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석준 Seok Joon Kwon Jan 24. 2021

극단주의자는 어떻게 리더십을 얻는가 2

이형열 선생님과의 대담


아래 극단주의의 출현 동역학과 그 위험성에 대해, 이형열 선생님께서 긴 코멘트를 주셔서 그에 대해 답글을 남기려다, 답글이 너무 길어져 이렇게 따로 글을 씁니다. 다시 한번 좋은 포인트 남겨 주신 이형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이선생님, 이렇게 좋은 의견 장문으로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돼먹지 못하다뇨. 전혀 아닙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1. 이분화하고 악마화를 주도하는 것은 언제나 파시스트에 가까운 세력이었지 그 반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민주적이거나 진보적인 성향에 가해지는 '빨갱이'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카시즘이라고 부르지만 그 뿌리는 장구합니다. 그러면 이런 상대를 이분화하고 악마 화하는 주체는 대부분 지배세력이었는데, 그들이 실패하지 않고 대체로 집권에 성공했던 이유가 뭘까요?

-> 원문은 당연히 그러한 파시스트가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다만, 이진화의 특성상, 내가 누군가를 악마화해버리면, 그쪽에서는 나를 악마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유념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문에서 링크한 글에서도, 도덕적, 상식적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근거에서 상대 정치인이나 조직을 악마로 낙인찍어 버리면, 사실 그 이면에 숨죽이고 있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진화시켜버린다는 단점이 생김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고요. 물론 파시스트들, 메카시즘, 빨갱이 낙인은 상식과 도덕 차원에서도 용납되기 어려운 역사의 과오라고 생각합니다.


2. 미국의 트럼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 진영은 공화당 내에서 세력을 잡을 때 상대방을 멍청이로 몰아붙이고, 자신의 반대편을 단순하게 적과 내통하는 세력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이런 게 하도 어처구니없으니 넋 놓고 있다가 그 선동과 대중조작에 공화당의 주류가 당했고, 거의 같은 방식으로 민주당도 당했습니다. 그 반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극단주의를 촉발한 것은 트럼프가 맞습니다. 말씀처럼, 공화당 내 경선부터 그랬고, 점차 눈덩이가 커지자, 그 눈덩이에 올라탄 기호지세를 취했던 것도 트럼프죠. 문제는 그 과정에서 민주장 지지자들이나 친 민주당 언론들이 공화당 자체를 트럼프로 격하시켜, 공화당 내의 건전한 (?) 세력들의 언로 자체를 막아버렸다는 점에 있습니다. 동시에 민주장 진영에게는 아주 편한 대결 구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라는 인식)을 준 셈이 되었죠.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고요. 민주당이 당했다고 보기에는, 민주당이 나이브하게 대응했었고, 극단주의의 한 축을 본의 아니게 담당했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죠.


 3. 히틀러의 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히틀러를 악마화한 게 아니라 히틀러 무리가 유태인이라는 적을 만들어놓고 그들을 악마화했으며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유태인의 조력자로 몰아붙이고 결국 순수 독일 민족의 적으로 몰아붙였죠. 반대로 그 대항세력은 그렇게까지 철저한 파시즘적 선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해서 거의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다가 권력에서 무자비하게 내쳐졌습니다. 파시스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동안 정치 프로세스에서 성문화 된 절차는 개정하고 성문화 되지 않은 부분은 가차 없이 무시하는 방법을 취했죠.

->히틀러 등장도 작은 극단주의 눈덩이가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조직 자체를 삼켜버린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말씀처럼 히틀러는 뚜렷한 증오의 대상을 미리 극단주의의 맹아로 심어 놨었는데, 그 과정에서 건전한 (?)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던 독일 국민들의 목소리는 노이즈가 되어 버렸죠. 작은 맹아일 때 쳐냈어야 했는데, 30년대 초중반의 독일은 1차 대전의 참화와 대공황에서 겨우 죽다 살아나던 시점이라, 히틀러 같은 극단주의자, 파시스트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over-represent 되어 버렸죠. 이런 사례는 시대적 맥락에서 극단주의자들이 기회를 탈 수 있는 부분이 상존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 초반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도, 어떤 형식이든 계기로든, 사회의 불안함이 배경이 되고, 그것을 먹고 자라는 파시스트 꿈나무들이 나올 수 있는데, 인간이 지혜롭다면 이러한 역사의 과오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어야겠죠. 그리고 극단주의의 출현은 자생하는 것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4. 더더구나 위에서 주장하신 게 옳다면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보다 이번 재선 과정에서 프라우드 보이즈와 같은 무장세력, 큐아논과 같이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민주당의 지도부를 소아성애에 빠진 악의 숭배자들이라고 하는 음모론자들이 판을 치고 악마화 이분화를 조장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선거에서 패배해야 했을까요? 제가 제대로 읽었다면, 트럼프가 등장한 것은 민주당 측에서 트럼프 진영을 너무 쉽게 이분법적으로 악마화하고 내편까지 그리 몰아줘서 표를 빼앗겼다고 분석하시는 것 같은데요.

