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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7. 2021

선행 주자의 엣지, 후행 주자의 부담

반도체 업계의 기술-양산-수익 사이클에서 선수를 잡아야 하는 이유

반도체 업계에서 선행 주자들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후발 주자들은 고비용을 지출할 수 밖에 없다. 왜 그럴까? 


1. 초기 개척자로서의 비용 절감 프리미엄:

단순히 산술적 계산만 해 보죠. 반도체 파운드리 업계에서는 한 term을 비용의 반감기로 볼 수 있다. 즉, 초기에 100불 비용이 생겼다면 충분히 시간이 흐르면 공정 변수들의 불확실성이 많이 감소하고, 재고 관리가 되기 시작하여 50불 미만으로 비용을 통제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후발 주자들은 한 term이 지난 후에 똑같은 공정을 답습하려면 그 비용은 초기 개척자들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200불, 300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후발 주자들이 들어 오는 시점쯤 되면 후발 주자들은 선행 주자에 비해 2*2 =4 or 2*3 =6 배의 비용을 지출하며 시장에 뛰어드는 셈이 된다. 또한 초기 개척자들이 후발주자들에 비해 비용 투입이 많은 것처럼 보여도 결국 상대적으로 적게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이 몇 개 있다. 예를 들어 선행 주자들은 신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아무도 사용해 보지 않은 장비를 사용하는 모험을 걸어야 하는데, 당연히 장비 회사나 소재 회사들 입장에서도 불확실성이 있으니 엄청나게 디스카운트해 주는 이득을 볼 수 있다. 테스트가 실패로 돌아가면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그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반면, 오히려 대성공으로 이어지면 그 이득은 비선형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동시에 장비나 소재 업체들 역시 자사의 제품 가치가 덩달아 올라가니 디스카운트를 해 서라도 신기술 개발 및 양산을 시도하는 회사에 대해 충분히 투자할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2. 초기 개척자로서의 개발 엔지니어들 프리미엄

일단 초기 개척자들은 말 그대로 초기 개척을 하므로 그 분야의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들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다. 이로 인한 시간과 비용 절감 효과가 나중에 후발주자들에 비하면 굉장히 크다. 또한 초기 개발 엔지니어들 역시 시장에 없는 기술을 만드므로 몸값이 다소 디스카운트된 상황이다. 이 기술이 개발 성공되고 양산되기 시작하면, 이제 장비, 소재, 인력의 몸값은 뛰기 시작한다. 특히 공정 엔지니어들의 경우 몸값이 두 배 세 배로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중국이 여전히 한국이나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인력들을 연봉의 세 배 보장이라느니 5배 보장이라느니 하는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데에는 이런 연유가 있다.


3. 초기 개척자들이 쌓는 기술 장벽

몇몇 분들이 말씀해 주셨지만, 초기 개척자들은 가능한 기술 스펙을 애매하게 공개한다. 기술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해소시켜줄 정도까지만 최소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제품이 공개되면 경쟁사들은 그 즉시 그 소자의 리버스엔지니어링을 시작한다. 잘라서 단면을 보고 어떤 저유전율, 고유전율 재료가 들어 갔는지 샅샅이 검사하고 분석한다. 노드 간격은 얼마인지, 배선층에는 어떤 재료를 썼는지, 집적 밀도는 실제로 얼마인지, 소모 전력은 얼마인지 아주 샅샅이 검사한다. 문제는 그렇게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하려고 해도 이제는 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10 나노 이하 공정은 장비 최적화와 맞춤형 소재가 필요한데, 그 맞춤형 소재는 공정 개발 회사가 소재 회사와 몇 년 전부터 독점으로 기술 계약을 하고 설계부터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소재 회사는 상당 기간 다른 회사에게 그 소재를 공급할 수가 없게 된다. 만약 다른 회사에 공급하게 되면 결국 업계에서 신뢰 자산이 깎이게 되고 심하면 퇴출될 수도 있다. 


4. 정보의 비대칭성

대부분의 회사는 정말 중요한 기술이라면 아예 외부로 문서 형태로 공개하지 않는다. 학회 발표도 안 하고, 논문도 안 내고, 특허도 내지 않는다. 내는 순간부터 모조리 노출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들은 이러한 기술을 얻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얻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다 부숴 놓은 레고 조각을 가지고 완성품의 사진만 가진 채로 완성품을 그대로 완벽하게 똑같이 작동하게 조립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원래 설계도를 가지고 조립했던 사람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설사 선행 주자들이 기술 정보가 공개된 문서를 어떤 식으로든 공개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것 역시 어마어마한 로얄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장벽이 생기기 때문에, 비용의 증가는 피할 수 없다. 선행 특허를 피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공정 조건이나 아키텍쳐, 소재 조합을 개발해야 하는데, 사실 그 정도 수준쯤 되면 굳이 같은 사이클의 같은 세대 기술을 개발할 필요성에 대해 의문이 생기게 된다. 오히려 선행 주자들의 기술이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배경 화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5. 사이클 탄력성에 대한 대처 부족

