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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9. 2021

과학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5부)

물리학의 방법론은 다른 학문에서도 항상 좋은 도구가 되는가?

물리학에서 많이 쓰이는 분자 동역학 (molecular dynamics)은 분자 레벨에서의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컴퓨터로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열역학 법칙에 따라 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추적한다. 분자들의 화학반응이나 자기조립 (self-organization), 결정 성장, 상전이 (phase transition)나 상분리 (phase separation) 같은 다양한 현상이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되며, 이러한 정확하고 일반론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아직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거나 불분명한 물리화학적 현상, 혹은 실험적으로 직접 관찰하기 어려운 현상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한 도구로서 널리 인정받고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단백질의 접힘 (protein folding), 신약 후보 물질과 암세포 간의 상호작용, 분자 수준에서의 유전자 변형 작동 원리 등에 대한 모델링 도구로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생물학 연구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분자 동역학 같은 물리학의 도구를 화학이나 생물학을 넘어, 아예 다른 학문 분야로도 가져올 수 있을까? 이를 사회과학으로 이식해 가져 온 방법론이 바로 행위자기반모형 (agent-based model (ABM))이다. 이 모형에서는 분자 대신 사회의 구성 요소를 하나의 입자로 본다. 예를 들어 도시의 도로 네트워크를 설계하는 교통 공학을 생각해 보자. 도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실제로 차량을 이동시키며 일일이 테스트하고 마음에 안 들면 도로를 갈아엎을 수는 없으므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정교한 컴퓨터 실험 도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ABM에서는 차량을 하나의 입자로 본다. 도로 상에서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되 속도제한구역, 신호, 교차로, 장애물 등의 요인을 추가하여 상호 거리 속도 차이 모델, 사고 확률 등을 변수로 넣어 교통의 흐름을 모사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링은 비교적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상호 작용은 실제로 관측된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근사 함수를 쓰면 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교통 공학에 기반을 둔 도시설계 그리고 도시 사회학은 조금 더 정교하고 비교적 믿을 수 있는 연구 도구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을 하나의 입자로 보는 경우는 같은 사회학이라 하더라도 결이 많이 다르다. 분자 동역학에서 개별 입자들이 모두 똑같고 의지가 없다고 가정한 것처럼, ABM에서도 개인은 모두 같고 자유의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문제는 분자 동역학에서 정의되는 분자 간의 상호작용이 물리의 기본 원리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될 수 있는 반면, ABM에서 말하는 개인 간 혹은 개인과 집단 간 상호작용은 그 실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거나 유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물리학 기본 원리를 그대로 따다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상호작용은 두 사람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두 사람의 친밀도의 곱에 비례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는 중력이나 전자기력의 수학적 구조를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두 사람의 거리는 실제 물리적 거리일 수도 있고 위상수학적인 거리 개념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SNS 상의 친밀도). 그렇지만 두 사람의 친밀도는 어떻게 측정할지가 관건이다. 식사를 같이 한 횟수로 할 것인가? 공통된 지인의 규모로 할 것인가? 같은 학교를 나왔는지로 정할 것인가? 그리고 그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 역시 아무런 정당한 근거가 없으며 실험적으로 관찰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그렇게 쓰였으니, 사회학에서도 그럴 것이라 가정하는 것뿐이다. 


사람을 분자로 가정하는 모델링이니, 사람 사이의 관계도 분자 사이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는 이 유비 (analogy) 접근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어쩌다 우연히 그 접근이 일부 사회적 현상과 맞물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력의 법칙을 유비로 활용하여 모델링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히 두 사람 사이의 친밀도 지표는 두 사람 사이의 위상수학적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야 하는데, 아무리 데이터를 피팅 (fitting)하려 해도 이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연구자 입장에서는 현실에서 관측된 데이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고, 아예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인위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사회학에서 다루는 데이터가 굉장히 다양하고 집단마다 통일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애초 보편성 (universality)를 추구하는 물리 법칙의 특성상, 모든 옷을 하나의 사이즈로 맞추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이즈가 서로 다른 옷을 한 사람에게 강제로 맞추다 보면 큰 사이즈의 옷감은 구겨지고, 작은 사이즈의 옷감은 늘어나다 못해 찢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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