->원문을 단편적으로만 보신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부분은 민주당이 잘못했다, 공화당이 이상했다가 아니라, 보다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어느 계기에서든, 어느 시점에서든, 극단주의가 지극이 일부의 의견이 아닌, 조직 전체의 의견으로 화 (자의든 타의든)하면, 그다음부터는 사람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당연히 극단주의의 촉발은 트럼프 및 트럼프 추종자들이 준동하고 디벨롭시킨 것이지만, 그것이 더 큰 눈덩이가 되게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을 먹잇감 삼은 반대 세력들의 동역학도 눈여겨보자는 것입니다. 고려시대 말기 불가사리 비유를 왜 들었을지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 현대 서구를 포함한 서위 서구 민주주의는 대개 여와 야의 대결과 협력 구조를 갖춘 정당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뭐 가장 전형적인 나라고요. 이런 정치 지형하 양쪽이 최소 30%~40% 정도의 확고한 지지자를 가지고 있고 선거는 대부분 중간의 스윙 보트를 움켜쥐는 쪽이 집권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 건전한 상식, 국가 안위, 국민 복지라는 정권과 상관없는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면야, 양당제야 말로 민주주의의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제도 중 하나죠. 어느 한쪽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견제하고, 어느 한쪽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그 점은 사실 한국에서도 이미 사실상 고착화된 지 한 세대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이렇게 안정된 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던 양당제도, 결국 극단주의라는 이진화 논리 혹은 동역학 앞에서 속수무책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사례에서 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비본질적인 요소에 매달리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웩 더 독이 성행하는 그 이면에는 복잡한 정보를 개별적으로 처리하기 귀찮아 (혹은 싫어)하고, 쉬운 논리와 쉬운 적대감에 매몰될 수 있는 대중들의 성향이 있는 한, 제 N의 트럼프는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스펙트럼을 무시한 채 델타 함수로 상대를 평가하는 경향이 지속되는 한 말이죠.


6. 트럼프가 집권에 성공한 것은 미국의 중간층의 여론이 트럼프가 취한 전략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나머지는 지엽말단에 흐르는 잔가지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럼 미국의 중간층이 왜 트럼프를 선택했을까요? 그건 트럼프에 대해 기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중간층이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트럼프 혹은 반 트럼프 극단주의로 화해 가는 과정에서 극단주의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것은 맹목적인 트럼피들 뿐만 아니라, 그 대결구도에서 이익을 보고자 했던 언론들, 이익단체들도 포함이 됩니다. 당파와 상관없이요. 극단주의의 어그로에 먹잇감을 본의 아니게 주게 된 셈이죠. 저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팩트에 기반한 개별 혁파와 의견 나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7. 트럼프는 어떤 상황에 있는 중간층에 어떤 기대를 주었을까요? 사실 미국의 중간층은 흔히 말하듯 러스트 벨트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제조업 종사자들이었는데 이분들 대부분 고졸 출신의 숙련 노동자들이고, 백인 비율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고졸 숙련 노동자들은 GM이나 미국의 제조업체가 경쟁력이 있을 때 시간당 20~30불씩 받고 엄청나게 좋은 회사의 복리후생(fringe benefit)을 받으면서 걱정 없이 살던 분들이죠. 그런데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해외에서 거의 무관세로 들어온 상품들과 경쟁하다 보니 공장은 점차 문을 닫고 중국이나 동아시아로 빠져나가면서 소위 공동화 현상이 생겼죠.