이것은 사실 비용이라기 보다는 수익 문제이긴 한데, 어쨌든 돈의 문제니까 짚고 넘어가 보자. 선행 주자들은 현 세대 기술을 양산하는 시점에 대해 사이클 탄력성 면에서 선수를 쥐고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즉, 현재 양산되고 있는 기술은 사이클의 영향을 받지만 (즉, 글로벌 수요-공급의 네트워크에 이미 편입된 상태), 아직 개발 중이거나 양산 직전의 기술은 아직 글로벌 수요-공급의 네트워크에 편입이 되지 않은 상태다. 물론 회사 주가에는 선반영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양산된 다음부터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행 주자들은 사이클을 관측하며 양산 시점을 자유로 결정할 수 있다. 물론 후발 주자들이 계속 쫒아 오기 때문에 아예 손놓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선수를 쥐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현 세대 양산 기술 기반 제품의 사이클이 하강하는 동시에, 차세대 기술 기반 제품의 양산 필요성이 증가하는 사이클의 신호가 뜨면 그 때 시장에 양산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초기 시장 형성에 따른 지배력 확보는 물론, 수익을 알아서 조절할 수 있는 포지션이 된다. 그런데 후발 주자들은 선행 주자들이 다 누리고 거의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시점에 한 term 차이로 들어가게 되면 이제는 그런 프리미엄은 커녕, 후수를 두게 되므로, 수익에 대해 선행 주자만큼의 기대를 할 수 없게 된다. 미리 짜놓은 판 위에서 적당한 수익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5-10배의 비용을 투입해서라도 얻어야 하는 수익이 되는지는 불확실해지는 셈이다. 계속 사이클이 상승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언제 어떻게 또 사이클이 하강할지 모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5-10배의 양산 비용 투입은 그대로 매몰 비용, 더 심각하게는 만성 적자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6. 선행 주자의 브랜드 가치 우선권

삼성이 90년대 중반부터 일본 메모리반도체 업체들과 경쟁하면서 선행기술 개발-현 세대 기술 양산 소식을 적절한 시차를 두고 계속 업데이트하는 전략을 취했는데, 그 과정에서 삼성의 시장점유율이 상승했다는 가시적 성과와 동시에, 삼성의 브랜드 가치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아시아의 전자회사에서 글로벌 반도체 회사로 탈바꿈한 모멘텀이 생긴 셈이다. 이럴 경우,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프리미엄을 얻게 됩니다. 장비, 소재, 공정 업체들에 대해 이른바 갑이 될 수 있는 포지션이 되는 것이다. 비용 디스카운트 협상에서 유리해지며, 인력 파견이나 기술 교환 등에 있어서도 훨씬 유리해진다. 특히, 표준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사가 설계한 공정 변수 하나하나가 업계의 표준이 될 수 있고, 이 경우 자사를 중심으로 한 업계 생태계가 형성되므로 보이지 않는 이득이 누적된다. 후발 주자들은 이 생태계에 아예 편입이 되면 모를까, 결국 따로 놀게 될 수 밖에 없는데, 모든 면에서 불리한 포지션이 된다. 비용 협상도 불리하고, 인력 관리도 불리하고, 하다 못 해 소재 회사로부터 소재 공급받는 것에도 우선권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업계의 시황은 변화무쌍한데, 이러한 시간 딜레이, 우선권 확보 실패는 그대로 비용 증가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한 달, 한 분기 이렇게 누적되기 시작하다 보면, 결국 따라잡을 수 없는 비용 수준까지 오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결국 이러한 요인들과 대동소이하다. 역으로 이야기해 보면, 언젠가 중국 업체들이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이른바 존버한 끝에 선수를 잡게 되는 순간, 모든 상황이 역전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되는 부분이다. 특히 중국은 평범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일당독재 체제 하에서 자본의 집중을 속전속결로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한 번 선수를 쥐게 되면 지금의 T나 S는 우스워보일 정도의 갑 포지셔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예 미국 중심의 밸류체인을 뗴어 놓고 자국 주도의 밸류체인을 새로 만들게 되는, 이른바 반도체 일대일로를 획책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런 부분을 우리가 조금 더 주의 깊게 봐야 하고, 기술의 주도권 싸움이 양산의 주도권 싸움, 수익률의 주도권 싸움으로 실질적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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