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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7. 2021

반도체 전쟁의 의미

동북아 반도체 공급망은 제 2의 중동이 될 것인가?

반도체 업계에서 최선두 업체가 선행 기술에 10억 달러를 쓴다면, 다음 사이클에서 후발 업체가 그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5-10배를 쓴다는, 즉, 대략 50-100억 달러 쓴다는 이야기가 있다. 


TSMC는 지난 4월, 향후 3년 동안 반도체 칩 생산과 연구 개발에 무려 1,000억 달러, 즉 120조 정도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T사는 이미 작년에 전체 매출의 8%를 넘는 37억 달러를 R&D에 투자했다. 대부분 3 nm 이하급의 선행 기술 개발에 대한 것이다. 2018년부터 따진다면, T사는 3 nm 이하급 초미세 패터닝 공정 기술 및 양산 기술 개발에 누적으로 따져 150억 달러 이상을 R&D 비용으로 지출했다.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은 각 고객사의 스펙에 맞춤형으로 공정을 최적화하기 위한 비용인데, 대략 10-15%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에서는 인텔과 글로벌 파운드리 정도가 T사를 어쨌든 간에 쫒아갈 수 있는 업체로 평가되지만, 5 나노 이하 레벨에 대해, 적어도 한 세대 이상 뒤진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 두 회사가 투자해야 하는 돈은 앞으로 적어도 3년 간 750-1,500억 달러, 그리고 T사 전체의 연구개발비를 따진다면 무려 1조 달러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아무리 천조국이라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자본 집약적인 투자를 감당할 재간은 없을 것이라 본다. 참고로 인텔이 한 해 투자하는 R&D 가 대략 120-130억 달러 정도다. 3년간 150억 달러를 선행 공정 개발 및 양산 기술 개발에만 집중 투자해도 500억 달러가 안 된다.


문제는 중국의 판단 미스가 될 텐데, SMIC가 아무리 투자를 집중으로 받아 와도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지점이 생기고, 이는 10년 간 1,500억 달러가 아니라, 1조 5천억 달러를 들고 와도 메꿀 수 없는 간극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CP의 14차, 나아가 15차 경제계획의 가장 큰 밑그림은 자국의 무역 적자의 가장 큰 portion을 차지하는 반도체 자급률 제고이고, 고부가가치 반도세 시장 점유율 확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 정도 각오라면 나라의 자원을 샅샅이 긁어 모아 1,500억 달러 정도는 10년 간 집중 투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중국은 대만과 달리 산업의 각 분야가 고르게 발전하지 못 하면 달리지 못 하는 자전거가 넘어지듯, 나라가 휘청일 수 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거액의 투자를 반도체에 올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 정도 비용이라면 어차피 감당도 안 되고 실행도 안 되고 투자해도 밑바닥에 물붓기가 될텐데, 이럴 바에 차라리 전쟁 비용이 더 싸게 먹히는 것 아닌가?"


이런 판단 미스는 실제로 미국이 상정하고 있는 가능성 높은 워게임 시나리오 중 하나이고, 실제로 중국이 마음 먹고 온갖 출혈을 감수하고 대만에 상륙한다면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거느리게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이후의 세계가 되겠지만.


현재 미국은 T에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 생태계, 특히 밸류 체인의 다변화를 획책하고 있다. 대만을 여전히 자신들이 주도하는 반도체 VC 의 주요 노드로서 영향권 아래에 두되, 지나친 의존도를 분산하려는 헷징 전략을 동시에 세우고 있다. 언제든지 미국의 본토에서 파운드리가 되살아 나게끔 투자 계획을 차곡차곡 실현하고 있고, 바이든 정부는 어떻게든 인텔이 무너지는 것은 그냥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설사 중국의 판단 미스로 동북아 반도체 공급망의 절반 이상이 통제 불능의 사태를 맞게 되어 전세계적인 반도체 대란, 그리고 그 이후의 경제 대란이 찾아 오더라도 미국이 생각하는 탄력 주기는 5년 이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우리나라 업체들은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상정하고 있을 것이고, 공급망의 다변화를 동시에 계획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상황이 도둑같이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고 전조 징후가 계속 누적될 것인데, 그런 상황이 가시화된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는 기술 경쟁과 동시에 기술의 하이어라키를 되돌아 봐야 한다. 빈 곳을 찾아서 메꿀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10 나노 이하를 외칠 때 오히려 14나노 28나노의 빈틈을 메꿀 수 있어야 하고, 모두가 로직 반도체 선행 기술을 외치고 있을 때, 슬그머니 전장용 반도체 시장의 쉐어를 조금씩 가져가야 한다. 낸드 플래시 단수 쌓기 경쟁을 펼치는 동시에, 디램의 대역폭 기술의 선수를 쳐야 하고, 부지런히 소재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


많은 위험 회피 전략이 지금도 논의되고 집약되고 있겠지만, 국제 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라, 결국 끊임 없이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근 미래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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