->네. 이미 2016년부터 그 현상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도 논문이 많이 나온 것을 기억합니다. 대부분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하고요. 다만 중간층이라는 대상 역시 스펙트럼은 광범위하고, 러스트 벨트뿐만 아니라, 각 마이너리티, 종교, 소득 수준, 지역 분포, 이민 세대 역사 같은 여러 요소들로 클러스터링이 쉽게 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중간층은 말 그대로 언제든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 metastable state입니다. 과냉각된 물속에 아주 작은 결정핵만 있어도 그 주변에서 thermodynamic free energy가 낮아져 순식간에 결정이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불안한 정치적 지형에서 아주 작은 극단주의의 맹아만 있어도, 순식간에 그쪽 혹은 그 반대쪽으로 중간층이 나뉘어 각자의 진영에서 결정이 순식간에 자라나는 것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8. 미국의 러스트 벨트나 소위 애팔래치안 힐리빌리 같은 사람들은 그래도 예전에 살만했었기 때문에 구태여 대도시로 나갈 이유도 없고, 고졸 학력으로는 대처로 나가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살던 지역에 눌러앉는 고착성이 강합니다. 그들에게는 거의 일자리가 없고, 대개 실업수당이나 갖가지 명목의 정부 보조등으로 힘들게 살아갑니다. 희망이 없죠. 더구나 고졸 숙련공으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재취업을 하려 해도 이미 컴퓨터에 능숙한 대졸자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좋은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이들에게는 만성 실업이 일상이다 보니 알코올과 오피오이드 중독의 약물 남용도 심각하고, 인심은 흉흉해져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공황에 가까운 광포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 네. 이 역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원문과 딱히 관련은 없는 디테일이지만, 그래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9. 트럼프는 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했습니다. 그게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이죠. 자신들이 차지해야 할 좋은 일자리를 해외에서 온 고학력 이민자들이 다 꿰차고 저임금은 멕시코나 기타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말도 안 되는 저임금으로 다 꿰차고 있으니 자신들의 일자리라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적 반이민 정책이 MAGA의 핵심입니다. 트럼프는 당장 멕시코와의 사이에 장벽을 설치하기 시작했죠. 그 비용은 멕시코가 낼 거라고 하면서요. 둘째로 중국에서 싼 물건을 생산해서 보내니 중국 때리기를 계속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별 실효성도 없지만 아무튼 무역 전쟁을 치르고 있죠. 이게 스윙보터들의 희망을 부채질한 거죠. 거기다가 기독교 근본주의, 에반젤리스들과 결합해 문화전쟁을 부추겼죠. 동성애 낙태 같은 늘 나오는 이슈들이 약하니까, 거기에 음모론적 소아성애 같은 것을 더해 반기독교적 악마로 만든 거죠. 마지막으로 폭력을 마구 부추겨 이들의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을 자극합니다. 흑인이나 유색인종은 그야말로 타자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욕하고 폭행하고 심지어 쏘아도 된다는 신호를 준겁니다. 그게 극단적으로 나타난 게 이번 의사당 난입이죠.

->원래 극단주의자들은 포퓰리스트이기도 합니다. 일단 (metastable 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씨를 심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리고 그 불씨는 합리적인 욕망이 아닌, 누군가에 대한 증오나 혐오, 차별의 정서와 뒤집어 버리고 싶다는 욕망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죠. 워낙 엔터테이너이자 사업가로서의 경험이 풍부했던 트럼프는 그 점을 십분 잘 활용한 셈이고요. 필요하다면 자극적인 수사, 폭력적 언동, 페이크 뉴스와 비합리적인 트윗 등을 동원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이 굉장히 잘 먹혔죠. 트럼프가 이미 이러한 성공 (?) 모델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제 N의 트럼프를 꿈꾸는 주니어 트럼피들은 언제든 그 맹아를 틔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주의 깊게 이 현상을 보자는 것이고, 극단주의의 시작 단계부터 모니터링을 더 주의 깊게, 그리고 힘들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고요.


10.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것은 그가 약속한 내용들 대부분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 사기에 불과하다는 것. 부패 무능하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그 피해를 당하면서 깨우친 거죠. 결국 트럼프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인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네. 저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긴 했지만, 아슬아슬한 구도가 계속 연출된 것 자체가, 제 N의 트럼프 출현 가능성을 보여준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정말 먹히는구나, 극단주의자들이 조금만 더 스마트해지고 조금만 더 컴퓨터와 데이터를 다룰 줄 알게 되면 실로 극단주의의 동역학 특성상, 그리고 민주주의의 한계 상, 언제든 제 N의 트럼프가 나올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4년 간의 난장판 이벤트를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1. 권 선생님의 위의 글을 읽으면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은 휘발해 버리고 극히 단편적인 부분을 따다가 미리 만들어놓은 도식에 꿰어 맞춘 것은 아닌가, 그래서 결국 사회 역사적 본질은 짜장면, 짬뽕으로, 부먹, 찍먹으로 단순화되고 현실에 가로놓여있는 갈등의 본질과 역관계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 그리고 그 결론도 엉뚱하게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로 가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듭니다.

-> 걱정해 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제가 이 분야 전공자도 아니고, 역사나 정치를 잘 아는 아마추어도 아니므로, 지적하신 부분은 겸허히 수용합니다. 다만, 저는 트럼프 현상에 대한 분석을 나누기보다는, 보다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극단주의자들의 출현이 얼마나 쉽게 빈발할 수 있으며,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것을 막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 깜냥 꺼, 쉽게 이야기해보겠다고 중식의 유비를 사용했는데, 그 부분이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생각하신다면 다소 유감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차이니,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한 이선생님의 생각과 의견도 존중합니다.


다시 한번 시간 내주셔서 이렇게 좋은 생각의 포인트들을 공유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저야 늘 이 선생님 같은 토론 발제를 환영하니, 앞으로도 즐겨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극단주의자는 어떻게 리더십을 얻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