사진을 남겼다. 보이저 1호가 대략 지구로부터 64억 km 정도를 비행했을 무렵인 1990년 2월 14일 발렌타이데이 때, 카메라의 방향을 돌려 자신의 고향 행성 이미지를 찍었다. 너무 먼거리에 있던 지구는 보이저 1호의 이미지센서 픽셀 한 개 정도도 다 채우지 못 할 정도로 작았지만, 주변의 어두운 배경과는 대조적인 pale blue 색깔을 선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보이저 1호의 미션에도 참여한 바 있는 칼 세이건 박사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경우 보이저 1호의 광학 시스템 손상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이 이미지를 찍자고 강력하게 제안했는데, 당시 NASA의 국장 리처드 트룰리는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이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칼 세이건이 1997년에 펴낸 책 Pale Blue Dot의 메인 테마가 되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을 펴내기 직전인1996년에 눈을 감았으니, 사실상 이 책은 칼 세이건이 우주 속의 작은 점, 그리고 그 작은 점 위에 엎치락뒤치락 애먼글먼 살고 있는 인류에게 던지는 마지막 메세지이자 유서였던 셈이다. 그 메세지의 메인 테마가 바로 이 사진이었던 셈이다.
칼 세이건은 이 이미지를 본 후 다음과 같은 감상을 남겼다.
"From this distant vantage point, the Earth might not seem of any particular interest. But for us, it's different. Consider again that dot. 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On it everyone you love, everyone you know, everyone you ever heard of, every human being who ever was, lived out their lives. The aggregate of our joy and suffering, thousands of confident religions, ideologies, and economic doctrines, every hunter and forager, every hero and coward, every creator and destroyer of civilization, every king and peasant, every young couple in love, every mother and father, hopeful child, inventor and explorer, every teacher of morals, every corrupt politician, every "superstar," every "supreme leader," every saint and sinner in the history of our species lived there--on a mote of dust suspended in a sunbeam." from 'Pale Blue Dot' by Carl Sagan (1997)
고다드 우주센터장으로 취임한 Lystrup 박사가 다른 책이 아닌 이 책에 손을 얹고 엄숙한 선서를 한 것은 고다드 우주센터의 대표 프로젝트이자 가장 성공한 행성 탐사프로젝트 이기도 한 보이저 프로젝트에 대한 존경과 오마주,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영감을 심어준 칼 세이건에 바치는 헌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NASA는 보이저 이후, 수많은 태양계 행성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했거나 지금도 추진하고 있으나, 대부분 특정 행성 혹은 행성의 위성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라 보이저 1, 2호 같은 태양계 자체에 대한 프로젝트는 이후 이어지지 않고 있다. 언젠가 인류가 다시 한 번 태양계의 탐사에 도전하게 되어 조금 더 발전한 기술을 기반으로 훨씬 더 먼 곳에서 우리의 행성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보이저 1호의 이미지 픽셀보다 훨씬 작은 픽셀로, 훨씬 더 높은 감도의 센서를 갖추고 나서 여전히 우리의 지구가 푸른지, 창백한지 확인하고, 여전히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 지구가 작다는 것, 그렇지만 그 작은 행성에 살고 있는 지적 생명체는 여전히 그런 이미지를 찍을 자격이 있는 지성과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