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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9. 2021

과학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1부)

과학의 개념과 이론은 어떻게 경계를 넘어 확대 재생산되어야 하는가?

황금비 (the golden ratio)는 해바라기, 선인장, 앵무조개, 심지어 은하계의 구조 같은 자연의 여러 대상에 걸쳐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 같이 보이는 일종의 수학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해바라기 씨앗이 나선형으로 배치된 패턴에 숨겨진 피보나치 수열 (Fibonacci sequence)은 황금비와 관련이 있으며 (예를 들어 피보나치 수열에서 인접한 두 수의 비율은 황금비인 1.618로 수렴한다.), 앵무조개의 껍질이 나선형으로 돌돌 말려 있는 구조의 닮음비도 황금비와 연결된 경우가 있다. 은하계의 나선형 팔 구조에도 이 황금비가 숨겨져 있으며, 덩굴 식물이 지지대를 감아 올라가며 형성하는 나뭇잎의 크기와 배치 패턴에도 황금비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다.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에도 황금비가 숨겨져 있다는 주장이 있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직사각형의 가로-세로 비율도 황금비에 가깝다고 한다. 어떤 성형외과 의사는 얼굴의 가로-세로 비율이 황금비가 될 때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집트 기자에 위치한 피라미드의 밑변과 높이의 비율은 황금비에 가깝고,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측량은 물론 수학과 수비학에 정통한 증거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기하학의 아버지인 유클리드 (에우클리데스) 역시 이 황금비에 대한 연구를 일찍부터 시작했다. 당시에 유클리드는 그 비율을 황금비라고 부르지는 않았으나, 한 선분을 서로 다른 길이의 두 선분으로 나눌 때, 전체 선분과 나눈 선분 중 긴 선분의 길이의 비와 긴 선분과 짧은 선분의 길이의 비가 같도록 나누는 문제로부터, 두 선분의 비율이 1.61803… 라는 무리수임을 발견했다. 당연히 이 무리수는 우리가 황금비라고 부르는 값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쯤 되면 소름 돋지 않는가?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황금비는 분야와 대상 가리지 않고 매우 신비하고 오묘한 우주와 자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인정한다면, 약간 오버해서, 모든 건축물도 황금비로 지어야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고, 근로자가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의 비율도 황금비가 되어야 가장 효과적인 업무 능력이 나올 것 같으며, 남녀 간 연애 과정에서의 이른바 밀당 비율도 황금비를 따라야 완벽한 연애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더 오버하면 어떨까? 헤어스타일을 위해 가르마를 탈 때 1:1로 타는 것이 아니라 황금 비율인 1:1.618으로 타면 어떨까? 보기에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재테크를 위해 투자도 안정형과 공격형을 황금비로 하여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어떨까? 독서도 어떤 만물박사님의 주장처럼 전문서와 교양서를 황금비에 맞춰서 읽으면 어떨까? 황금비가 정말 우주의 신비를 관통하는 비율이라면,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 왜 이상해 보이겠는가? 자연이 가장 좋아하는 비율이니, 그 비율에 맞춰 모든 것을 설계하고 이행하겠다는데 말이다. 자연이 좋아하는 비율이라면 인간도 좋아해야 한다고 누군가 갑자기 주장하면 말문이 막힐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자연이나 인공물에서 관찰된다는 황금비라는 개념은 다소 정성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선인장의 가시 배치의 기하학적 형태는 황금비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대칭적 구조가 더 많다), 소라나 고둥의 나선형 껍질의 구조 배치도 면밀히 분석해 보면 황금비와 정확히 맞지 않는 종이 더 많다. 오히려 그 비율을 따르는 종을 찾기가 훨씬 더 어렵다. 은하계의 나선 구조는 은하마다 제각각이라 실제로 어떤 은하는 황금비에 가까운 나선형 팔의 비율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은하가 더 많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세로-가로 비율은 한 때 세간에선 황금비를 따른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근대 들어와 복원을 해 본 결과 그 비율은 황금비와는 꽤 많이 차이 나는 4:9, 즉, 2.25에 가까웠다.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 중, 밑변과 높이의 비율이 황금비에 가까운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밖에 없으며 그나마도 그 비율은 약 1.570으로서, 실제 황금비 1.618과는 꽤 차이가 난다. 당연히 대피라미드가 아닌 피라미드들은 이러한 비율을 만족하는 케이스는 전무하다. 


미국의 유명 천체물리학자 마리오 리비오 (Mario Livio) 교수가 쓴 책 ‘The Golden Ratio: The Story of Phi, the World’s Most Astonishing Number’에서는 이런 심리학 실험 결과를 언급한다. 황금비가 정말 우주적으로 자연스러운 비율이라면, 사람들이 정의하는 황금비도 거의 하나로 수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966년, 미국 럿거스 대학 (Rutgers University)의 쉬프만 (H.R. Schiffman) 교수 연구팀이 행한 인지 실험에서 참가자들이 가장 안정적으로 황금비에 가깝다고 보고한 직사각형 세로-가로의 비율은 1.5부터 1.9까지 넓은 분포를 나타냈다. 그리고 그나마도 그 평균값은 황금비가 아니라 1.9에 가까웠다. 언뜻 봤을 때, 1.9와 1.618은 별로 차이나 보이지 않지만, 무려 17%나 차이 나는 값들이다. 즉, 결코 황금비에 가까운 값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TV의 화면 비율은 4:3, 16:9, 21:9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들의 비율은 각각 1.333, 1.778, 2.333으로서, 황금비인 1.618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렇다면 TV의 화면 비율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으니 사람들이 느끼기에 부자연스러운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애초 TV란 이미지를 2차원 상에서 보여 주기 위한 신호 전송 및 표시 장치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가장 접근이 쉽고 표준화가 확실하며 성능이 최적화되도록 설계된 인공적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인공적 시스템이 굳이 자연의 일부 현상에서 발견되는 비율을 따를 필요도 없고, 그럴 동기도 없다.


이렇게 반례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황금비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근본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비율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를 틈타 많은 상품들이 황금비를 따른다고 여전히 대중에게 과장 혹은 허위 광고로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맹신론자들이나 호사가들은 황금비를 앞서 언급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여 사람들을 호도하고 잘못된 정보를 계속 전달하고 있다. 애초에 미학적 감각이나 인상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평균 감각-인상이라는 것도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것인데, 그것이 황금비로 대표되는 것인 양 포장하는 것은 근본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글은 황금비에 대해 비평하고자 하는 글은 아니다. 대신 마치 황금비에 대한 오해가 증폭되어 황금비와 큰 상관이 없는 분야에까지 그것이 무리하게 적용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안 좋은 사례들을 집약이라도 해 놓은 것 같은 경향에 대한 비평이다. 이 비평을 통해 과학 안에서, 그리고 과학 밖에서 허용되는 이론과 개념의 넘나듦은 어떤 것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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