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17. 2020

미-중 패권 전쟁은 소프트파워의 문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원리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은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많은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막장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할 정도였다. 실제로 트럼프 정권이 출범한 이후, 트럼프에 대한 하원의 탄핵 시도도 있었고, 각종 선거 의혹 제기는 물론, 러시아 커넥션, 성추문 같은 온갖 의혹이 불거져 나왔지만, 여전히 트럼프는 백악관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제 오는 2020년 11월이면 트럼프의 재선 여부가 결정된다.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투표날이 하루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지난 대선 같은 이른바 shy 지지자들의 표심이 어떻게 실제 결과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트럼프의 재선 여부는 누구도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다.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당선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해도, 그리고 심지어 그가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미국이 당분간 G1으로서의 헤게모니를 잃지 않으리라 많은 사람들은 예상한다. 그 이유야 워낙 미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 (사방팔방에 미국을 위협하는 적국이 없다),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 (광활한 국토와 석유를 포함한 지하자원, 중서부 대평원에서 산출되는 식량 자원,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 세계 순위 100위 권 안에 50개 이상의 대학이 미국 대학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나듯, 그간 벌어 놓은 지적 재산과 각종 자본이 엄청나다는 점, 그리고 이른바 FAANG으로 대표되는 IT 공룡들이 주도하는, 여전히 지구에서 가장 빠른 기술의 혁신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나라라는 점, 여전히 세계 인재들에게 가장 개방되어 있는 나라라는 점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 잊으면 안 되는 것은, 어쨌거나 미국에는 깨어 있는 사람들이 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변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의견 표명의 자유를 가감 없이 활용하여 상대가 누구든, 자유를 침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심지어 대통령이라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치적 탄압이 있든 말든, 미국의 연방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에 기반하여, 누가 뭐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에 따라, 이들은 자신의 의견과 정보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공개한다. 이중 트럼프의 재선을 무척 경계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만든 사이트가 있다.

 https://www.mcsweeneys.net/articles/the-complete-listing-so-far-atrocities-1-889?fbclid=IwAR3bPTnvTrP1m5kkmSfF5Us2vyBaWIowIbcpoF6VIbRDPz65MS6wNmVAluE

이 사이트는 2016년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지금까지, 그의 엽기적인 행각, 언론에 노출된 그의 언행과 설화, 각종 부정부패 및 범죄 연루 사실과 의혹, 성추문과 인종차별적 발언 등, 그의 막장스러운 기록을 조선시대 사관이 임금의 변소 출입 시간까지 기록하듯, 디테일하게 추적하며 모조리 아카이 빙하고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by BEN PARKER, STEPHANIE STEINBRECHER, KELSEY RONAN, JOHN McMURTRIE, SOPHIA DuROSE, RACHEL VILLA, and AMY SUMERTON라고 쓴 것을 보아 아마 집단으로 보이는데, 겁도 없이 실명을 그대로 다 공개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명을 드러내며 용기를 내어 세밀하게 정치 지도자의 행각을 아카이 빙하고 있는 덕에, 미국의 정치는 지금보다 더 최악으로는 치닫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행여 이 사이트가 폐쇄되는 처지에 놓이더라도, 아마 이런 사이트는 2중, 3중으로 여기저기에 백업이 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이트는 언뜻, 자국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자존심 강한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치부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이트 운영자들은 그런 걱정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사이트를 꾸준히 운영해 나가고 있다. 이 사이트의 철학은


"LEST WE FORGET THE HORRORS: A CATALOG OF TRUMP’S WORST CRUELTIES, COLLUSIONS, CORRUPTIONS, AND CRIMES"


이라는 모토에서도 잘 드러나듯,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로다. 


물론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며, 지난 2016년 대선처럼, 모든 이들의 예상과 다르게,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미국의 정치 현실이니, 섣불리 "트럼프의 재선은 이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안 할 것이다"라고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 사이트는 다시 그 이후의 미국의 실수와 패착을 다시 가감 없이 기록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미국 사람들이 현실에 눈을 뜰 수 있게 버티고 또 버틸 것이다.


바야흐로 신냉전 시대라 불릴 만큼 G1과 G2, 즉, 미-중 다툼이 이제 본격화되는 시국이다. 미국은 중국을 정치, 외교, 경제, 기술 전방위에서 압박하고 있으며, 자국의 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조금의 양보도 없이 처절할 정도로 이인자를 죽이려 드는, 그래서 실제로 지난 100여 년 간, 확실히 제압해 온 전력을 갖고 있는 나라다. 이런 국면에서는 여, 야, 좌, 우, 진보, 보수할 것 없이, 미국은 똘똘 뭉친다. 이른바 풀컨디션 미국이 되는 것이다. 미국이 언제까지 G1으로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 헤게모니를 내려놓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자국의 이익 앞에 당파 상관없이, 인종 상관없이, 출신 상관없이, 똘똘 뭉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고유한 소프트 파워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언젠가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마침내 G1의 위치로 올라 설 가능성이 보이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중국이 무시무시한 신무기나 혁명적인 신기술을 개발한 날이 아닌, 중국에서도 이 McSweeny's와 비슷한 사이트가 운영자들의 실명을 건 상태에서 생기고, 당의 압박 없이, 이 사이트에서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 특히 시주석 같은 최고위 지도자들의 비리와 부패 실상, 언행의 잘못된 점 등을 낱낱이 고발하는 행위가 제재받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확인되는 그 날일 것이다. 그때쯤 되면 이제 중국도 G1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소프트 파워를 갖춘 나라로 인식될 것이고, 그것이 중국이 진짜 두려운 나라가 되는 시점일 것이다. 


나라의 부강함에 있어,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소프트 파워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나라는 결국 뿌리가 경직되어 반복되는 스트레스 테스트로 인해 내부에서부터 붕괴가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미국의 정치가 막장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G1은 미국이고, 중국의 경제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자만, 여전히 G2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스스로 모이는 자율주행차는 교통지옥을 해결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