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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9. 2021

과학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2부)

과학에서 허용되는 분야 간 넘나듦이란 무엇인가?

이제 본격적으로 과학의 이론과 원리, 그리고 그것이 적용될 수 있는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수학에도 증명이 불가능한 공리가 있듯, 물리학에도 이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제1 원리 (the first principle)’들이 있다. 모든 자연계의 물질과 에너지는 네 가지 기본 힘인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통해 상호 작용한다는 것, 계 (시스템)에는 보존량이 있으며 보존량에 대응하는 대칭성이 있다는 것 (뇌터정리), 그리고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것 등이다. 중력 법칙에 의해 우리는 포탄의 궤적과 행성의 운동을 같은 수학적 맥락에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력이 애초에 왜 생겨났는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중력은 실험적으로 관측되고 있고, 측정 가능하며, 수학적으로 표현이 가능하고,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중력이 작용하는 시스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으므로 법칙으로 믿어진다. 물리학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수학적 공리 같은 ‘제1 원리’들이 촘촘하게 엮인 토대 위에 건설되어, 자연에서 발견되는 모든 현상을 아우르고 설명하며 예측할 수 있는 보편적 지식 체계를 추구한다. 즉, 물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원자 이하의 미시 세계부터 우주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거시 세계까지, 스케일을 가리지 않고 적용될 수 있는 일종의 단일 원리, 통일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물리학자들의 꿈이기도 하며 이 꿈은 만물의 이론 혹은 대통일 이론 (Theory of Everything)이라고도 불린다.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고 있는 물리학 지식 체계의 최전선은 이미 30년 전에 거의 그 형태가 완성된 표준 모형 (Standard model)이며, 그를 이루는 핵심 입자 중 하나인 힉스 보존 (Higgs boson)은 반세기 넘게 이론적으로만 예측되어 오다가 마침내 지난 2014년, 유럽에 위치한 LHC에서 그 존재가 실험적으로 확증되었다. 하지만, 표준 모형 조차 여전히 궁극적인 대통일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중력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네 가지 힘이 결국 어느 스케일에서는 통일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으며,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전 우주를 천체망원경으로 훑기도 하고 양자 스케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LHC 같은 초대형 입자가속기로 살펴보기도 한다.


물리학은 학문의 특성상 보편적인 원리와 개념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개념들과 원리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이들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물리학 연구에서 얻은 보편 지식과 도구들은 세부 (하위) 분야로 확산되어 현상 과학 (phenomenological science)을 설명하는 원리가 된다. 하류로 갈수록 원리는 세분화되고, 각 원리는 영역을 넘나들며 화학, 생물, 지질학, 천문학, 심지어 사회학이나 경제학으로까지 스며들어, 어떤 원리는 그 분야의 핵심 원리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론은 제한적으로만 활용되기도 하며, 어떤 개념은 아예 배격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며드는 원리든, 배격당하는 원리든, 물리학적 원류로 돌아오면 여전히 상류에서는 실험적 증거와 수학적 논리가 탄탄한 기본 원리로 회귀한다. 물리학이 원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자신의 기본 원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 도메인과 잘 융합되기 위해서는 그 도메인이 다루는 디테일과도 맞물리는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같은 과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물리학이 다른 영역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알아보자. 이를 위해 물리학의 원리들이 어떻게 생물학의 근본 개념인 생명의 출현에 대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생물학은 기본적으로 물리학의 ‘제1 원리’에 대응하는 공리 격인 기본 원리가 없다. 이른바 '센트럴 도그마 (Central dogma)'라 불리는 유전 정보의 전사 및 번역도 주류 이론 그 이상은 아니다. 가장 공리에 가까운 생물학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진화 이론일 것이다. 물론 진화 이론은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에너지 보존법칙 같은 법칙은 아니다. 다윈 이후 진화 이론, 특히 진화 생물학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윈이 제창한 원래의 진화 이론, 예를 들어 적자생존 모형 등은 이제는 대부분 그 개념이 폐기되었으며, 생명체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정량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종과 종, 집단과 집단, 종 혹은 집단과 환경 간의 상호 작용을 유전체 수준에서 이해해야 한다. 당연히 상호 작용은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의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하므로 정교한 수학적 도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통계물리학은 기본이고, 핵물리학에서 영감을 얻은 랜덤 행렬 이론 (random matrix theory) 같은 물리학 개념이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물 물리 (biophysics)는 물리학 관점에서 생명 현상과 진화 이론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분 분야다. DNA의 정보를 RNA로 전사 (transcription)하고 RNA를 다시 단백질로 번역 (translation)하는, 생물학의 핵심 도그마 (central dogma)라고도 불리는, 유전 정보 전사 과정은 사실, DNA 분자를 이루고 있는 핵산 (nucleotide)의 화학 결합을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화학 결합은 분자들의 충돌과 결합, 진동과 분리되는 열역학적, 동역학적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므로, 이는 물리학의 여러 분야 중, 특히 응집물질물리학 (condensed matter physics)과 양자역학 (quantum physics)에서 다루는 주제가 된다. 그리고 응집물질물리학도 더 거슬러 올라 가면 다름 아닌 양자역학 체계에서 설명되는 분자 간 퍼텐셜 (potential)의 이해에서 비롯되고, 이의 원류는 양자장 이론 (quantum field theory)이다. 그리고 양자장 이론은 전자기학과 핵력을 같이 고려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물리학의 보편 지식의 체계가 1차적으로 집대성된 물리학의 이론 중 하나다. 즉, 물리학의 보편 지식은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각 분야의 현상 과학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히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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