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나듦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나 특정 도메인과의 논리적 결합이 필요하다.
20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연구되기 시작한 생물 물리학 (biophysics) 역시 천문학이 천체 물리학이라는 중요한 도구를 갖추게 되었듯, 생물학에 있어 훌륭한 도구가 되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폭발적으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시스템생물학 (systems biology)를 생각해 보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시스템 생물학은 생물학의 한 분과로서, 생명 현상을 개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체와 집단, 집단과 환경, 개체 속의 각 구성 요소가 이루는 네트워크로 상정하여 그 특성을 분석하여 그것이 우리가 관측하는 생명체의 특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다. 이 분야가 다른 생물학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바로 구성 요소들의 상호 작용을 물리학의 기본 원리에 입각하여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로 모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분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스템 생물학은 생물 물리학의 세부 분야로도 볼 수 있다.
생명 현상을 구성 요소의 네트워크로 상정할 경우, 다른 생물학 분야와 차별화되는 부분이 또 있다. 그것은 구성 요소들 간의 정보 생성 및 전달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정보가 0과 1의 이진법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생명 현상에 관한 정보도 A, G, C, T 네 종류의 핵산으로 이루어진 DNA에 담겨 있다. 따라서 유전자 발현량은 정보 이론 (information theory) 관점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가 생성되고 잘 전달되는지에 대한 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명체는 보통 크기와 자원이 제한되므로,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안전하게 그리고 많이 생성하고 전달하고 싶어 한다. 이를 고려하면 생명 현상에서 보이는 특징을 정보 이론의 관점에서 모델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정보 이론은 통계물리학과 열역학의 엔트로피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물리학의 기본 원리와 생명체의 생명 정보 사이의 접점이 생긴다. 물론 시스템 생물학이 생물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시스템 생물학은 여전히 개체가 아닌 집단의 진화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애초 물리학의 기본 원리만 가지고는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기술되기 어렵다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과학에 있어서 한 분야의 지식, 이론, 도구, 개념은 다른 분야로 확산될 수 있으나, 그것은 그 분야에 대한 도메인 지식과의 융합과 논리적 결합이 우선적으로 정리되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이 없는 일방적 적용은 결국 적용하려는 지식, 이론, 도구, 개념을 유비적 가치 이상으로 확장하는 것에 무리가 생기며, 이는 결국 현상에 대한 오해와 부정확한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주범이 될 수 있다. 과학에 있어서 분야의 경계를 초월하는 분야 간 넘나듦은 학문적 아이디어의 공유와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여, 학문적 성과를 풍부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권장되어야 하나, 매우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하고 많은 검토가 뒤따라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상에 출현한 지 벌써 70년이 넘어가고 있는 정보 이론 (information theory)의 제창자 클로드 샤논 (Claud Shannon)이 했던 말을 여기서 다시금 되새겨 보는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1948년,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제목을 논문을 발표한 이후, 클로드 샤논은 정보 이론의 개척자라고 높이 평가받았다. 1955년, 한창 유행하기 시작한 정보 이론이 마치 모든 분야의 과학과 공학을 설명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당시의 세태에 대해, 샤논은 다음과 같은 일침을 가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보 이론의 개념 중 상당수가 다른 분야에도 유용할 것이라 믿지만 (실제로 일부 개념들은 전망이 매우 밝다), 그런 응용은 단순한 번역·번안의 문제가 아니라 가설과 실험적 검증을 수반하는, 느리고 지루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정보 이론을 최고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보 이론은 이제 어엿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했으니, 앞으로 가능한 한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도록 연구·개발하는 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겉치레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하며, 논문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저자들은 고품질의 원고를 제출하고, 자신과 동료들의 신중한 비판을 거친 후 출판해야 한다. 논문의 양보다 질로 승부해야 한다. 부실한 논문을 양산해 봤자 저자의 평판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독자들에게는 시간낭비일 뿐이다.