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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17. 2020

스스로 모이는 자율주행차는 교통지옥을 해결할 수 있을까

자기 조립된 인공 시스템은 자연의 지혜를 차용할 수 있다.

자기 조립 (self-assembly)/자기 조직 (self-organization)은 분자 수준 혹은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질이 근거리 상호작용 (short-range interaction)을 통해 규칙적인 구조를 이루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로 나노입자 (nanoparticles) 같은 미세한 알갱이들이 알아서 뭉치고, 뭉쳐진 덩어리들이 그냥 랜덤 한 덩어리가 아니라 마트에 예쁘게 진열해 놓은 사과들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경우를 주로 자기 조립이라고 부르고, 미세한 알갱이가 아닌 은박지나 하늘거리는 비닐, 기다란 스파게티처럼, 특정한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는 블록들이 서로의 연결도에 규칙이 생기면서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잘 채워 넣는 행위는 자기 조직이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둘을 엄밀히 구분해서 부르지는 않는 추세고, 주로 자기 조립이 더 많이 쓰인다.


자기 조립과 자기 조직은 연구자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누가 명령하거나 프로그래밍한 것도 아닌데, 아무런 의식도 없는 물질들이 알아서 질서 정연하게 특별한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통계물리학, 계산과학, 컴퓨터과학 관점에서 과학적인 이해가 그간 많이 증진되어 왔다. 분자동역학 (molecular dynamics) 관점에서 보면, 이들의 자기 조립은 근거리 상호작용, 가끔은 원거리 상호작용에 의해 뉴턴의 운동 방정식만 적절하게 잘 세우면 컴퓨터 상에서 얼마든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입자는 기본적으로 반 데르 발스 상호작용 (van der Waals interaction)으로 인해 가까운 거리에서는 인력이 발생하고,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는 서로의 부피를 침범하지 않거나, 엔트로피 증가를 회피하려는 행동이나, 입자 겉면을 감싸고 있는 연성 물질 분자들의 탄력성으로 인해 서로를 밀어내는 척력이 발생한다. 당연히 두 힘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이 존재하며, 그 지점에서 서로의 사회적 거리를 두면 둘 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아 이건 아니고 열역학적으로 만족해한다 (즉, 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입자 사이의 에너지 퍼텐셜을 계산하고 이들의 움직임이 주어진 온도 조건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추적하면 이들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스스로 조립할지 추측할 수 있다. 입자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보다 복잡한 모양을 갖는 물질의 경우에도, 좋은 성능의 컴퓨터만 있으면 이들이 보이는 자기 조직 패턴을 잘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연구하는 분야 중 하나는 연성물질 중 하나인 블록 공중합체 (block-copolymer)다. 이들은 마치 서로 싫어하는 뱀 두 마리가 서로 꼬리가 묶인 상태의 분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고분자다. 서로 싫어하니 최대한 멀어지려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뱀 두 마리로 이루어진 쌍을 수 천 개 좁은 방안에 한꺼번에 모아 놓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같은 종류의 뱀끼리 모이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려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뱀의 길이 비율, 몸이 휘어지는 정도나 머리의 크기 등의 다양한 요소를 조절하면, 같은 뱀끼리 모이는 형태가 달라질 것이다. 블록 공중합 체도 거의 비슷한 원리로 자기 조직되는 패턴을 보인다. 그리고 이들 블록 공중합체를 이루는 두 뱀 같은 고분자 사슬의 물성을 잘 제어하면 이들의 자기 조직 패턴을 작게는 10 나노미터 수준까지 축소시켜 제어할 수도 있다. 극초미세 패터닝이 핵심 기술이 되고 있는 현 수준, 그리고 차세대 반도체 패터닝 입장에서 보면 꽤 귀가 솔깃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자기 조립이나 자기 조직 현상은 비단 자연계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간단한 원리 (즉, 아주 단순한 상호작용에 대한 rule)만 부여하면, 이들은 알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놀랍도록 복잡한 모양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결국, 자기 조립 혹은 자기 조직 패턴을 ‘미리’ 설계하고 싶다면, 애초에 그 rule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된다. 물론 이는 매우 어려운 reverse problem에 해당한다. 즉, 답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 답을 내놓는 문제를 추측할 것인지에 대한 케이스다. 당연히 문제를 알고 답을 얻는 것보다, 답을 알고 문제를 역추적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케이스인 것이다. 요즘에는 딥러닝 같은 AI 알고리듬을 활용하여 이러한 rule를 통계적으로 추정하는 연구 방법도 있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난이도가 꽤 높은 문제에 속한다.


