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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7. 2021

조직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하는 이유

에러 수정 기능은 에러를 감내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만 구현된다

어떤 조직에든 쓴 소리하는 사람들, 그리고 회의주의자들은 꼭 필요하다. 왜 그럴까?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잘 짜여 있고, 놀랍도록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을 정도로 손발이 착착 맞으며, 서로 간에 늘 온오프 모임 등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어떤 조직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겉으로 보기에는 이 조직은 매우 건실하고, 앞으로도 happily ever after 오래 잘 지속될 것처럼 보일 것이다. 대개, 그런 조직들은 서로서로 챙긴다는 명목 하에, 서로를 계속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감히 조직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반동 분자가 있으면 기꺼이 색출하고, 심지어 인민재판을 하거나 도편추방까지도 하는 등의 치밀한 절차를 거쳐 조직의 '단기적' 안정성을 유지하려 노력한. 그 과정에서 조직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특정 구성원에 대한 조리돌림은 예사며 실명 저격도 불사한다.

 

대개 그런 조직들은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네트워크의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허브 주변에 충성스런 조직원들 몇몇이 허브를 보좌하고, 알아서 정보를 필터링한다. 동시에 조직 내 '불순한 세력'의 준동을 사전에 탐지하는 역할도 겸한다. 조직의 허브는 대개 조직의 창립자 혹은 오른팔 격의 개국공신이다. 허브는 조직원들에게 끊임 없이 조직의 철학을 되뇌이게 하고, 필요하면 당근과 채찍을 적확하게 활용하여 조직의 충성심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런 조직은 네트워크 과학 관점에서 보면, 매우 촘촘한 그물망이다. 따라서 조직의 허브 혹은 허브 주변의 구성원들이 조직의 구석구석까지 정보를 유통시키고, 충성심을 관리하기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조직의 말단에 어떤 이가 돌발 행동을 하면 즉각 그를 제거하거나 배신을 못 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한 조직의 외부에서 조직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면, 그 지점에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디펜스를 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런 조직은 불침항모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런 류의 조직에는 정보의 양방향 유통 과정에서 가끔씩 딴지를 걸거나 유통을 밍기적거리거나 의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양방향은 언감생심이고, 일방통행 식의 의사소통이 대부분인 이러한 조직에서 정보의 흐름은 곧 허브의 의지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조직 관계망의 느슨한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것이다. 이런 조직에는 정보의 유통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구성원이 있다면 결국 제거된다. 즉, 정보의 유통과 허브의 영향력 보존을 위해 조직을 지나치게 허브 중심으로 끈끈하게 구조화하다 보니, 정보의 유통과 허브의 영향력 보존에 방해가 되는 노드 (node)들은 하나 둘씩 제거되었거나, 남아 있어도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진짜 문제는 조직이 잘 나가고 허브의 영향력이 도전을 받지 않는 경우에는 표면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언제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허브가 가지고 있던 강력한 영향력의 근거가 되었던 부분에 하나 둘씩 공격이 누적되기 시작할 때다. 정보의 유통이 워낙 끈끈하기 때문에, 한 번 조직 내로 들어 온 공격 소재는 이른바 임계점 (critical point)을 넘으면 조직 전체를 휩쓸게 된다. 마치, 중간 중간 이가 빠진 도미노는 몇 부분이 쓰러져도 전체 도미노가 쓰러지는 일은 없지만, 완벽하게 짜여진 도미노는 도미노 한 개의 쓰러짐만으로 전체 도미노가 쓰러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빽빽한 삼림이 작은 실화로 시작된 산불로 순식간에 소실되는 것도 역시 임계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허브의 영향력과 조직의 끈끈함을 위해 그토록 단련하고 재정비했던 그 시스템이, 오히려 역으로 위기 상황에서는 조직을 무너뜨리는 제일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직들은 조직 내로 유입된 부정적 의견이나 공격 아이템이 몇 번 시도된다고 해도, 쉽게 임계점으로 변질되지 않는다. 아니, 변질되도록 좌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사실 그랬다면 진작에 크고 아름다운 조직으로 성장하지도 못 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조직의 안정과 허브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외부에서 혹은 내부에서 가해지는 공격에 대한 철저한 보복, 그리고 동시에 조직의 단속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그럭저럭 계속 유지될 수 있다. 필요하면 조직 내외부를 겁박하고 고소한다고 위협하고, 심지어는 공격한 대상자에게 혐오와 저주 발언, 그리고 극단적 선택 유도 발언 등을 일삼으며 흑백논리리에 입각하여 피아 식별을 한다. 기실 조직의 안정성이란 적이 명확해질수록 더 단단해진다는 습성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리 튼튼한 성이라고 해도, 모든 방향에서 들어 오는 공격과 비판 포인트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통계물리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질서도 파라미터 (order parameter)가 임계점에 가까워질수록, 이미 그것은 자연에 각인되어 있는 운명과도 같은 법칙을 따라간다. 이른바 스케일 프리 (scale-free)한 '멱함수' 법칙 (power-law)을 따라 확 상전이 (phase transition)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조직 구성원은 갑자기 불경스럽게도 조직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서로 아닐 것이라 애써 무시하지만, 주변의 구성원들이 패닉에 빠진 모습이 크게 다가오는데, 이 패닉이라는 것이 한 번 전염되면 조직의 허브까지 아우토반을 달리는 페라리처럼 달려 나간다. 허브는 이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 그것은 영화 '몰락 (Der Untergang)'에 그려진 히틀러가 취한 방법으로 대변된다. 자신과 최측근만 갈 수 있는 아지트에 모여 들고 대책 회의를 매일 같이 할 것이다. 괴링 같은 이를 통해 계속 선전물을 만들고, 조직의 기강을 다잡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뾰족한 수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적들은 이미 아지트 바로 바깥까지 와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상전이 임계점을 넘어 간 상황이 되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경제학에 대해서는 일반 교양 수준 이상으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97년 IMF와 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에는 금융 기관들이 비정상적으로 끈끈한 상호의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은행들, 그리고 그 은행이 대출해준 기업들이 서로 너무나도 긴밀하게 의존적인 관계의 금융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던 상황이다 보니, 결국 한 은행이 망하거나 한 재벌기업이 망하는 것으로 끝나야 할 사태가 산불이 순식간에 번지듯, 산업계 전체로 혹은 금융계 전체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 건실한 기업과 기관들마처 자금난에 시달려 속절 없이 쓰러졌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당국이 제대로 브레이크를 걸기도 전에 패닉으로 치닫게 되었다. 네트워크는 노드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 노드 간의 정보가 흐르는지만 알면, 그것이 금융기관 네트워크든, 사이비 집단의 네트워크든 수학적으로는 그 특성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규모의 문제일 뿐이지, 이러한 네트워크 파국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고, 그 확률은 네트워크의 연결 긴밀도가 높을수록 높아진다.

