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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9. 2021

과학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3부)

물리학은 좋은 도구가 되지만 만능론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생명체가 어떻게 무생물로부터 나올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확실한 답을 정할 수 없는 문제다. 이에 대한 연구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연구자 중 한 사람은 MIT의 ‘물리학자’ 제레미 잉글랜드 (Jeremy England)다. 그가 사용하는 물리학 도구는 다름 아닌 ‘열역학’이다. 양자역학의 태두 중 한 사람인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 (Erwin Schrödinger)가 그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도 제안했듯, 생명체는 자발적으로 엔트로피 (entropy)를 낮추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잉글랜드 교수는 방 안에 설치한 에어컨이 방 안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외부로 열을 그만큼 (사실 더 많이) 뿜어내는 것처럼, 생명체가 무생물로부터 나온 원인을 엔트로피의 감소를 이끌 수 있는 열역학 2법칙에서부터 찾으려 한다. 잉글랜드 교수는 최근 ‘분산적 적응 (dissipation-driven adaptation)’이라는 이론을 제안했으며, 이를 통해 생명체가 어떻게 열을 계 밖으로 내놓을 수 있는 확률이 0이 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실제 실험으로는 확인하기 힘든 이 이론을 잉글랜드 교수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했다. 시뮬레이션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화학 물질 25가지를 섞고, 외부에서 잉여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을 가정했다. 화학 물질들의 가능한 모든 화학반응을 시뮬레이션하여 시스템이 정상 상태가 될 때까지 화학반응 동역학을 시간 단위로 컴퓨터가 계산했으며, 특정한 조건에서는 계 밖으로 열에너지를 방출하면서 계의 질서도가 증가할 수 있는 화학반응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시스템이 형성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생명체의 기원을 잉글랜드 교수의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 전부 설명할 수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적어도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따르는 시스템이 생물학의 ‘제1 원리’의 근간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당연히 그다음 수순은 이렇게 스스로 자발적으로 계의 엔트로피를 낮추는 개체들이 어떻게 환경과 상호작용하거나 다른 집단과 상호작용하여 진화를 거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생물학은 고정된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물리학이 생화학 반응, 유전 정보의 전사, 생명체의 출현 가능성 같은, 생물 현상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이를 물리학 만능주의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물리학의 보편 원리로 생명 현상의 일부를 특정한 스케일에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나, 여전히 현상 과학 전부가 물리학의 보편 지식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중반 이후, 딥러닝 (deep learning)을 위시로 하는 인공 신경망 (artificial neural network) 기반의 인공지능 연구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신경세포들의 생체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인간의 두뇌에서 어떻게 의식이 생겨 나는지는 인공 신경망 구조의 정보 전달 및 해석 알고리듬으로는 여전히 수학적으로, 물리학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하다. 인공 신경망에서 말하는 신경 노드 (node)들 사이의 정보 전달은 이온 채널 신호 전송 (ion channel neural transmission), 화학 포텐셜 구배 (chemical potential gradient) 같은 물리화학 개념으로 잘 설명될 수 있고, 정보 전달에 관여하는 물질의 확산 속도는 브라운 운동 (Brownian motion) 같은 확산 동역학 (diffusion dynamics)에서, 그리고 확산 동역학은 통계물리학 (Statistical physics)의 기본 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며, 통계물리학 역시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에서 구축될 수 있고, 당연히 이 둘은 물리학의 보편 법칙으로 전체의 지식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여전히 인간 두뇌를 이루는 신경망에서 어떻게 자발적으로 의식이 형성될 수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인공 신경망이 인간의 두뇌 구조 (신경세포 네트워크)를 닮았다고 해서, 딥러닝 (deep learning)이 인간의 지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며, 역으로 인간의 지능이 딥러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안의 선후관계와 유비를 혼동한 것이다.


21세기 들어와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과 통섭이라는 미명 하에, 한 분야의 도구와 개념을 다른 분야로 이식하려 하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불운하게도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잘못된 방향으로 쓰이는 것이 바로 특정 분야의 과학적 이론이나 개념을 다른 분야로 맥락 따지지 않고 적용하는 ‘유비’다. 특히 유비를 논리로 포장하여 정당성을 억지로 꿰맞추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는 자연과학/공학에서 사회학/인문학으로의 방향이 대부분이고, 그 역방향은 거의 없다. 자연과학에서도 물리학이 그러한 개념 및 이론의 오용을 가장 많이 퍼트리는 온상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물리학이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이러한 비대칭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이나 공학에서 제창하는 기본 원리 혹은 ‘제1 원리’나 이론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무생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무생물에 대한 실험적 관측은 비교적 재현이 잘 되며, 법칙으로 정리하기 좋은 특성의 데이터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법칙으로 정리하기 좋다는 것은 수학적 이론으로 표현하기 좋다는 것이고, 충분히 추상화된 수학적 이론 체계는 다른 분야로의 접목에 대해 과학자, 공학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자신감을 심어 준다. 특히 수학이 만물의 언어이고, 우주의 모든 것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고 믿는 일부 과학자, 공학자들에게는 수학은 전가의 보도나 다름없다. 실제로 수학은 지난 몇 백 년 동안 과학과 공학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공을 이끈 주된 수단이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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