이러한 접근법, 그리고 reverse problem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과학자들, 그리고 공학자들은 자연계에서 관찰되는 자기 조립/자기 조직 현상을 어떻게 더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로봇공학자들은 매우 작은 로봇, 일명 킬로 봇 (Kilobot)이라고 불리는 미니 로봇을 이용하여 이와 유사한 연구를 하고 있다. 킬로 봇들은 크기가 수 cm 정도에 불과한 정말 장난감처럼 생긴 로봇이다. 이들에게는 매우 단순한 기능밖에 없다. 일단 2차원 공간 상을 움직일 수 있는 4축 바퀴, 그리고 일정 범위 내에 있는 다른 주변의 로봇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 그리고 에너지가 일정 이하가 되면, 정해진 충전기로 가서 RF 충전하고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파워 센서 정도가 전부다. 간혹 외부에서 명령어를 실시간으로 입력하고 싶은 경우를 대비하여 안테나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이때, 개별 로봇에 대해 주변 일정 범위 이내의 이웃 로봇과의 통신에 대한 규약을 미리 입력하면, 이들의 자기 조립 패턴을 제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변 5 cm 이내의 로봇이 있다면, 그 로봇과의 상호 거리와 상호 방향벡터를 계산하여 자세를 어떻게 조정하라는 식으로 명령어를 사전에 입력할 수 있다. 또한, 위치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속도나 가속도를 인풋으로 받아 다시 피드백을 주는 등의 한 단계 더 높은 명령을 수행하게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제한된 숫자의 명령어 세트만 가지고도 굉장히 복잡한 자기 조립 패턴을 만들 수 있으며, 이는 곧, 실험적으로 자세하게 관찰하기 어려운 자연계 현상의 초미세 자기 조립 나노 패턴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도구로서의 가치를 넘어, 아예 새로운 종류의 자기 조립, 그리고 개미나 벌 같은 사회적 동물의 집단 거동에 대한 이해, 나아가 도로와 하늘을 수놓을 수천, 수만 대의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AV), 아마존 같은 업체가 구상하고 있는 택배 용 자율 비행 드론 등의 트래픽 컨트롤에도 이용될 수 있다.


첨부하는 기사*

*https://phys.org/news/2020-09-small-self-organizing-autonomous-vehicles-significantly.html?fbclid=IwAR2PTIFh7rAE_rQRymRsORz2A1DiIOn1QrF57YGLt787cYOpAofVMgmxXd0

에서는 최근 물리학 저널 Journal of Physics A: Mathematical and Theoretical에 보고된 ‘A minority of self-organizing autonomous vehicles significantly increase freeway traffic flow’라는 제하의 시뮬레이션 연구를 다루고 있다.**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751-8121/abb1e1


해당 연구에서 이스라엘의 Bar-Ilan University 골덴탈 박사와 칸터 교수 연구팀은 도로 상의 트래픽에 대해 서로 통신이 가능하여 결국 자기 조립 패턴을 만들 수 있는 자율주행차들이 많아지면 과연 트래픽이 어떻게 변할지를 시뮬레이션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도로 상의 자동차 중, 단 5%만 자율주행차로 바뀌어도, 트래픽의 개선은 눈에 띄게 좋아진다고 한다. 따라서 충분히 높은 비율로 자율주행차가 도로 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면, 그 효과는 더욱 강화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단 5%의 AV만 주행되는 경우라도, 최적의 조건에서, 전체 트래픽은 40% 개선되었고, 그와 동시에 평균 연료 소모량은 28%나 저감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당연히 자율주행차의 비율이 늘어났으므로 사고 확률도 그만큼 절감되었을 것이다. 즉, 출퇴근 시간이 최대 40% 절감될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28%나 저감 될 수 있으며, 사고 확률도 떨어질 수 있으니, 정말 획기적인 교통 시스템 개혁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도로 시스템과 신호 시스템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서도 이러한 개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일 뿐이고, 신호등이나 장애물, 도로 사정, 보행자 여부 등의 실제 교통 요소를 반영하지 않았으므로, 최대한 이상적인 조건 하에서 얻은 결과일 뿐이다. 또한 자기 조립이 가능할 정도로 자율주행 제어 수준이 높은 자율주행차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으며, 도로 상에 자율주행차가 1/3 이상이 될 시점도 아직은 좀 먼 미래의 일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자기 조립/자기 조직 현상을 이렇게 큰 스케일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의 수준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기초과학에서 얻는 지식과 노하우가 정말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큰 힌트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단적인 사례가 된다. 이제 파일럿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으니, 이러한 결과를 바탕 삼아, 전 세계 자율주행차 업체들은 상호 보완을 위해서라도 AV끼리의 근거리 상호작용 규약을 잘 설정하여, 트래픽 개선, 사고 위험도 저감, 온실가스 배출 저감 등의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업계 선두 주자가 이러한 규약을 먼저 제창하면 후발 주자들이 기술 표준화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이미 수십 억 년의 시간 동안 자연은 자기 조립과 자기 조직의 아름다움을 진화 과정을 통해 증명해 왔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패턴부터, 생명체를 이루는 단백질들의 자기 조립 패턴까지, 인간의 지혜는 자연에 대한 관찰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 조립과 자기 조직의 사례에서도 이렇게 또 하나의 지혜를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다. 30분 걸리는 출근길이 18분만 걸린다면, 12분 더 늦잠 잘 수 있다. 일주일에 4번 출퇴근하면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일주일에 3번 출퇴근하는 정도의 배출량으로 바뀔 수 있다. 10,000번 출퇴근하면서 40번의 사고 확률이 10,000번 출퇴근하면서 2번으로 낮아진다면 정말 안전해질 것이다. 물론 자동차 보험료도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정말 훌륭하고 근사한 일이다. 과학은 이렇게 우리 생활과 가까이 있다. 자연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삶을 더 좋은 삶으로 바꾸는 공학으로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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