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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19. 2021

과학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6부)

지나친 유비는 해석의 제한, 심지어 왜곡을 야기할 수 있다.

운이 좋아 정말 관측된 현상이 특정 학분 분야 내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면 유비적 도구로 수립된 모형을 잘 따라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열역학의 선조 중 한 사람인 카르노 (Sadi Carnot)의 사례를 살펴보자. 19세기 초중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공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카르노는 열역학, 특히 열의 흐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굉장히 그럴듯해 보이는 현상을 가져온다. 그것은 바로 전기였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파이프로 연결하면 뜨거운 물의 열이 차가운 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음극에서 나온 전자가 도선을 타고 양극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이 흐르는 파이프에 물레방아를 설치하면 물의 흐름은 약해진다. 이것은 전기 도선에 저항과 비슷한 역할이다. 전기와 열의 흐름은 단순히 비슷해 보이는 정도를 떠나, 수학적으로도 그 작동 방식이 유사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열의 흐름과 전기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었다. 카르노는 전기의 흐름이라는 유비를 사용했지만, 그 유비가 갖는 한계점이 바로 여기에 있음도 명확하게 알아차렸다. 그 차이는 바로 흐름의 방향성이었다. 예를 들어 열은 차가운 물에서 뜨거운 물로 흐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열에 관련된 현상에는 비가역성 (irreversibility)가 내재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열과 일 형태의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열역학 1법칙을 넘어, 이 방향성은 카르노로 하여금 방향성과 관련이 있는 열역학 법칙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카르노가 전기의 유비 한계를 벗어나, 열역학 2법칙으로의 아이디어로 안착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전기의 유비는 겉보기의 유사성과는 달리 열적 현상과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양극, 음극에 대응하는 뜨거운 물, 차가운 물은 구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물의 온도가 뜨겁고 높은 정도로 구분되는 것일 뿐, 뜨거운 유체와 차가운 유체가 그 뜨거움과 차가움 성질을 고정적으로 보존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애초 열의 흐름은 전자의 흐름 같은 동역학적 현상이 아니다. 


관측된 현상이 유비적 도구와 전혀 어울리지 못할 경우, 오히려 실제 현상의 핵심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맥스웰 방정식 (Maxwell equation)으로 통일된 전기와 자기 현상은 두 현상이 하나의 쌍 (즉, 전자기장 (electromagnetic field)과 전자기파 (electromagnetic wave))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당연히 어떤 전기적 현상이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자기적 현상도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적으로 음전하 혹은 양전하가 공간 상에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있다면, 자기적으로도 그에 해당하는 자기 단극 (magnetic monopole)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단극은 수백 년에 걸친 수많은 실험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실험적으로 관측된 적인 한 번도 없다. 물론 자기 단극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가정하여, 어떤 흥미로운 현상이 생길 수도 있음을 분석한 연구도 있다. 자기 단극의 존재가 관측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연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과학의 특성은 반증될 때까지 일단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론을 실험해 보는 것을 허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물론 그러한 이론들은 실험적 증거가 관측되기 전까지는 그저 가설의 단계를 못 벗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빛의 굴절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물리학 교과서에서는 군대의 행진을 비유로 드는 경우가 있다. 오와 열을 맞춰 질서 정연하게 아스팔트 도로에서 행군하던 군대가 갑자기 진흙으로 범벅인 도로로 진입하면 행군 속도가 줄어들 것이다. 행군 방향이 아스팔트와 진흙 도로의 경계에 수직인 방향이었다면 군대의 오와 열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비스듬하게 행군하던 방향이었다면, 진흙에 먼저 들어 간 병사와 아직 들어가지 못한 병사들 사이에 행군 속도 차이가 생겨나 결국 군대의 오와 열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만약 그 오와 열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군대의 행진은 도로의 경계에서 굽어져야 한다. 즉, 진흙으로 들어 간 군인이 느리게 가는 대신 더 짧은 경로로 움직이고, 아스팔트 위에 있는 군인은 빠르게 걷고 있는 대신 더 긴 경로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면 군대 행진은 도로의 경계에서 휘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비유는 빛의 매질 속에서의 속도가 달라지는 특성으로 인해, 굴절률이 다른 매질의 경계에서 빛의 경로가 꺾이는 현상, 즉, 굴절을 설명하는데 매우 좋은 유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유비는 제한적인 정보 밖에는 주지 못 한다. 굴절의 핵심을 빛의 경로 꺾임에만 한정 짓는다면 이 유비는 괜찮은 장치가 될 수 있으나, 빛을 기본적으로 전자기파라고 가정하고 파동의 상 (phase) 변화를 수학적으로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빛의 굴절이라는 특성을 반 밖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굴절률이 높아지는 경계에서는 상이 180도 뒤집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상이 뒤집히지 않는다는 것은 군대 모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빛의 꺾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군대 행진 모형은 당장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응급 처치 수단으로써는 훌륭하나, 빛의 굴절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대 행진 모형은 이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인식에 한계를 만들어 버린다. 빛을 마치 입자들의 집합으로만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빛의 굴절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빛의 파동성을 더 깊게 연구해야 한다.

이렇듯, 과학이 다른 분야로 경계를 넘나다는 과정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정확한 해석과 올바른 현상 판단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시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시도가 충분히 논리적이고 실험이나 관측으로 뒷받침될 수 있으며, 해당 도메인의 지식과 잘 맞물리면 얼마든지 그 도메인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원리가 될 수 있고, 새로운 도구를 제시하여 도메인의 영역을 더 넓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이 이론 물리학에만 갇혀 있었다면, 천문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지금보다 훨씬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별의 진화와 원소의 탄생, 별들의 집합인 은하의 형성과 블랙홀의 필연적인 등장은 천체 관측만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학문적 성과인데, 이는 천문학에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제대로 이식되어 천체 물리학이라는 세부 분야를 탄생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위대한 학문적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랙홀은 상대성이론과 통계물리학, 양자역학이 융합되어 이론적으로 예측된 천체다. 항성진화 모형 역시 통계물리학과 양자역학, 그리고 핵물리학이 융합되어 우주에 분포하고 있는 각 원소의 분포를 예측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은하 형성, 그리고 회전 속도에 대한 이론과 빅뱅 이후 38만 년 만에 탄생한 우주배경복사 마이크로파의 분포 양상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가상의 존재가 필연에 가까움을 의미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실험적 증거는 여전히 오리 무중이지만, 이는 역시 물리학의 기본 원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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