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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9. 2021

과학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4부)

특정 학문에서 정립된 개념이나 이론의 확장은 유비와 구분되어야 한다.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의 수학적 언어로 정제된 이론 체계와 기본 원리가 인간적 요소가 관여할 수밖에 없는 사회학이나 인문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며 학문적 오만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같은 자연 과학에서의 분야를 넘나 드는 것은 약간의 오버랩이라도 있지만, 아예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역사학, 철학, 윤리학, 정치학 등으로까지 특정 개념이나 이론을 끌고 오면, 그것은 대개 실패로 돌아가게 될뿐더러, 사이비 학문이라는 평을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과학 내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것조차, 넘어가려는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데, 하물며 아예 과학이 아닌 다른 학문 혹은 전문 분야로까지 특정 개념을 끌고 오는 것은 대개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통찰이나 연구에 의존한 탁견이라기보다는, 비유와 은유에 의존하는 무리한 논리의 전개를 낳는다.


당장 같은 과학의 카테고리에 있는 생물학에서 다루는 진화 이론만 해도 물리학의 기본 원리 중 이에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것이 통계물리학에서 다루는 비평형 통계열역학 (non-equilibrium statistical thermodynamics) 일 것이다. 그렇지만 비평형 통계열역학은 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한 상태로 전이하는 과정에 대한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을 연결하는 열역학 이론일 뿐이고, 집단 자체의 특성이 집단 간 상호 작용, 개체와 집간 간 상호 작용, 집단과 환경의 상호 작용에 의해 바뀌는 진화는 비평형 열역학이 제시하는 기본 원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학이나 인문학은 더더욱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가득하다. 비교적 측정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학과 거리가 가까워 보이는 사회학 (이럴 경우 사회과학 (Social science)이라고 불린다.) 역시, 수학적 논리가 치밀하게 채워진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사용하는 도구만 놓고 볼 때, 물리학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경제학마저도,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그대로 이식하여 경제적 원리를 이끌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 경제학의 기본 가정인 평형 상태 (general equilibrium)가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는 근본적인 이유 외에도, 일단 경제라는 시스템에 사람이라는 불확실 요소가 관여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물리학적 맥락의 평균장 이론 (mean-field theory)의 접근 (평균적 개인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가정에 입각한 접근)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시스템에 상관없이 적용될 수 있는 기본 원리, ‘제1 원리’ 같은 물리학의 이론 체계는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간혹 특수한 경제적 상황 (완전 통제된 시장이나 사람이 관여하지 않는 금융공학적 알고리듬 투자 등)에 대해서는 수학적 방정식으로 모형화될 수 있는 사례가 존재하나, 그것은 특수한 경우에 대해 유효할 뿐,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유효한 것은 아니다. 경제학도 이럴진대, 일반적인 사회학, 역사학, 문학, 윤리학, 철학 같은 분야는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직접적으로 이식되기가 사실 상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굳이 활용된다면 물리학의 원리는 이해를 돕기 위한 유비 정도로 활용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사회학에서 다루는 주제 중, 대중의 의견 형성 동역학 같은 문제는 정보의 확산 (diffusion of information) 모형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설명은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보의 흐름이 분자의 확산처럼 행동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재현 가능한 일반론적인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쟁사에서 빈번히 보이는 두 거대 세력의 충돌에 대한 물리학적 맥락에서의 이해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힘이 비슷한 두 세력이 패권을 놓고 다투는 상황에서 주변의 나라들이 어느 한 나라의 세력권으로 흡수되는 상황은 마치 열역학에서 다루는 상분리 (phase separation)과 매우 유사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를 무리하게 끌어다 쓰면 한 세력은 물, 다른 세력은 기름 같은 물질로 묘사하여, 물과 기름의 분자 수준에서의 상호작용 계수를 흉내 낸 계면 에너지  (interface energy) 같은 개념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표면장력 (surface tension)이나 계면의 곡률 (curvature of interface) 같은 개념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를 이용하여 주변 국가들이 어떻게 특정 세력에 편입되기 시작하는지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게 모형화되지 않는다. 비평형 열역학 원리에 따르면 상분리는 섞이지 않는 두 물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리되고 서로 맞닿은 계면의 넓이를 최소화하여, 열역학적 자유에너지 (free energy)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렇지만 전쟁을 앞둔 두 세력의 접경 지대는 최소화되기보다 최대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 오히려 경계가 넓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2차 대전 때 미국은 본의 아니게 태평양 전선과 유럽 전선이라는 양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였는데, 한 전선은 본토가 공격받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고, 한 전선은 동맹을 지원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다. 즉, 저절로 형성된 전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열역학적으로 봤을 때는 전선을 한 개로 유지하는 것이 두 개로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만약 열역학에서 말하는 자유 에너지라는 개념을 전쟁수행 비용이라는 개념에 정확히 대응시킬 수 있었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전쟁 같은 복잡한 정치, 사회, 경제, 외교적 현상은 단순한 물리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 법칙이 전쟁의 해석에 있어 유비로서의 층위 이상으로 확대 해석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확률이 높으며, 그 우연적 케이스가 전체를 대표한다고 말하는 학자는, 그가 제대로 학문적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일 것이다. 그나마도 그 유비라는 장치조차,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이 아닌 다른 분야를 조금이라도 더 쉽게 이해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사다리 역할을 할 뿐, 어느 단계 이상부터는 해당 분야의 학문적 역사와 누적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한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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