역설적이게도 견실한 조직일수록 느슨함이나 구멍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단순히 느슨한 정도 뿐만 아니라, 정보 유통을 가끔은 방해하거나, 반기를 들고, 코멘트를 일삼는 회의론자들을 노드의 일부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도 이에 해당한다. 허브의 영향력은 이들로 인해 톱니바퀴 같은 조직에 비해, 조직 전체 구석구석 쉽게 스며들기 어렵겠지만, 이들은 반대로 조직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장치가 된다. 외력에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부분을 오히려 그것에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에러'들을 네트워크의 노드로 인정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어려울까? 사실은 매우 간단하다. 구성원들의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면 된다. 허브의 영향력에 딴지를 거는 것을 권위주의로 찍어 누르지 않으면 된다. 불만론자들을 조리돌림하지 않으면 된다. 거짓 정보의 유통을 처음부터 안 하면 된다. 외부의 공격에 대해 정당한 공격이면 조직의 생리를 개선하는 용도로 전환하여 활용하면 된다. 비판의 목소리를 모두가 듣게 하면 된다. 조직을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소명 기회를 주고 자유롭게 나가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처음부터 조직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합리적인 허브가 될 정도의 네트워크였다면, 그 조직은 애초 이런 걱정조차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조직과 그 조직의 허브가 내부의 모순을 덮으려, 외력을 핑계 삼아, 스스로 임계점을 향하여 달려가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그리고 임계점 근처에서는 '멱법칙'에 따라 더 이상 조직 구성원들이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때부터는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인류의 역사에 사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으니, 여기서 더 자세하게 첨언할 필요는 없다. 혹시라도 그 조직에서 나오는 것에 겁을 먹고 있거나 주저하는 분들이 있다면, 걱정 마시고 조직과 개인을 분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개인보다 소중한 조직이란 없으며, 조직보다 소중한 허브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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